[말랑말랑 인문학] 찻잔에 대한 욕망 거슬러 올라가기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들려오는 북소리에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건 아니지만 빽빽한 현실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실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당시엔 떠나는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온 몸의 세포들이 기쁨으로 포화되어 떠남 자체가 큰 축복으로 여겨졌지요.


지금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서 그런지 여행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여행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는 데, 이번에 다회 멤버들과 일본 고베에 다녀왔습니다. 고베는 일본 최초의 개항지 중 하나로 일찌감치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지에서 과식은 장이 예민한 저에겐 재앙이 될 수 있고 갱년기 불면증으로 오후엔 카페인을 멀리 해야 하므로 절제는 피치 못할 미덕이었습니다. 그리고 쇼핑에 대해서도 국내에선 구하기 어렵지만 일본에서 많이 마시는 호지차 이외는 사지 않기로 마음 정리를 마쳤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명상과 불교 수행법을 공부하면서 좀 덜 가지고 덜 편하게 사는 게 의미 있다고 각인시켰기에 이번 여행은 물건에 대한 욕망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나, 시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고베의 유명 백화점을 돌아봤는데, 예쁜 찻잔과 티포트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집에 있는 짝이 맞지 않는 머그컵과 오래되어 찻물이 베인 다기들이 새로운 찻잔에 대한 욕망을 합리화시키고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이 그 합리화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몇 번을 돌아보다 결국 끝까지 사지 않았지만 숙소에 누우니 사지 못한 잔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이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잠은 오지 않고 뒤척이는 대신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가르침대로 찻잔ㅇ[ 대한 욕망을 가만히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욕망에 대해서 정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욕망은 ‘행복해지는 데 필요하다고 여기는 대상에 대한 마음의 상태’로, 플라톤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에게 없는 찻잔에 대한 사랑이니 정당하게 보여집니다. 하지만 푸코는 그런 욕망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욕망은 사실 ‘사회적 권력이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는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차를 마시기 위해 좋은 찻잎뿐 아니라 예쁜 새 찻잔과 포트를 구비하는 이유가 온전히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인지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하는 등의 과시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사색을 거듭하다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찻잔의 잔상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았지만 이후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워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가라앉은 찻잔에 대한 욕망을 떠올리며 그 욕망이 진짜 내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쇼핑. 이번 여행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재단한 쇼핑 목록을 지킬 수 있어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욕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을 즐거움보다 의미있는 일로 채우는 건 언제나 남는 장사라는 걸 이번에도 경험합니다.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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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2.10 07:59 수정 2026.02.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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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