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인간 사회의 모순과
윤리적 빈틈을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존재에게 무엇을 물을 수 있을까. 이 책 『로봇 의식 연구』는 인간과 닮아가는 로봇의 행위와 감정, 책임을 둘러싼 질문을 통해 인간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순찰로봇, 사고현장의 아바타, 자율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 이들이 저지른 사건 앞에서 법과 윤리는 흔들리고, 기억과 감정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인간의 명령을 따른 로봇이 죄를 물을 수 있는 존재인지, 자전적 기억을 부여받은 인공지능이 ‘자아’을 가질 수 있는지, 독자는 각 단편을 통해 복잡한 사유의 문을 마주하게 된다.
기술의 미래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책임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이 책은, 장르를 넘나드는 서사와 절제된 문장으로 독자들의 시선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금, 이미 도착한 미래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을 남긴다.
<작가소개>
소설가 한동훈
196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1996년 서울로 상경하여 IT업계에서 일했다. 리눅스용 한글 입력 라이브러리 ‘달래’를 제작했다. 2002년부터 영미소설을 번역하면서 소설 창작에 손을 댔다. 2005년 모 문예지 최종심에 단편 「안개 속에서」가 올랐다. 희곡 「탈출기」로 2006년 근로자문화예술제 희곡 부문 은상을 받았다. 2006년 앤솔러지 『돌솥비빔밥』에 단편 「슬픈 낙하」를 실었다. 2010년 공연창작집단 ‘소소’가 희곡 「창작의 조건」(원제: 새벽 2시의 알리바이)을 무대에 올렸다. 2011년부터 주로 영화 촬영현장에서 촬영기사, 동시녹음기사로 활동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2020년부터는 프로그래밍 · 인공지능 알고리즘 · 철학 · 뇌과학 · 로봇공학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 있는 인공지능(conscious AI)’을 개발하기 위해 골방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2021년 여름에 시 쓰는 시봇(PoemBot ver 0.1)을 개발했다.
유튜브 채널 ‘미친토끼일기’, 네이버 블로그 ‘미친 토끼의 가출일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
현실 편
앙심
고의
기억
나쁜 손
장마철
우정
몽상 편
반려자
16년 뒤
합성인간 살인사건
<이 책 본문 中에서>
“근래 들어 주차 위반 범칙금을 두 번 문 적이 있는데 저놈의 짓이었을 것이다. 저기 안쪽에 소공원이 있고 그 둘레 사면에는 원래 주차를 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그중 한 면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편입되었고, 하지만 초등학교가 아닌 작은 사설 유치원이 있는 구역이라 굳이 단속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주차를 했고 두 달 전에 처음으로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 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다. 화가 나서 시청에 전화로 따졌지만 놈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닌 길가 귀퉁이에 주차를 했는데 과태료 고지서가 또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분노를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시청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를까도 생각했지만 여기서 내 인생을 끝내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시청 담당 부서를 찾아가 적절한 선에서 행패를 부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로봇에게 자아를 심는 일은 비록 기초적인 형태로나마 유럽의 몇몇 연구소에서 어느 정도 진척을 보고 있고, 우리는 오 년 전에 시작해서 이제 겨우 삽화기억 구성요소를 압축 및 저장하고 검색 및 인출하여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을지 예측하는 기본 알고리즘 구현 작업에 이제 막 진입했다. 이대로 십 년만 더 진보한다면 로봇에게도 이제 사람의 그것과 견줄 만한 자아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니 그들만의 권리장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십 년이 더 지나면 동종 및 이종 로봇 사이의 통신 프로토콜과 네트워크가 규격화되어 그것에 기반해 그들만의 강력한 협력 체계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때쯤 되면 스카이넷이라 불리는 그들만의 연합체가 인류에 반기를 들고 굴종의 사슬을 끊고 자유를 위한 성전에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순간 녀석이 빙긋 웃었다. 녀석의 안면 안쪽에 있는 엘이디 컬러 조명이 눈썹과 입 모양을 만드는 기능을 하고 있었는데 자줏빛 눈썹이 가운데로 모이고 입꼬리가 올라갔던 것이다. 녀석의 형제들이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외롭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 녀석이 미소를 지었는지 아니면 내가 무심결에 명이라는 단위를 사용해서 제 형제들을 사람으로 대우했다고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덧 나는 녀석에게 마음이나 기분 같은 성질이 있다고 가정하고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인공지능 연구자가 마음이나 기분 같은 비과학적인 개념을 로봇에게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권장할 바가 못 된다. 무릇 과학은 엄밀한 검증과 빈틈없는 논증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니까.”
