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박래현은 늘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소개되곤 했다. 친근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그녀를 한 사람의 아내로만 기억하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이 수식어는 오랫동안 그녀의 예술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해왔다.
남편 김기창은 박래현의 예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를 "한국적인 소재를 사랑한 화가", "맷방석, 엽전, 농촌의 정서를 담은 작가"로 기억했다. 이것은 따뜻한 평가였지만, 동시에 그녀의 예술을 "한국적인 것"이라는 틀 안에 가두는 해석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해석이 이후 박래현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작품의 제목이나 연도에 관한 일부 오류조차 권위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그녀의 예술 세계를 제대로 살펴보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다면 박래현의 예술은 정말 토속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 그쳤을까?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군산 피난 시절에 그린 「노점」과 「이른 아침」을 보면, 인물과 공간이 있는 그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형태는 분해되고, 선과 면으로 새롭게 구성된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옮긴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조로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그녀는 이미 이 시기에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현대적인 조형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뉴욕 생활 이후 더욱 과감해진다. 판화 작업에서 그녀는 동판을 단순히 이미지를 찍어내는 도구로 쓰지 않았다. 금속판을 자르고 다시 배열하며, 하수구 망이나 직물, 금속 조각 같은 일상적인 재료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판화는 그녀의 손에서 평면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기법을 바꾼 것이 아니라, 미술이라는 매체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한 실험이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박래현은 전통을 이어받은 동양화가라기보다 매체와 형식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 실험미술가였다. 그녀의 작업은 무언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형태와 구조 그 자체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녀의 예술은 김기창의 시선을 통해 해석되어왔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해석은 특정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그 관점은 어떤 부분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부분을 가리기 마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해석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시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이다.
그 시선의 층위를 걷어낼 때, 우리는 새로운 박래현을 만나게 된다.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화가가 아니라, 구조를 탐구한 실험가로서의 박래현이다. 그녀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찾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미술사는 완성된 기록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쓰이는 해석의 과정이다. 박래현을 다시 읽는 일은 단순히 한 작가를 재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발견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미술사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