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철 작가, 정물 속에 숨겨진 뜨거운 생명력... "속초의 빛과 공기를 캔버스에 치환하다"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의 장엄한 능선과 동해의 푸른 파도가 교차하는 이 도시는 예로부터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파도의 역동성을 읽고, 누군가는 산의 침묵을 배운다. 하지만 장국철 작가에게 속초는 단순한 영감의 장소를 넘어선다. 그에게 이곳은 생의 뿌리가 단단히 내린 삶의 터전이자,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모든 예술적 사유가 잉태되는 모태와도 같다. 화려한 수식어로 자신을 포장하는 시대라지만, 장국철 작가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붓을 들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구도자적 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정물화’ 시리즈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비근한 사물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정지된 화면 속에 치열한 삶의 파동을 담아낸다.


장국철 / 정(情)-지난이야기 1985-2 / 146x112cm / Oil on Canvas 


-시간의 축적과 밀도 있는 고요의 미학

장국철 작가의 정물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시간의 축적’과 ‘밀도 있는 고요’다. 그의 캔버스 위에는 화병, 과일, 혹은 투박한 그릇들이 놓여 있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들이지만 작가의 손끝을 거치며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획득한다. 특히 사물에 투영되는 빛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에게 빛은 단순히 사물의 형태를 드러내는 물리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정지된 사물 속에 흐르는 무형의 시간대를 상징하며, 사물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매개체다.


화법 또한 독보적이다. 매끄러운 실사적 정교함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겹겹이 쌓아 올린 사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낸다. 붓 터치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깊은 고뇌와 물리적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이러한 두터운 마감(Impasto)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물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은 물론, 마치 입체적인 조각을 ‘만지는 듯한’ 촉각적 경험까지도 선사한다. 이는 평면의 캔버스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는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의 산물이다.


장국철 / 정(情) 2016-8 / 52x45cm(10호) / Oil on Canvas 


-지역적 정체성을 넘어선 보편적 미학

장국철의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속초의 향기’는 단순히 지역적 소재를 재현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작업실 창을 넘어 밀려드는 속초의 공기와 빛을 작가가 온몸으로 받아낸 뒤, 붓끝으로 거칠게 혹은 섬세하게 뱉어낸 호흡이다. 동해의 시린 겨울이 주는 서늘한 긴장감은 정물의 배경으로 스며들어 고독한 단단함을 부여하고, 여름날의 치열한 태양은 과일의 붉은 과육 속에 뜨거운 생명력으로 치환된다. 지극히 지역적인 풍경을 보편적인 미학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그의 작업은 우리 곁의 사물을 가장 근원적인 아름다움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장국철 / 정(情) 2024-3 / 91x72cm(30호) / Oil on Canvas 


-관찰의 치열함과 비움의 미학

장 작가의 작업 방식은 흡사 수행에 가깝다. 하나의 정물을 그리기 위해 수일, 때로는 수개월을 관찰에 쏟아 부어 사물이 지닌 고유의 ‘아우라’가 작가의 내면에 온전히 전달되는 찰나에 비로소 그는 붓을 든다. 초기작이 화면에 많은 소재들을 담아내는 구도였다면, 현재의 작품은 소재 하나에 집중하고 그것이 가진 고유한 질감과 미세한 빛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물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이러한 절제미는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멈춤’의 미학을 권유하며, 작품 앞에 선 이들에게 명상적인 순간을 제공한다.


장국철 / 지난이야기 2010-4 / 71x60cm(20호) / Oil on Canvas 


-가장 우리만의 것으로 세계와 소통하다

장국철 작가는 지역 예술인들과의 교류에도 앞장서며 속초 예술의 저력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정물화는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넘어선다. ‘사물’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를 묻는 그의 화법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해외 컬렉터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는 “가장 우리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격언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결과다.


작업실에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캔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떤 것은 푸른 어둠 속에 잠겨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어떤 것은 곧 다가올 황금빛 조명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다. 그의 정물화는 정지된 피사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 그 본질을 '번역'한 그림이다. 또한 지나온 과거를 읽어내고, 그 울림이 멈추지 않도록 미래로 흘려보내는 생명력의 기록이다.


장국철 / 지난이야기 2024-1 /116.8x80.3cm(50호) / Oil on Canvas 


-‘제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존재의 미학

결국 장국철 작가의 예술은 '제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심코 지나쳤던 투박한 그릇 하나에 작가의 치열한 관찰이 더해질 때, 그것은 비로소 위대한 예술적 서사로 격상된다. 그는 사물의 외형이 아닌 그 안에 깃든 시간의 밀도를 그린다. 지역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감동으로 나아가는 그의 붓질은 정물이라는 익숙한 소재가 얼마나 새롭고 찬란한 대서사시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앞으로도 끊임없이 증명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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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3.10 09:17 수정 2026.03.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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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