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적응 없이 인간 전파 가능?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팬데믹에 대해 다소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 정도만 품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COVID-19 사태를 겪은 이후, 팬데믹은 더 이상 막연한 위협이 아닌, 언제든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과학계의 노력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유전자와 진화의 복잡한 세계에서 팬데믹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키는 방식은 과학과 일반 대중 사이에서 종종 오해되곤 합니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는 우리가 바이러스의 전파와 적응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의 연구팀이 주도한 진화 분석 연구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대부분의 전염병 또는 팬데믹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숙주 내에서 선택되거나 중간 숙주 내에서 장기간 진화하는 과정 없이 인간에게 직접 전파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그동안 과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통념에 큰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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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특히 코로나19를 유발하는 SARS-CoV-2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일각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왔는데, 이번 연구 결과는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자연 발생설에 힘을 실어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바이러스 감염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첫째는 바이러스가 동물 숙주 내에서 인체 감염에 적합한 변화를 일으켜 전파되는 방식이며, 둘째는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직접 전파되는 경우입니다. 전통적인 가설은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원 전 적응(zoonotic preadaptation)'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바이러스가 동물 숙주나 중간 숙주에서 먼저 인간 감염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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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러한 가설이 항상 정답은 아니며, 많은 경우 바이러스가 별다른 사전 적응 없이 바로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연구팀은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키고 지속적인 인간 간 전파를 달성하기 전에 반드시 적응해야 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바이러스 게놈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광범위한 동물원 전 적응은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의 인간 간 전파에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바이러스 유전체(genome)의 포괄적 분석에 있습니다. 연구팀은 SARS-CoV-2를 비롯하여 에볼라, 마르부르크, 엠폭스(mpox), 인플루엔자 A 등 다양한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들의 유전체를 분석했습니다.
이들은 팬데믹을 일으킨 여러 바이러스들이 이론적으로 이미 인간을 감염하고 전파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별한 진화적 준비 과정이나 중간 숙주에서의 장기간 적응 없이도 동물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 간 전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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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주도한 밸류르트하임(Wertheim) 교수는 "팬데믹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기 전에 진화적으로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 연구 결과가 반박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는 "많은 바이러스가 이미 인간을 감염시키고 전파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이며, 오히려 중요한 점은 "다양한 동물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노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문제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진화적으로 준비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바이러스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떠한 전파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지라는 것입니다.
SARS-CoV-2 기원 논쟁에 새 장
이 발견은 COVID-19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SARS-CoV-2가 실험실에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너무나 효과적으로 전파되는 점을 근거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가 특별한 인위적 조작 없이도 자연적으로 인간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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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유전체 수준에서 자연적인 인수공통감염 출현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립함으로써, 자연적인 유출과 실험실에서의 부주의한 처리 또는 장기간의 인위적 선택을 구별하기 위한 과학적 벤치마크를 제공했습니다. 이 벤치마크는 단순한 비교 기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향후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 그것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여 자연적 진화 패턴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변이 패턴을 보이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다른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도 중요한 도구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이와 같은 발견은 팬데믹 대비 전략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과학계와 공중보건 당국은 오랫동안 특정 바이러스의 진화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얼마나 변이했는지, 어떤 유전자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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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연구는 바이러스 자체의 변화보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떤 경로로 노출되고, 얼마나 빈번히 접촉하게 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팬데믹 예방 전략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히 백신 개발이나 치료제 연구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동물의 접촉 지점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야생 동물 시장의 관리 강화, 산림 개발과 도시 확장으로 인한 야생 동물 서식지 침범 최소화, 가축과 야생 동물의 접촉 차단, 그리고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조기에 발견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인간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전에는 접촉할 일이 없던 야생 동물과의 접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림 파괴, 도시화, 기후 변화 등으로 동물들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인간의 거주 지역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동물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노출 기회를 크게 증가시킵니다.
연구팀의 발견에 따르면, 이렇게 노출 빈도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팬데믹의 주요 위험 요인이 됩니다. 또한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한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감염이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COVID-19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항공 여행과 국제 교역의 발달로 바이러스는 며칠 만에 대륙을 넘어 전파됩니다.
따라서 바이러스 모니터링 시스템은 단순히 한 국가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 체계로 구축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오래된 생태적 관계를 다시 조명하고, 이를 공중보건 정책에 반영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요구됩니다.
미래 팬데믹 예방을 위한 시사점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시사점은 바이러스 감시 체계의 방향성입니다. 기존에는 이미 알려진 위험한 바이러스들의 변이를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동물이 보유한 다양한 바이러스들 중 어떤 것이 인간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많은 바이러스가 이미 인간 감염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잠재적 팬데믹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연구팀이 분석한 바이러스들의 사례는 이러한 위험성을 잘 보여줍니다. 에볼라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인간으로 전파되어 치명적인 출혈열을 일으킵니다. 엠폭스는 설치류에서 인간으로 전파되며, 인플루엔자 A는 조류와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됩니다.
이들 모두 특별한 사전 적응 과정 없이도 인간 감염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동물 바이러스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학적 발견이 입증됐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현대 사회가 단지 과거의 치료나 예방 방법만으로 미래의 위협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새로운 팬데믹 가능성을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해 보다 넓은 시각과 다방면의 접근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팬데믹의 기원이 무엇이며, 그로부터 우리가 얻을 시사점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정책과 사회적 인식에도 큰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가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바이러스의 변화를 기다리며 대응하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접촉 지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광범위한 바이러스 감시 체계를 구축하며,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능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음 팬데믹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이 질문은 어쩌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답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만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류는 지금 과학이라는 도구로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역할로 이 싸움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번 연구가 제공하는 통찰은 그 싸움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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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