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InterBattery) 2026’은 전기차 시대 이후 배터리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케 한 중요한 이정표였다. 이번 전시회의 표면적인 주제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었으나, 전문가들이 관통한 핵심은 결국 지식재산(IP) 확보와 소재 경쟁으로 집약되었다.
LG에너지솔루션 이한선 전무는 배터리 산업 경쟁의 본질을 “특허 확보의 속도”에서 찾았다. 연구 개발 주기가 짧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특허 선점은 곧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좌우하는 척도가 된다. 특히 이 전무는 대학 및 국공립 연구기관의 기초 연구 성과를 기업 실무로 연결하는 산학연 협력 체계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술 개발 속도에 발맞춘 신속한 특허 심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특허 심사가 지체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세대 배터리 연구 방향을 제시한 김영환 단장은 한국 연구 환경의 구조적 맹점을 꼬집었다.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먼저 발표한 뒤 특허를 출원하는 기존 관행이 기술 패권 전쟁이 한창인 배터리 산업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논문 발표보다 특허 확보를 우선하는 연구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R&D 성과가 즉각적으로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기술 경쟁 측면에서 김 단장은 최근 시장을 잠식 중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대해 냉철한 진단을 내놓았다. 현재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LFP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은 이 분야의 후발 주자이지만, 미래 기술의 향방이 반드시 LFP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차세대 모빌리티에서는 LFP의 낮은 에너지 밀도가 한계로 작용하므로, 더 고차원적인 성능을 구현할 배터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삼성SDI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수요처로 급부상함에 따라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 또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소재 경쟁의 패러다임 변화다. 그간 배터리 산업의 주전장은 양극재였으나, 전문가들은 양극재 기술이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한다. 향후 연구의 핵심은 음극재 개발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며, 특히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실리콘 기반 음극 소재 등이 핵심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컨퍼런스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배터리 산업의 미래는 단순히 생산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독보적인 특허권과 소재 기술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 속에서도 ESS, 로봇, AI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배터리는 이제 단순한 부품을 넘어 미래 산업의 ‘에너지 인프라’로 거듭나고 있다.
향후 5~7년은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명운을 가를 골든타임이다. 이 기간 동안 누가 더 견고한 특허 장벽을 쌓고 차세대 소재 기술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배터리 패권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