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시대, 글로벌 공급망의 방향은?

공급망 재편, 왜 지금 논의되는가?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의 명암

한국 경제가 맞이할 도전과 기회

공급망 재편, 왜 지금 논의되는가?

 

최근 몇 년간 세계 경제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및 산업의 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팬데믹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간의 지속적인 기술 및 무역 갈등 같은 지정학적 위기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경제 성장을 견인한 효율성 중심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고, 더 탄력적이고 안정적인 공급망 체제를 요구하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또는 '느린 세계화(slowbalization)' 추세를 낳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계 시장의 움직임이 아닌, 우리의 일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더욱 주목해야 할 변화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 변화는 왜 지금 발생하고 있는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지정학적 불안정성의 확대입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은 반도체, 배터리, IT 부품 등 글로벌 핵심 산업에 불확실성을 더하며 기업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떠안기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그 상징적인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반도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국, 일본, EU, 미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527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을 발표했으며, EU 역시 430억 유로 규모의 유럽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문제는 유럽 국가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함께,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은 전체 공급망 체제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Project Syndicate에 게재된 칼럼 'Deglobalization's Discontents: Rethinking Resilience in Supply Chains'에서 클라우스 리히터(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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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us Richter) 박사는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해 리쇼어링(reshoring, 생산기지 본국화)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우호국 간 교역 강화)이 활발히 논의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다국적 기업들은 자국 내 생산 기반을 확대하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우호국으로 제조시설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애플은 2023년부터 아이폰 생산의 일부를 중국에서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하기 시작했으며, 2025년까지 중국 외 지역 생산 비중을 25%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독일의 폭스바겐과 BMW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동유럽과 서유럽 내 생산시설 확충에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히터 박사는 이러한 전략이 단순하게 갈등을 해소할 만한 해법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리쇼어링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비가 상승하고 기존 공급망의 복잡성을 갑작스럽게 탈피하면서 또 다른 도전 과제를 낳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유럽 내부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면서 안정성을 얻는 대신 신흥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일부 상실한 사례는 이러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독일 기업들의 생산비용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대비 평균 30~40% 높은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최종 제품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프렌드쇼어링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습니다.

 

프렌드쇼어링은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우호국들 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존 공급망이 특정 지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리히터 박사는 "프렌드쇼어링이 특정 위험을 완화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의존성을 만들어내고 예상치 못한 취약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호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될 경우, 글로벌 경제의 다극화가 약화되고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성이 새롭게 형성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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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미국이 자국과 일본, 대만의 반도체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겪고 있는 압박은 이러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은 사실상 미국 내 생산과 우호국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의 명암

 

그렇다면 한국에 탈세계화는 어떤 도전과 기회를 가져올까요?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수출 의존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약 44%로, OECD 주요국 중 상위권에 속합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등 핵심 산업은 글로벌 밸류 체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글로벌 경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이 중 약 60%가 중국 및 홍콩으로 향하고 있어 미·중 갈등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습니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주요 소재와 부품의 수입 지연으로 발생한 생산 차질은 이러한 구조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글로벌 해상운임이 평소의 5배 이상 급등했고, 주요 항만의 물류 적체로 인해 한국 제조업체들의 생산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소비자는 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가격 인상과 배송 지연 같은 문제를 직접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 경제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글로벌 공급망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예상치 못한 충격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리히터 박사는 칼럼에서 "단순한 비용 효율성을 넘어 지정학적 안정성, 환경 지속 가능성, 그리고 기술 주권 등을 고려한 다각적인 공급망 다변화 및 전략적 동맹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다양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한국은 기존 세계화에서 쌓아온 기술력과 시장 신뢰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급망 중심 국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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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시장과의 협력 확대는 한국이 새로운 경제 허브로 도약할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여러 아세안 국가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새로운 허브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한국은 이들 국가와 긴밀히 협력하며 상생할 기회를 창출해야 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생산기지를 확대하며 베트남 전체 수출의 약 25%를 담당하고 있으며, LG전자 역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흥국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 시장 중심의 공급망 체제에서 벗어나 다극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신흥국은 생산기지와 시장을 제공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탈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한 한국이 다국적 기업들과 협력해 재생 가능 에너지 등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세계 시장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는 데 대응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2026년부터는 본격적인 관세 부과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는 탄소 배출량이 높은 제품에 대해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한국의 철강, 화학, 시멘트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기술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및 배터리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혁신을 이뤄야 합니다.

 

한국 경제가 맞이할 도전과 기회

 

리히터 박사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은 초기 투자 비용이 높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규제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하며 더 큰 경제적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한국의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이미 친환경 원료 조달과 재활용 기술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ESG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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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기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약 30%에 달하며,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은 이러한 위치를 공고히 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향후 예상되는 과제 중 하나는 정부와 민간 부문 간의 협업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단기적으로 기업들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 완화, 기술 개발 지원, 그리고 다자 간 협력 확대를 통해 개별 산업의 탄력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2025년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를 확대했으며, 2026년까지 관련 연구개발에 2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와 동시에 기업도 독립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2026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연간 30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가 차원의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업의 기술 혁신과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결합될 때, 한국은 탈세계화 시대에도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탈세계화는 단순히 지정학적·경제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삶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리히터 박사가 강조하듯,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과거의 공급망 모델은 이제 탄력성, 지속가능성, 기술 주권을 모두 고려하는 다차원적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와 민간, 그리고 국제적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에 힘쓴다면, 한국 경제는 단순한 적응을 넘어 이 변화를 주도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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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술력과 제조 역량, 그리고 유연한 대응 능력을 갖춘 한국은 탈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공급망 질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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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project-syndicate.org

작성 2026.03.11 03:21 수정 2026.03.11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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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