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읍 지산리에 자리한 가야 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선다. 몇 해 전 경남 김해로 캠퍼스 전체를 옮겨간 뒤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정적에 싸여 있다. 이따금 씽씽 꽃샘바람만이 갈기를 휘젓고 지나갈 뿐,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학생들이 죄 떠난 교사校舍들엔 쇠사슬이 굳게 채워져 있고, 꽃밭에는 꽃이 피었던 흔적 대신 이름 모를 잡풀들만 다투어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삼십여 만 평의 드넓은 캠퍼스가 세월 속에 허물어져 가는 중이다.
십수 년 전, 고향 가는 길목에 들어선 신생 대학이었다. 대도시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외곽지에 세운 것부터가 애당초 무리수를 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곤 해도 이것이 비단 가야 대학교 하나만의 문제일 수는 없으리라. 앞으로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대도시에 들어선 저 수도 없이 지어 놓은 건물들은 죄 무엇에 쓰며, 하 많이 만들어진 시설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약적인 상상이려나, 나는 여기서 전쟁 없이도 무너진 도시의 참상을 그려 본다.
처음 설립하였을 당시만 해도 학생이며 교직원들로 북적거렸던 아름다운 교정이었다. 산새들의 지저귐과 꽃들의 미소, 풋풋한 청춘들의 왁자그르르한 웃음소리로 매일같이 아침마다 활기가 넘쳤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해 사이에 이렇게까지 몰락하고 말 줄은 미처 몰랐다.
환경 파괴가 가져올 끔찍한 결과를 고발한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봄이 되어도 벌 나비가 날지 않는 죽음의 지구, 생명의 움직임이 사라진 앞날의 세상을 카슨은 ‘침묵의 봄’으로 표현해 놓았다. 하지만 멸망이 어디 환경 파괴로 인한 인위적인 것뿐이겠는가. 비록 그 문제가 아니어도, 인구 감소로 연유된 자연적인 멸망의 전주곡을 보는 듯하다.
가야 대학교의 쓸쓸한 모습에서 머잖아 닥칠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떠올린다. 지난해 이 땅의 출산율이 가임여성 한 사람당 겨우 *1.19명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는 그보다 더 낮아져서 0.9명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통계 자료는 경고등을 켜고 있다. 지금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이 수치가 적어도 2.3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니,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채만식 선생의 소설 『태평천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예순 줄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내가 앞으로 오십 년 후까지 살아남는다면 백 살이 훌쩍 넘어설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생존해 있을 가망성은 별반 없어 보인다. 그런 나이지만, 오지랖이 넓다 할지 하늘이 무너질 걱정을 하는 건지 내가 꼭 진시황 같은 입장이 된 심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장차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질없는 염려 같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식 걱정하듯 선조 된 도리로 후손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산천을 메아리치던 그때가 어제 일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그나마 이 정도 상황이었지만, 그로부터 다시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0.7명대를 기록 중에 있음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