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시대,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

산업 재편: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

한국 기업에 부는 리쇼어링 바람

지속 가능성과 기술 주권의 딜레마

산업 재편: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

 

최근 국제 경제 질서의 변화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기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공급망 중심에 있었던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명제는 점점 더 위협받고 있으며, 많은 국가와 기업들은 공급망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빠르게 옮기고 있습니다.

 

이른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또는 '느린 세계화(slowbalization)'라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경제와 비즈니스 전략 전반에 새로운 시각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는 제조업 기반이 강한 한국에 더욱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고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연루된 한국 경제의 특성상, 이러한 변화는 위험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전환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Project Syndicate에 최근 게재된 Dr. Klaus Richter의 칼럼 'Deglobalization's Discontents: Rethinking Resilience in Supply Chains'는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리히터 박사는 지정학적 긴장, 보호무역주의 확산, 그리고 기후변화 위기가 과거의 효율성 중심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는 기업들이 리쇼어링(reshoring)이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특정 위험에 대한 탄력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비효율성과 예상치 못한 취약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과거에는 낮은 노동비용을 따라 생산 공정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효율성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안보와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리쇼어링은 자국 중심의 생산 및 배치를 강조하며, 프렌드쇼어링은 우호국 간 생산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리히터 박사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경향은 부작용도 동시에 수반합니다.

 

공급망 다변화는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비용 상승과 생산 효율의 저하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광고

광고

 

한국 경제는 특히 수출 중심의 제조업 기반과 IT 산업에서 높은 글로벌 연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탈세계화 트렌드는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지며, 이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역 갈등,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다툼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한국이 비용과 안정성을 모두 고려한 제조와 투자 전략을 새롭게 설계하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 부는 리쇼어링 바람

 

반도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은 모두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합니다. 원재료 조달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의 과정에서 여러 국가를 거치는 이러한 구조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지정학적 불안정성에는 매우 취약합니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예상치 못한 무역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이 전체 공급망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몇 년 간의 리쇼어링 바람은 한국 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공정을 본국으로 이전하거나 근처 경제권으로 이동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는 글로벌 거래가 축소됨과 동시에 각국 내수 시장의 의존도가 증가하는 트렌드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전량 리쇼어링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 비효율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특히 고도로 투입 비용과 기술 강도가 필요한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산업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리히터 박사는 단순한 비용 효율성을 넘어 지정학적 안정성, 환경 지속 가능성, 그리고 기술 주권 등을 고려한 다각적인 공급망 다변화 및 전략적 동맹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기술 주권은 특히 한국과 같이 첨단 기술 산업에 의존하는 국가에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핵심 기술과 부품을 특정 국가에 의존할 경우, 기술적 종속이 발생하고 이는 곧 경제적, 정치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광고

광고

 

따라서 한국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술 협력이 가능한 우호국들과의 전략적 동맹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성과 환경 문제는 탈세계화 시대에 더욱 큰 의미를 갖습니다.

 

기후변화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규제 강화의 흐름 속에서 기업은 더 이상 단독으로 효율성만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재활용 자원 사용, 탄소 배출 저감 운영 체계 등을 고려한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며, 공급업체 선정 시에도 환경 기준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리히터 박사가 지적한 대로,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취약성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특정 지역이나 우호국으로 공급망을 집중시키는 프렌드쇼어링 전략은 새로운 형태의 의존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리쇼어링을 통해 주요 부품 생산이 선진국으로 다시 이동할 경우,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 기회를 제한하고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 협력 체제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과 기술 주권의 딜레마

 

한국의 경우,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과의 협력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 실용적이고 유연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특정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국가 간 외교적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리히터 박사가 강조한 전략적 동맹 구축은 단순히 무역 협정을 넘어서, 기술 협력, 표준 제정, 규제 조화 등 다층적인 협력 체계를 의미합니다.

 

광고

광고

 

한국은 이미 여러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기술 주권과 공급망 안정성을 고려한 보다 전략적인 경제 동맹이 필요합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단기적 비용 절감보다는 장기적 탄력성을 우선시하는 공급망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는 다수의 공급원 확보, 재고 관리 방식의 변경,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공급망 가시성 제고 등을 포함합니다. 또한 환경 지속 가능성을 공급망 전략의 핵심 요소로 통합하여,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탈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효율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정책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리히터 박사가 제시한 다각적 접근법, 즉 지정학적 안정성, 환경 지속 가능성, 기술 주권을 모두 고려한 공급망 전략이 필요합니다.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의 외교적 협력과 전략적 동맹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단순한 비용 절감의 경쟁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포함한 새로운 가치 기준을 내세운 경쟁이 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논리와 효율성을 넘어서는 도전적 전환이 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장기적 비전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서준 기자

 

광고

광고

 

[참고자료]

project-syndicate.org

작성 2026.03.11 03:17 수정 2026.03.11 03:17

RSS피드 기사제공처 : 아이티인사이트 / 등록기자: 최현웅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