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을 담은 병명, 그 부작용과 대안
우리 주변의 언어가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고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됩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무심코 흘러나온 농담이나 대화의 한 구석에서 이러한 언어적 편향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질병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관심사를 다루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사회적 영향은 무엇일까요?
사이버 외교 사절단인 반크(VANK)가 오늘(2026년 3월 12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반크는 지역 이름이 포함된 질병명이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사회적 낙인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같은 정부 기관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하나가 특정 지역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반크는 이러한 명칭이 특정 지역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조장하고 사회적 낙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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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병명에서 '아프리카'를 삭제하는 형태로 현실적인 용어 변경을 제안하며, 기존 용어 전체를 당장 교체하기 어렵더라도 아프리카를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편견 생성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중립적 병명을 나타내는 'ASF형 돼지열병', 병리학적 특성을 반영한 '돼지출혈열' 또는 '돼지급성열성질환', 그리고 중립적 약어 노출을 확대하는 형태의 'ASF(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을 제시했습니다.
반크가 제기한 문제의 중대한 점은 이미 다수의 국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바이러스가 2020년 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변경된 사례가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질병 명칭을 명명할 때 사람, 지역, 동물, 식품, 문화, 인종, 직업 등 특정 정체성을 연상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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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잘못된 이름이 특정 지역에 불필요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WHO는 또한 이 같은 명칭이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반에 대한 편견과 인종 차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원숭이두창'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질병은 2022년 12월 '엠폭스(MPOX)'로 명칭을 변경한 바 있습니다.
이전 명칭이 특정 동물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할 뿐 아니라 미디어와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동물성 질병이 맥락 없이 특정 지역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기에 반크의 문제 제기는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언어적 논란 이상의 중요성을 갖습니다.
이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질병을 논의하고, 방역 연대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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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질병명에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이 방역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표현만 들어도 해당 질병이 처음 발견되거나 확산되었던 주된 지역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초기 방역 작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 혼란을 줄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제적 가이드라인과 변화의 흐름
하지만 반크는 이에 대해 명칭이 바뀌더라도 중요한 정보는 여전히 병리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예를 들어, 'ASF형 돼지열병'이나 '돼지출혈열', '돼지급성열성질환' 같은 대안적 명칭은 의학적 정보를 더 잘 반영할 뿐 아니라 지역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입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국내 주요 부처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낙인 현상을 인지하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낙인을 지운 자리에 방역을 위한 연대의 첫걸음이 형성되고 명칭을 바꾼 자리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실천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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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의 2015년 질병 명명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접근의 국제적 표준을 제시합니다. 가이드라인은 질병명에 사람의 이름(예: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지역명(예: 중동호흡기증후군), 동물명(예: 돼지독감), 식품명(예: 조개독), 문화나 인종(예: 레지오네어병), 직업명 등을 포함하지 말 것을 명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 배려를 넘어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이 방역 협력을 저해하고 경제적 피해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질병이나 동식물 방역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 왔습니다.
반크의 이번 제안은 사회적 낙인 효과를 줄이고 방역 연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이러한 용어의 개선은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활동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특히 WHO의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한국이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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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과제는 명백합니다. 첫째, 전국 각지의 정부 기관과 전문가 그룹이 이번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입니다. 질병학 전문가는 명칭 변경 과정에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확산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같은 주무 부처가 반크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관련 학계 및 국제기구와의 협의를 통해 과학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명칭을 도출해야 합니다. 둘째,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이번 명칭 변경이 왜 중요한지, 왜 사회적 편견이 문제인지 지속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이는 교육 분야에서도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질병명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다루고, 언어가 편견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글로벌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데 중요합니다. 또한 언론과 방송 매체가 새로운 명칭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그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사회적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과 미래 과제
셋째,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설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WHO와의 지속적인 협조와 논의를 통해 세계적인 질병 명칭 프레임워크 구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코로나19 방역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질병 명명의 윤리적 기준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국제 학술회의나 보건 포럼에서 한국의 사례를 공유하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더 포괄적이고 공정한 질병 명명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여가 될 것입니다. 넷째,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명칭 변경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방역 효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명칭 변경이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충분한 안내 기간을 두고, 관련 법령과 지침을 정비하며, 현장에서 일하는 방역 담당자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명칭이 기존의 과학적 정보와 데이터베이스와 잘 연결되도록 체계적인 전환 계획이 필요합니다.
결국,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명칭은 단순한 언어적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사회적 인식, 국제 관계,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용어 사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인류가 연대하는 방식을 재정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단어 그 이상이며, 앞으로 펼쳐질 국가와 사회 간 협력과 신뢰 형성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질병 명칭 변경을 넘어 더 큰 질문을 제기할 때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얼마나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반영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는 모든 인류에 대해 공정한가라는 물음입니다. 반크가 오늘 제기한 이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질병명을 바꾸자는 제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언어를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지를 되묻는 계기입니다. 박기태 단장이 강조했듯이, 낙인을 지운 자리에 방역 연대의 첫걸음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질병 관리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인식과 인권 문제까지 고려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내리는 선택이 내일의 더 공정하고 연대하는 세계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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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