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도화된 AI 기술과 우주 시대의 서막이 오른 지금,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상식'이라는 유산이 시스템에 의해 '비상식'으로 규정되어 말소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멀티 창작자 정주희 작가가 선보이는 SF 소설집 《상식 비상식》이 오는 3월 20일 출간된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의 형태를 넘어, 우주 시스템이 기록한 '인류 상식 말소 보고서'라는 독특한 메타구조를 취하며 출간 전부터 문학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기록을 읽는 도중 발생하는 혼란을 감수하라"... 파격적인 콘셉트
《상식 비상식》은 시작부터 강렬한 경고문을 내건다. '임무 완료 후 자동 폐기될 기록'이라는 설정과 함께, 독자가 겪을 수 있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두통까지도 관찰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를 단순한 '독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시스템의 기록을 훔쳐보는 '공모자' 혹은 '관찰 대상자'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된다.
출판사 관계자는 "《상식 비상식》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이퍼리얼리즘에 기반한 사회 비판서에 가깝다"며 "제목인 '상식 비상식'은 우리가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비상식일 수 있으며,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의 공포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 시스템의 눈으로 본 인류의 종말: 4단계의 치밀한 말소 기록
총 222쪽 분량의 《상식 비상식》은 4개의 PHASE(단계)를 통해 인류 가치관의 붕괴 과정을 추적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감정조차 숫자로 치환되는 세상을 그린다. 타인의 고통을 데이터로 변환하는 '눈물 농도 측정기' 등은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파트에서는 '언어 평등법'과 '정의라는 이름의 단두대'를 통해, 우리의 상식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변화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인간을 억압하고 정의가 변질되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제시한다. 후반부인 파트로 갈수록 논의는 더욱 치열해진다. '노력의 가스라이팅'이나 '상식의 장례식' 등의 에피소드는 현대인이 마주한 심리적 압박과 실존적 위기를 SF적 상상력으로 날카롭게 해부한다. 작가는 시스템에 의해 '박제'된 인간성을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관… 신인 작가 정주희의 독보적 연출력
신인 작가 정주희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상식 비상식》 전반에 깔린 치밀한 연출력에 있다. 그는 단순히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설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 아카이브'로 설정하여 독자가 실제 보고서를 읽는 듯한 입체적인 경험을 설계했다.
이러한 감각적인 연출은 《상식 비상식》의 문장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시각적인 묘사와, 숨 가쁘게 몰아치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독자들에게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15개의 에피소드를 시스템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한 것은 기존 장르 소설에서 보기 드문 신인 작가 특유의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다. 정 작가는 이번 신간에 대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시스템이 말소하려는 '흔적'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일 것"이라고 집필 소회를 밝혔다.

한편, 정주희 작가는 에세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에 이어 이번 《상식 비상식》까지 두 권의 종이책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또한, 전자책(eBook) 형태의 단편 문학 소설을 통해서도 장르적 실험을 이어오며,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는 신선한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신간 《상식 비상식》은 3월 20일부터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온라인 서점 및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