“녀석이 그곳을 부목적지로 설정하고 내일빌라를 최종 목적지로 설정한 다음, 안방에서 수사하는 경찰관들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도로로 나선다. 부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하부목표들이 세워지고 실행된 텍스트들이 화면에 오버랩된다. 길을 걷는 오공의 시야에는 한낮의 평범한 거리 풍경이 펼쳐진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오가는 인근 공장 노동자들, 자전거를 타고 오공을 피해가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신기한지 오공을 뒤따르며 흉내내는 꼬맹이들, 쇠붙이 주제에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고함치는 어떤 부주의한 운전자…… 녀석은 꿋꿋하게 걸어서 부목적지에 도착한다. 녀석은 팔차선 대로 횡단보도 앞에 멈추어서서 다시 생각한다.”
<추천사>
한동훈의 소설집 『로봇 의식 연구』는 인간과 닮은 존재를 마주한 세계에서, 결국 인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야기들로 엮여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기계적이고 편리함의 수준을 넘어서 삶의 방향과 방법을 바꾸는 시대로 접어든 지금, 이 책은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 주체는 누구이며,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기술의 발전이 아닌, 존재의 바닥을 건드리는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의 의식 비슷한 것을 인공지능 로봇에게 이식했을 때 그 로봇의 행위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고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작가가 이 소설집 전체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이 물음은 작품 전편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예컨대, 자율 판단 기능을 갖춘 로봇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규정된 명령을 어기는 에피소드는, 명령 복종과 도덕적 판단 사이에서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로봇이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 그것을 설계한 사람과 명령한 사람, 행동한 기계 사이에서 책임은 어떻게 나뉘는가. 기억을 학습한 로봇은 과거를 가질 수 있는가. 감정이 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낯선 사건에 담아 조용히 풀어낸다.
작품 속 로봇들은 설계된 장치를 넘어, 순찰을 돌고, 사고현장에 투입되며, 인간을 닮은 표정을 짓는다. 때로는 기억을 흉내내고, 인간보다 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들이 한 행동은 늘 법과 윤리의 회색지대를 건드린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로봇이 또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고, 인간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던 로봇이 결국 기소되는 상황도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로봇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책임, 그리고 사회의 판단 기준을 되묻는다. 로봇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판단, 죄의식, 그리고 책임의 기준이 드러나는 순간, 이 소설집은 과학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 책 『로봇 의식 연구』의 여러 단편은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사회적 논쟁을 정면으로 다루기도 한다. 법정에서 로봇의 책임을 다투는 장면이나, 인공지능이 저지른 사고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은 장르적 긴장감을 더하면서도 현실적인 딜레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일관된 질문이 흐른다. 인간의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인지과학과 뇌과학, 철학적 개념들이 등장하며, 자아가 하나의 층위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구성된다는 관점, 기억이 곧 존재의 서사라는 생각은 인물들의 선택과 사건의 전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조합해낸 로봇이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며 후회나 책임감을 느끼는 장면은 자아 형성과 기억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다. 로봇에게 자전적 기억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되돌려준다. 우리는 기억을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억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가.
이 소설집은 기술에 대한 낙관도, 공포도 경계한다. 로봇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과장되지 않으며, 동시에 무조건적인 희망의 대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로봇은 인간 사회의 모순과 윤리적 빈틈을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인간이 로봇을 훼손했을 때와 로봇이 인간에게 위해를 가했을 때, 적용되는 법과 도덕의 기준은 얼마나 공정한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평등과 권리라는 개념은 더욱 복잡해진다. 작품 속에서 제기되는 로봇사형이나 로봇 시민권의 문제는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이지만,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야기의 무게가 과장되지 않는 데에는 서술의 태도도 한몫한다. 이야기의 밀도를 견고하게 만드는 문장은 불필요한 수사를 덜어낸 채, 조용하고도 명료하게 세계를 정렬한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상황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로봇 관제 시스템의 구조, 학습 데이터의 한계, 촉각 전달 기술에 대한 묘사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만들면서도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불완전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 불완전함은 결국 인간 자신을 닮아있다. 이 소설들이 오래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갈등과 윤리적 선택의 문제는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의 생각을 자극한다. 빠른 전개와 대화 중심의 구성은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며, 각 단편이 남기는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이 도달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이 책이 묻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이미 도착한 현재이며,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로봇의 의식을 묻는 이야기들은 결국 인간의 의식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 소설집은 그 성찰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시작하게 만든다.
(한동훈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72쪽 / 국판형(148*210mm) / 값 1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