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야이다.” (헨리 밀러)
이 책은 한국 사찰의 노거수를 따라 걸으며 나무에 새겨진 역사와 인간의 삶을 함께 읽어내는 인문 여행기다. 저자 이학송은 나무를 풍경의 일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 자리를 지켜온 수행자이자 시대의 증인으로 마주한다. 왕조의 변화와 사람들의 기원, 기후와 자연의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서 있던 나무들은 말없이 삶의 태도를 전해준다.
이 책에 담긴 은행나무와 향나무, 굴참나무는 자연유산이면서 동시에 생태인문학적 기록이다. 저자는 나무의 나이와 형태, 그 곁에 쌓인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차분히 풀어낸다. 나무를 ‘어르신’으로 대하는 마음, 존재로 존중하는 시선이 문장마다 스며 있다.
사찰을 걷는 독자에게는 풍경을 깊게 바라보는 눈을, 일상의 속도에 지친 독자에게는 느린 시간의 감각을 건네는 책이다. 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이들에게 이 기록은 조용한 쉼의 자리가 되어준다.
<작가소개>
저자 이학송
학교숲 만들기를 하며 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전국의 초 · 중 · 고등학교 학교숲 조성과 모니터링, 심사를 20여 년 다니며 나무와 숲을 배우고 있다. 학교숲 정원 나무와 꽃의 고유한 특성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보며 놀랐고, 10여 년 전부터는 사찰의 어르신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집중하고 있다. 너무나 무관심했던 노거수를 자세히 보면서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 노거수의 삶에 녹아 있는 시대의 문화, 역사, 스토리텔링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해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전국을 찾아다닌다. 한편, 학교와 사찰의 노거수를 찾는 기쁨을 함께하고 싶어 이 분야의 책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라』(1997, 밀알출판사), 『부처를 닮은 우리 산이름』(2022, 북랩), 『학교숲 정원 이야기』(2023, 보민출판사)가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침묵으로 시대를 견딘 나무들의 거룩한 삶
01. 군포 수리사 고욤나무
02.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03. 서울 조계사 백송과 회화나무
04. 여주 신륵사 은행나무 · 굴참나무 · 향나무
05. 강화 전등사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06. 고성 건봉사 팽나무
07. 임실 상이암 청실배나무와 화백
제2부. 화마를 견뎌낸 나무들, 역사가 되다
01. 김제 망해사 진묵대사 팽나무
02. 양양 낙산사 홍련암 관음송
03. 제주 관음사 은행나무
04.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05. 남양주 봉선사 느티나무
06. 서울 성북구 심우장 향나무와 소나무
07. 안동 광흥사 은행나무
제3부. 사찰림이 품은 시간과 수행의 나무
01. 밀양 대법사 모과나무
02. 인천 용궁사 느티나무
03. 장성 백양사 천진암 탱자나무
04. 남양주 수종사 은행나무
05. 진주 응석사 무환자나무
06. 춘천 오봉산 청평사 주목
07. 파주 검단사 느티나무
제4부. 천 년의 뿌리, 인간의 기도를 품는다
01. 세종 비암사 느티나무
02. 부산 홍법사 푸조나무
03.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
04. 원주 국형사 반송(盤松)
05. 강화 보문사 향나무
06. 천안 성불사 느티나무
07. 철원 도피안사 느티나무
제5부. 자연과 신앙, 시간이 함께 빚어낸 문화경관
01. 울산 석남사 노각나무
02. 이천 영월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03. 수원 봉녕사 향나무
04. 장성 백양사 고불매
05.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06. 고양 흥국사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07. 서울 호압사 느티나무
제6부. 숲은 불타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01. 서귀포 선덕사 구실잣밤나무
02. 남양주 묘적사 찰피나무와 굴참나무
03. 충주 단호사 용송
04. 대구 동화사 오동나무와 느티나무
05. 보은 법주사 정이품송
06. 서울 봉원사 느티나무
07. 사천 다솔사 황금편백나무
<이 책 본문 中에서>
“처진소나무의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우리나라 처진소나무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운문사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수많은 전란과 화재 등 위기를 이겨내고 수백 년을 살아온 처진소나무는 희귀성과 존재만으로도 가히 국보급이라 할 만하다. 이는 오로지 수행 도량인 사찰 정원에서만 가능하다. 그것도 많은 스님의 온갖 정성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세월을 뛰어넘어 빛나고 있다. 이는 스님들의 생태와 환경에 대한 완벽한 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조계사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터에 뿌리내린 백송과 회화나무는 50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이 노거수들 덕분에 조계사는 단순한 근대 사찰을 넘어, 오랜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품은 공간으로 확장된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존재 자체로 시대를 증언한다. 사람은 떠나고 건물은 허물어져도, 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계절을 맞이한다. 조계사의 백송과 회화나무는 오늘도 도심의 소음 속에서 고요히 서서, 이 땅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과 사상, 그리고 시간을 품고 있다. 