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퇴근하니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십니다.
간혹 테레비가 엄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엄마도, 빈 의자도 외로워 보입니다.
엄마의 몇 안 남은 친구 중이 하나인 TV도 흑백 테레비처럼 늙고 무심해진 지 오래입니다.
텔레비전은 핑게일 뿐 엄마는 자식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저는 외투도 벗지 않고 엄마 옆에 앉아 어제 접어 놓았던 책 장을 펼쳤습니다.
십여 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를 껏는데도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역시 엄마는 텔레비전이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은 단지 조명등에 불과합니다, 엄마의 기억을 비추는.
저는 소리내어 책을 읽습니다.
어려운 말이 나오면 풀어 말하고, 단락마다 요지를 곁들입니다.
유치원 아이처럼 귀를 쫑긋하는 엄마의 모습에 늙은 자식의 심장도 쫑긋해졌습니다
순간 꼬였던 실타래가 스르르 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한테 못다 한 말, 엄마가 가슴속에 묻어둔 말이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비로소 자식은 엄마와 실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한 책 장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책 한 장을 넘기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고작 한 토막의 이야기, 삼십 여분의 시간, 30센티미터의 거리면 충분했던 것을요.
삶을 가볍게 꾸리지 못하고, 한데로 멀리 돌아다녔던 제 뒷모습을 비로소 보였습니다.
“피곤할 텐데 어서 쉬어라.”
엄마는 거푸 말합니다.
오늘은 엄마의 빈말에 속아주었습니다.
내일도 엄마 말에 토 달지 않고 매양 속으려고 합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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