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리후가 데뷔 16주년을 맞았다. 2010년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사랑은 100℃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시간 동안 농(Deaf) 배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전면에 두는 행보를 이어왔다. 장애를 서사의 장치로 소비하기보다, 언어와 문화의 주체로 존재하는 인물을 연기해 온 점에서 그의 16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데뷔작 사랑은 100℃는 대단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주목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 김리후는 같은 해 중앙대학교 졸업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신인 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농인 배우로서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다.
그는 ‘농인’을 단순히 청각 손실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수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정체성을 설명해 왔다. 이러한 인식은 배리어프리 환경 조성과 오센틱 캐스팅 논의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그는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구조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실천해 온 배우로 평가된다.
올해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 시행 1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수어의 날 행사에서는 사회를 맡아 수어의 공적 위상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단순한 행사 진행을 넘어, 수어가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독립적인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읽힌다.
김리후의 활동 기반에는 언어적 전문성이 자리한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를 비롯해 영어, 미국수어, 국제수화, 일본수어, 일본어 등을 구사하며 국내외 무대에서 폭넓게 활동해 왔다. 한국농아방송 앵커로 활동했고, 2019년 동계 데플림픽에서는 국제수화 및 영어 통역사로 참여하며 연기와 통역을 아우르는 역량을 입증했다.
농인 배우의 참여 기회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국내 영화 환경에서, 김리후의 16년은 하나의 사례를 넘어 방향성을 제시한다. 조건이 아닌 정체성으로 무대에 선 배우의 시간, 그리고 언어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예술가의 여정이 앞으로 어떤 확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