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1문
Q. 31. What is effectual calling? A. Effectual calling is the work of God’s Spirit, whereby, convincing us of our sin and misery, enlightening our minds in the knowledge of Christ, and renewing our wills, he doth persuade and enable us to embrace Jesus Christ, freely offered to us in the gospel.
문 31. 효과적인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답. 효과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우리를 설득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세상에는 수많은 부름이 존재한다. 기업의 채용 공고, 파티로의 초대, 혹은 누군가의 다급한 도움 요청까지. 그러나 대개의 부름은 상대방의 응답 여부에 따라 완성되거나 취소되는 불확실성을 가진다. 하지만 신학에서 말하는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은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가 아니라, 대상의 내면을 변화시켜 반드시 응답에 이르게 하는 '창조적 음성'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1문은 이 신비로운 부르심의 과정을 세심하게 해부하여 보여준다.
그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죄와 비참의 깨달음(Convincing us of our sin and misery)'이다. 인문학적으로 이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의 그 '앎'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처절하게 자각하는 실존적 위기를 뜻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밑바닥(Rock Bottom)'의 경험과도 흡사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 비참한 실존의 늪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인정하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교만이라는 갑옷을 벗고 진정한 구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는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심(Enlightening our minds in the knowledge of Christ)'이다. 앞선 29문에서 다룬 '아는 것(knowing)'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찬란한 빛으로 변하는 지점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의 획득이 아니라, 캄캄한 방에 갑자기 불이 켜지며 모든 사물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인지적 혁명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빌리자면, 그림자만 보던 수인이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진리)을 직접 대면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가 지적인 이해를 넘어 영혼의 감격으로 다가오는 체험적 깨달음의 순간이 감격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의지의 새롭게 하심(Renewing our wills)'이다. 지적인 동의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의지의 마비 때문이다. 성령은 굳어진 인간의 의지를 부드럽게 하시고, 선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주입하신다. 이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변화 관리'의 핵심과 닿아 있다. 진정한 변화는 겉모습의 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인 '의지의 시스템'이 리부트될 때 가능하다. 성령은 우리가 억지로 끌려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장 가치 있는 분으로 보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의지가 기쁘게 그분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드신다.

이 모든 과정은 '설득하시고 능력을 주심(Persuade and enable)'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강압적인 독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설득이다. 그분은 우리의 이성과 감정, 의지에 호소하시며, 그 호소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함께 공급하신다. 이는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 때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절정이다. 따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비전을 살아낼 수 있는 자원과 용기를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가장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예술적 순간이다.
효과적인 부르심은 인간의 영혼에 일어나는 가장 고귀한 화학 반응이다. 비참함의 자각에서 시작하여, 진리의 조명을 거쳐, 의지의 혁신을 지나, 그리스도라는 안식처에 도달하는 이 여정은 전적으로 성령의 작품이다. 우리는 부름을 받았기에 응답하는 것이며, 그분이 길을 여셨기에 걸어갈 수 있다. 이 부르심은 과거의 단회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오늘도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더 깊은 사랑의 자리로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다.
우리는 늘 '누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혹은 '내 삶에 어떤 확실한 계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효과적인 부르심은 바로 그 갈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당신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에 마음이 움직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 안에 성령의 부르심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구원은 당신의 결심이 만든 성과가 아니라, 당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집요하고도 따뜻한 설득의 결과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초대에 당신의 전 존재를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