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국, 새로운 인종적 대격변의 문턱에 서다

-동토(凍土)의 미니애폴리스, '침묵의 심판'이 깨어나다.

-2020년의 해시태그를 넘어, 2026년 ‘생존의 연대’로 번지는 새로운 저항의 물결.

-트럼프의 이민 단속이 깨운 거인, 2026년판 인종적 심판의 서막.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CNN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인종적 각성과 이민 정책 반대 운동을 분석했다. 이번 분석을 담당한 존 블레이크(John Blake)에 의하면, 최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연방 요원의 백인 시민 사살 사건이 유색인종만의 문제를 넘어 모든 미국인의 문제로 인식되며 더 강력한 사회적 결속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의 시위가 일시적인 사회관계망 서비스상의 유행에 그쳤다면, 현재의 움직임은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인 조직력과 상호 부조를 바탕으로 더 장기적인 변화를 도모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이 인종차별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공권력의 폭거에 저항하는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웃 사랑과 연대가 과거보다 더 견고한 토대 위에서 미국의 새로운 인종적 갈등 해결을 끌어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6년 2월, 미네소타의 겨울은 잔인하리만큼 차갑다. 6년 전,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숨결이 닿았던 그 거리에는 이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대신 날카로운 금속성의 사이렌 소리만이 가득하다. 한때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반인종주의의 열기는 식어버린 용암처럼 굳었고, 서점 매대를 장식하던 정의로운 서적들 위엔 어느덧 두꺼운 먼지가 내려앉았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2020년은 유행이 지난 계절처럼 잊힌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는 미니애폴리스의 골목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화려한 해시태그와 거대한 시위대의 행렬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그 폐허의 자리에서 훨씬 더 단단하고 끈질긴 ‘새로운 유형의 인종적 심판’이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일시적인 감정의 폭발이었던 ‘슈거 하이(Sugar High)’를 지나, 미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더 깊고 본질적인 사회적 변곡점에 직면해 있다.

 

이민 정책의 탈을 쓴 '인종적 청소', 그 잔혹한 서막

 

현재 미니애폴리스를 관통하는 분노의 핵심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른바 ‘오퍼레이션 메트로 서지(Operation Metro Surge)’가 있다. 정부는 범죄자 소탕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현장에서 목격되는 광경은 국가 권력에 의한 ‘구조적 배제’ 그 자체다. 특히 소말리아계를 향해 “악취가 난다”는 식의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권력의 시선은, 이제 ‘복지 부정수급 조사’라는 교묘한 구실을 통해 합법적 거주자와 시민권자들까지 옥죄고 있다.

 

이 정책의 기저에는 소위 ‘좋은 사람들’이 오는 북유럽 국가와 ‘그렇지 못한’ 유색인종 국가를 나누는 이분법적 인종주의가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미니애폴리스 주민이자 시인인 대네즈 스미스(Danez Smith)는 작금의 현실을 이렇게 고백한다. “백인 우월주의가 작전 지침이 된 나라에서, 당신을 보호할 법적 장치는 이미 신기루가 되었다.” 이민 정책은 이제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특정 인종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새로운 전선이 되어버렸다.

 

'백인 순교자'의 죽음이 투영하는 공감의 역설

 

2026년 초, 미니애폴리스를 다시 한번 격랑으로 몰아넣은 사건은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와 르네 굿(Renee Good)의 죽음이었다. 백인 ICU 간호사였던 프레티와 금발의 미국 시민권자였던 굿의 희생은,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조지 플로이드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대중적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플로이드가 과거 이력을 이유로 보수 진영으로부터 인간성 자체를 부정당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들의 죽음은 백인 주류 사회에 ‘우리 중 한 명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는 1965년 셀마 행진 당시, 흑인 활동가의 죽음보다 백인 목사의 희생이 운동의 불길을 당겼던 ‘공감의 인종주의’가 2026년에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이드리언 카라스키요(Adrian Carrasquillo)는 <The Bulwark>를 통해 날카롭게 꼬집는다. “트럼프 행정부에 진정한 위협이 된 것은 그녀의 ‘미국 시민권’과 ‘백인성’이었다.” 이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미국 사회가 가진 공감의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클릭티비즘'의 허상을 깬 차가운 거리의 연대

 

2020년의 저항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해시태그를 공유하던 ‘클릭티비즘(Clicktivism)’이었다면, 2026년의 미니애폴리스는 실존적인 ‘몸의 투쟁’을 선택했다. 점령 운동의 창립자 미카 본프리(Micah Bornfree)의 말처럼,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는 맥도날드의 음식과 같아서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소는 이미 증발해 버렸다. 이제 주민들은 소셜 미디어의 가상 공간 대신,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거리로 직접 나섰다.

 

지금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극히 물리적이고 헌신적이다.

 

조직적 감시: 주민들은 연방 이민세관집행국(ICE)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부당한 체포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공권력의 폭주를 온몸으로 견제한다.

 

상호 부조 체계: 지역 교구와 이웃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는 이민자 가족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조달하는 ‘지하철도’를 구축했다.

 

물리적 현존: 온라인의 구호에 머물지 않고, 연방 요원들의 무분별한 행위 앞에 직접 서서 이웃의 방패가 되어준다.

 

깊이로 움직이는 변화, 우리는 거리로 나설 준비가 되었는가

 

이번 운동은 2020년처럼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장관을 연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거대 기업 CEO들이 무릎을 꿇는 드라마틱한 장면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조용한 변화는 대중의 인식 속에 훨씬 더 지속적이고 파괴적인 균열을 내고 있다. 변화는 요란한 확성기가 아니라, 얼어붙은 거리에서 옆 사람의 언 손을 맞잡는 구체적인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유행하는 정의를 클릭 한 번으로 소비하는 관객인가, 아니면 이웃의 고통을 위해 차가운 거리로 나설 용기가 있는 주체인가? 2026년 미니애폴리스의 겨울은 우리에게 저항의 기술이 아닌, ‘진정한 공동체로의 회귀’를 묻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깊이는 절대 얕지 않다.

 

작성 2026.02.16 12:18 수정 2026.02.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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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