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82. 류큐 왕국 대교역 시대 주요 수출품 분석

유황과 말, 조공(朝貢)을 이끈 류큐 고유 토산품

소목(蘇木)과 후추(胡椒), 동남아시아 재수출 전략

일본 금속과 중국 비단의 순환 네트워크 완성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진 류큐 왕국(琉球王國)의 대교역 시대(大交易時代)는 해상 중계 무역(中継貿易)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의 황금기였다.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이미지=AI 생성]

 

류큐는 명나라의 해금(海禁) 정책과 조공 무역 제도를 활용해 자국 토산품과 주변국 수입품을 재분배하는 상업 구조를 확립하였다. 유황과 말, 조개와 파초포(芭蕉布) 같은 자국 산물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와 일본의 금속,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연결하는 순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친 류큐 왕국의 대교역 시대는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 시기였다. 자체 생산 기반이 제한적이었던 류큐는 명나라의 해금 정책과 조공 체제를 활용하여 중계 무역 허브로 기능하였다.

 

류큐가 명나라에 바친 대표적 조공품은 유황과 말이었다. 유황은 화약 제조에 필요한 군수 물자로, 이오토리시마(硫黄鳥島) 등에서 채굴되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는 류큐가 물자 공급국으로 인정받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바다에서 채취한 마르모라투스 소라(ヤコウガイ) 같은 조개류는 일본 본토와 중국에서 공예 재료로 활용되었다. 오키나와 특산 직물인 파초포(芭蕉布) 역시 주요 헌상 품목이었다.

 

류큐 상인들은 마나반(真南蛮)이라 불린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태국, 자바, 말라카, 파타니, 수마트라 등에서 소목과 후추, 상아, 주석, 정향을 수입하였다. 이 물품들은 중국, 일본, 조선으로 재수출되었다.

 

포르투갈 기록 『동방제국기』에서는 류큐인을 레키오로 지칭하며, 말라카에서 상품을 거래하고 일본의 황금과 구리를 교환해 온다고 서술하였다. 이는 동남아시아 교역에서의 활약을 보여준다.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일본도(刀剣), 부채(扇), 칠기, 병풍이 확보되었다. 명나라는 일본산 수공예품에 대한 수요가 높았으나 직접 교역을 제한하고 있었다. 류큐는 이 물품을 중국에 진공하거나 무역품으로 제공하였다. 구리와 은은 동남아시아 물품 구매 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류큐는 조공의 대가로 원사-생사(生糸), 견직물, 도자기, 동전 등을 받았다. 이 중국산 물품은 다시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재수출되었다. 이를 통해 다층적 순환 네트워크가 완성되었다.

 

16세기 후반 이후 교역 환경이 변화하였으나, 17세기 이후에도 조공 무역 형태는 지속되었다. 18~19세기에는 북해도산 다시마(昆布)가 주요 중국 수출품으로 부상하였다. 다시마는 사쓰마를 거쳐 류큐로 유입되었고, 중국 물품과 교환되었다.


 

류큐 왕국의 대교역 시대 수출품은 자국 토산품과 외부 수입품의 재분배로 구성된 복합 구조였다. 유황과 말, 동남아시아 향신료, 일본 금속, 중국 비단을 연결하는 체계는 만국진량(万国津梁)이라는 표현처럼 류큐를 해상 교역의 가교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이는 단순 무역을 넘어 국가 생존 전략으로 기능한 경제 체제였다.

작성 2026.02.22 09:29 수정 2026.02.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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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