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고 민주동문회 창립대회 식전행사 “기념과 추모”에 참석한 작고동문 가족과 회원 일동(제공 : 대전고 민동)
지난 일요일(3.8)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대전 중구 선화동에 있는 ‘3.8민주의거기념관’에서 전국고교 최초로 대전고등학교(이하 대전고) 민주동문회가 공식출범했다. 충절과 겸양지덕을 미덕으로 알고 묵묵히 실천해 왔던 대전고 졸업생 약 100여 명 가운데 참석자는 약 40여 명이었고, 작고동문가족과 내빈 등 약 20여 명을 포함하여 모두 약 60여 명이었다.
젊은 세대가 극소수라 축시에서 스스로를 늦깎이라 부를 정도로 절대다수가 이순(耳順)의 나이를 훌쩍 넘긴 이들의 마음가짐과 마음다짐은 한선영(대고 60회) 시인이 헌정하고 낭송한 축시(붙임1) “저기, 흔들리며 꽃이 피네”와 이용범(대고 60회) 작가가 초안을 작성한 “이제 우리는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등)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하고자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창립취지문(붙임2)에 각각 잘 나타나 있다
예컨대, 이들은 “대전고 동문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관통하면서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합류하기도 했다”고 기억하면서 “그 과정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아직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된 동문이 있다. 의문 속에 희생됐지만,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동문도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이들 동문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들은 “학연과 지연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특정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열린 공동체가 될 것”이라면서 “모교의 민주적 운영과 건강한 발전을 지원하고 학교 공동체가 정의와 공공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도록 힘쓰며, 세대와 이념을 뛰어넘어 동문 간 연대와 상호 교류를 강화해 민주적 공동체로서 상부상조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들은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시대에 대전·충청 지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시민사회는 물론 지구촌 인류와 연대하여 더욱 성숙한 민주사회와 정의로운 평화세계로 나가기 위한 실천” 등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회장과 감사는 송운학(51회)과 송병춘(52회)이 각각 선출되었고, 상임고문 등 고문단으로 조성호(42회, 만 82세)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윤후상(78세, 46회)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대표, 정상모(78세, 46회) 전(前) MBC·한겨레 논설위원, 황인기(78세, 46회)가 각각 위촉되었다. 부회장단으로는 조성두(52회, 역사기억 평화행동 상임대표, 전 흥사단 이사장), 안은찬(55회), 정문호(55회), 하태훈(55회,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이 각각 인준되는 등 임원진과 공동총무단 및 운영위원회 구성도 완료했다.
이에 앞서 열린 식전행사 ‘기념과 추모’ 시간에서는 3.8민주의거 관련 영상물을 시청하고, 7~80년대 각종 형태로 펼쳐진 민주화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고(故) 황인철(대전고 36회) 변호사(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고 채광석(대전고 46회) 시인 겸 평론가 겸 문예운동가(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고 강구철(대전고 51회)·강구웅(대전고 55회) 형제, 고 오원진(대전고 51회) 5.18민주유공자, 고 김관회(대전고 52회) 5.18민주유공자(노동운동가), 고 김영진(대전고 57회) 노동운동가 겸 생명평화 운동가를 추모했다.
1972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유신 반대 시위와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다섯 번 구속됐고, 이후 대전 지역 민주 진영 맏형 역할을 해오다 2002년 간암 투병 중 별세한 51회 졸업생인 고 강구철 직계가족 등은 감사 메시지와 함께 즐거운 날 함께 하지 못하는 고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등을 밝혔다. 특히, 생활고와 차별 등을 겪었던 가족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러한 업적이 잊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 등 복합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을 전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지 못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날 김영진(60회) 대전고 총동창회장은 축사를 통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며 축하했다. 이어서 김제선 대전시 중구청장, 김창근 사)대전충청 5.18민주유공자 부상자회 이사장 등이 연대협력 의사를 밝혔다. 사)대전충남 민주화운동계승 사업회에서는 현 이사장 정종미(공주대 민주동문회 창립회장)와 전 이사장 김병국(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 겸 목원대 민주동문회), 상임이사 김황식(한남대민주동문회, 마당극단 우금치 대표), 조직위원장 손성훈(공주대 민주동문회) 등이 대거 참석하여 축하했다.
그밖에도 허태정 7기 민선 전 대전광역시장이 더민주 전국혁신회의 공동상임대표자격으로, 고 강구철·강구웅과 고 오원진 지인 자격으로 이완규(충남대 민주동문회)가 연대협력을 약속했다. 김동섭 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영복(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과 정성일(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및 황인식(충남대민동) 등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연대발언을 이어갔다.
촛불행동 단골가수로 유명한 백자가 아침이슬 등 축가 3곡을 연속으로 참석자들과 함께 제창하는 등 열창했고, 축하 퍼포먼스 역시 대전 대학생진보연대(대진연) 율동팀이 열연하여 선배세대에 대한 뜨거운 존경과 사랑을 나타냈다. 특히, 이들 율동팀은 접수도우미를 도맡았고, 그 대표는 실명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김한성 대전 촛불행동 상임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직접 현수막 좌우 끝을 잡는 등 솔선수범을 보여줬다.

3.8민주의거 기념탑 앞에서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원들(제공 : 대전고 민동).
동문들은 대전고 한모동산에 있는 애국지사 권용두 선생 기념비와 3.8민주의거 기념비 앞에서 또 둔산동 3.8민주의거 둔지미 공원에 있는 3.8민주의거 기념탑 앞에서 이기호(60회) 사회로 각각 순차적으로 묵념을 올리면서 추모했다. 특히, 25m짜리 거대한 기념탑 앞에서는 대전고뿐만 아니라 대전상고(현 우송고), 대전공고(현 한밭대), 보문고, 대전여고, 호수돈여고, 대전사범학교(1962년 2월 말 폐교, 그 자리에 충남고등학교 신설) 등 출신고교를 떠나 선배들이 못 이룬 꿈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했다.

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제공 : 대전고 민동).
한편, 송운학(대고 51회) 회장은 “촉박한 준비기간과 조사부족 등으로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독립투사 선배님들과 4.19혁명 과정에서 순국하신 선배님들에 관한 이력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자료집과 식순 등에 넣지 못했다는 죄송함과 아쉬움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송 회장은 “풀뿌리 민주제에 기초하는 지방분권·주민자치를 발전시키고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제를 도입·강화하여 일상적인 국민주권행사가 가능해야만,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나라를 만들 수 있고, 남북평화 상생공영이 담보되는 시대로 도약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짧은 시간에 민주동문 선후배 100여 명이 합류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소 다르지만, 3월 8일은 1909년부터 시작된 세계여성의 날이다. 1960년 바로 이 날 충청지역 제1명문 대전고 학생 1,000여명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 불법적 인권유린 등에 대항하여 “독재타도!” 등을 외쳤다.
원래는 대전시 고교생들이 연대하여 시위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보문고등학교는 3월 9일, 대전공업고등학교는 3월 10일부터 학기말시험(당시는 4월에 신학기 시작)을 실시하여 시위가 봉쇄되었다. 경찰 역시 3월 9일 대전고, 대전상고, 대전공고, 보문고 등 4개 학교 학생대표 24명을 연행 구속했다. 그리하여 대전여고, 대전사범학교, 호수돈여고 등은 끝내 교외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은 10일 다시 격렬한 시위를 감행했다. 3·8민주의거란 바로 이 모든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58년이 지난 2018년 11월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