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고처럼 쌓아 올리는 집… 주택 공급 해법으로 떠오른 ‘모듈러 주택’
정부 공급 확대 정책 속 주목받는 신개념 건축 방식… 공사 기간 단축·안전성 개선 장점, 비용과 제도 보완은 과제
주택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이 새로운 주거 건설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모듈러 건축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공사 기간 단축과 안전성 확보라는 장점이 있지만, 높은 건설 비용과 제도적 미비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모듈러 주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9·7 공급대책에서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언급하면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국회에서는 모듈러 건축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도 발의된 상태다.
모듈러 주택은 기존 건설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벽체와 배관, 욕실 등 주요 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이를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는 방식이다. 전체 공정의 약 70~80%가 공장에서 이뤄진다. 건물을 현장에서 하나씩 만들어 올리는 기존 방식과 달리, 블록을 쌓듯 모듈을 결합해 완성하는 구조다. 건설업에 제조업 방식을 도입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만큼 날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비나 폭염, 혹한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적어 전체 공사 일정이 안정적으로 관리된다.
모듈러 주택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공사 기간 단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기존 공법보다 공사 기간을 약 20~30% 줄일 수 있다.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구조물을 현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공정이 단순해진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건설 현장의 사망 사고 가운데 절반 이상이 추락 사고인데, 모듈러 방식은 고층 작업이 크게 줄어든다. 난간 설치나 지붕 작업처럼 높은 곳에서 이뤄지는 공정이 감소하면서 사고 위험도 낮아진다.
건설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공장 자동화 설비를 활용하기 때문에 현장에 필요한 인력 규모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비교적 균일한 품질의 주택을 짧은 기간 안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특히 은퇴 이후 도시 외곽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수요층 사이에서는 모듈러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모듈러 주택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모듈러 공법이 단독주택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아파트와 같은 고층 건물에도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경기 시흥시 거모동 공공주택 건설 사업 계약을 체결하며 14층 규모의 스틸 모듈러 주택 건설 계획을 밝혔다. 완공될 경우 국내 최고층 스틸 모듈러 아파트가 될 전망이다. 이 사업에는 고층 모듈러 내화 기술과 모듈 간 접합 기술이 적용된다. 화재 상황에서도 구조 안정성을 유지하고, 고층에서도 모듈을 정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기술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아파트는 현대엔지니어링이 2023년 준공한 용인영덕 행복주택으로 13층 규모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모듈러 주택은 기존 건설 공법보다 공사비가 약 30%가량 높다. 아직 대량 생산 체계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해 공장 유지비와 전문 인력 인건비가 높기 때문이다.
운송 문제도 제약 요인이다. 모듈 단위로 제작된 구조물을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도로 폭이나 운송 경로에 따라 설치가 어려운 지역도 발생할 수 있다. 공장 생산 방식 특성상 설계가 비교적 정형화된다는 점 역시 단점으로 지적된다.
제도적 기반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모듈러 건축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법안에는 모듈러 건축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생산 인증과 건축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건폐율과 용적률 완화, 통합 발주 허용, 공사용 자재 직접 구매 의무 일부 완화 등 규제 특례도 포함됐다. 제도 지원을 통해 높은 건설 비용 부담을 낮추고 산업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도 모듈러 주택 확대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9·7 공급대책에서는 수도권에 저층 모듈러 주택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매년 약 3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을 모듈러 방식으로 발주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공공 발주 물량이 늘어나면 공장을 상시 운영할 수 있어 생산 효율이 높아지고 비용도 점차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 전망도 밝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국내 모듈러 공동주택 시장 규모가 올해 2538억 원에서 2030년 1조7500억 원 수준으로 약 7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려는 정부 정책과 건설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모듈러 주택은 앞으로 국내 건설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