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를 찾아서 -양산

양산 시립 독립 기념관 전시 -보성사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양산 시립 독립기념관 전

 

 양산시립 독립 기념관은 특별하다. 특별시도 아닌 도 아래 시가 만든 독립 기념관,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 우산 윤현진을 비롯한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장소이다. 

 

 전시를 둘러보다 삼일 만세 운동 당시 배포되었던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 관련 전시가 눈에 띈다. 천도교가 운영했던 출판사 겸 인쇄소였다. 삼일 만세 운동 전날 목숨을 걸고 독립선언서를 2만 매를 인쇄했던 곳으로 일제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옛 한글 표기대로 오른쪽부터 한 분씩 찾아서 알아보았다. 한국 역사 교육에서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으니 모르는 독립운동가가 너무 많다. 맨 오른쪽 분은 ‘倂憲’이 병헌으로 읽는데, 검색하니 한자가 다르고 보성사와 관련된 인물로 이병헌(李炳憲) 독립운동가가 나온다. 

 

 당시 한 일을 독립기념관 자료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2월 27일 경 오세창(吳世昌)이 독립선언서 원고를 보성사(普成社) 이종일(李鍾一)에게 인쇄를 부탁하자 인쇄를 돕고, 인쇄된 독립선언서를 밤 10시쯤 경운동(慶雲洞)에 있는 천도교당으로 운반하였다. 

 

출처: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do?searchWord=&reSearchWord=&searchType=all&index=1&id=10499

 

 그 옆에 분은 신영구(申永求) 님으로 독립적 자료는 나오지 않는다. 맨 왼쪽에 계신 이종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고 나온다.

 

김홍규는 인쇄직공 신영구(申永求)에게 인쇄하도록 하여 그날 밤 11시까지 2만 1천 매를 인쇄하여 이튿날 그에게 건네주었다.

출처: 공훈전자사료관

 

다음 분은 동암 장효근(張孝根) 독립운동가로, 공훈전자 사료관에서 당시 일을 이렇게 기록한다.

 

1919년 2월 27일에는 천도교 산하 보성사(普成社) 총무로 있으면서, 3·1독립선언서 21,000매를 인쇄하여 배포한 혐의로 3월 1일 체포되어,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5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Popup.do?goTocode=0&mngNo=835&kwd=%EC%9E%A5%ED%9A%A8%EA%B7%BC

 

그 다음은 김홍규(金弘圭) 독립운동가로 독립 기념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보성사에서 사장 이종일(李鍾一)과 함께 최남선(崔南善)이 지은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였다. 1919년 2월 27일 이종일의 지시로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작업한 「독립선언서」의 활자판을 가져와 이를 인쇄하였다. 오후 5시부터 같은 날 11시까지 신영구(申永求)를 비롯한 다수 직공과 함께 2만 1천매를 인쇄하였고, 다음날 이를 이종일에게 건네 주었다.

출처: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print.do?id=4260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알아야 할 분이 옥파 이종일 독립운동가이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다. 당시 보성사 사장이었고, 인쇄 관련 일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공훈 전자 사료관에 따르면 당시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

 

 2월 27일 그가 사장으로 있던 수송동(壽松洞)의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공장 감독 김홍규(金弘奎)에게 명하여, 최남선(崔南善)이 경영하던 신문관(新文館)의 직공이 짜서 최 린(崔麟)의 집에 보관중이던 독립선언서 활자판을 가져오게 하여 이를 인쇄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홍규는 인쇄직공 신영구(申永求)에게 인쇄하도록 하여 그날 밤 11시까지 2만 1천 매를 인쇄하여 이튿날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독립선언서 중에서 2천 매를 28일 보성사 간사인 인종익(印宗益)에게 주어, 그중 1천 5백 매는 전주(全州) 천도교구에 보내고, 나머지는 충주(忠州)로 보내어 밤중에 살포하도록 하였다. 또한 독립선언의 취지를 국내에 보도하고, 조선인에 의한 계속적인 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한 독립운동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천도교 대도주 박인호(朴寅浩)·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장(普成法律商業專門學校長) 윤익선(尹益善)과 더불어 독립신문을 발간하기로 협의하였다.

 

 이에 송현동(松峴洞)에 있는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손병희(孫秉熙)와 함께 민족대표로 서명한 독립선언서 전말을 기재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원고를 작성하여 윤익선의 명의로 발간하기로 했다. 또 3월 1일 자신이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김홍규로 하여금 독립신문을 인쇄케 하여 임준식(林準植)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날 오후 2시 인사동(仁寺洞)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자신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약 100매를 탁상에 놓고, 이 자리에 모인 민족대표에게 회람케 한 후, 함께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2&pageTitle=Merit&mngNo=8909

 

 이 중에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안다면 역사 공부를 심도 있게 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간 삶에서 중요하다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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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사: 

 동암 이종일

 

장효근일기: 

 

 

작성 2026.03.09 14:08 수정 2026.03.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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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