그늘에 잠시 머무는 이들에게, 이 나무들은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오늘날 망해사와 새만금 바람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갯벌의 생명력과 가치가 중요한가, 아니면 인간이 짧은 시간에 방조제를 막아 조성한 땅의 가치가 더 나은가.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하필이면 전 세계에서 온 잼버리 청소년 단원들이 겪은 혼란과 좌절을 통해 마주해야 했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본 팽나무는 이제 화마의 상처까지 입었다. 이중 삼중의 고통이다. 더 이상 이 나무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남은 여생만큼은,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의 낙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류세의 시대, 인간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겨온 오랜 습관을 되돌아봐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발전도 지속될 수 없다. 광흥사의 은행나무는 말없이 그 답을 보여준다. 한 자리에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일임을 이 나무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광흥사의 은행나무가 이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가길 바란다. 한글의 기억을 품고, 재난을 건너온 이 장대한 생명이 다음 세대에게도 조용히 말을 걸 수 있기를. 우리는 그 곁을 잠시 스쳐 가는 존재일 뿐이지만, 이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추천사>
『역사를 새긴 나무, 수행을 품은 숲』은 한국 사찰의 노거수를 따라 걸으며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겹쳐지고 이어지는지를 진지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사찰 마당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통해 풍경과 역사를 함께 읽어내는 길을 선택한다.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존재이며, 그 시간은 인간의 삶과 신앙,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학교숲과 사찰의 노거수를 찾아 기록해 왔다. “너무나 무관심했던 노거수를 자세히 보면서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출발점이자 중심이 된다. 나무를 오래 바라보는 일은 곧 시간을 바라보는 일이 되었고, 그 시간 속에서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마음이 책 속에서 드러난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의 몸에는 기후의 변화와 인간의 발원, 삶의 흔적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책에 등장하는 사찰의 나무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서 있다. 신륵사의 은행나무와 굴참나무, 조사당 앞의 향나무는 수행의 자리에서 시대를 지켜본 존재들이다. 저자는 이 나무들을 “수행자였고, 증인이었으며,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로 부른다. 왕조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제자리를 지킨 나무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강화 전등사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에 대한 기록에서도 이 책의 시선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를 자연유산이자 인문사적 텍스트로 바라본다. 나무의 나이와 형태, 그 곁에 쌓인 이야기는 한 사회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저자의 문장은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다. 나무 앞에서 느끼는 경외와 감사는 감정의 고조보다 오래 바라본 사람의 언어로 전달되었다. 오늘날 기술은 나무의 생장과 환경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은 태도에 있다. 나무를 데이터가 아닌 존재로 대하는 마음, ‘어르신 나무’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기록 전반을 이끈다. 정이품송을 비롯한 노거수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 자리는 공존의 자리이며,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태도다.
이 책은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그늘에 잠시 머무는 속도로 읽히는 책이다. 사찰을 찾는 이에게는 풍경을 깊게 바라보는 눈을 건네고, 자연을 연구하는 이에게는 기록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일상의 속도에 지친 독자에게는 오래 버티며 살아온 존재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책을 덮고 나면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깊어진다. 길가의 가로수와 학교숲의 나무, 사찰 마당의 노거수가 이전과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정보가 늘어서가 아니라, 존재를 대하는 마음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풍경으로 지나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노거수들의 가치를 알고, 더 오래 보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이학송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34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