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경쟁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
지난 3월 초,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수출 제한 조치가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검토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국의 전략적 대결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 의존도와 미국과의 동맹 관계 사이에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동시에 한국이 글로벌 기술 공급망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미중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 차원을 넘어섰다. 이는 각국의 경제 구조와 산업 정책, 나아가 국제 사회의 경제 질서 전반을 재편하는 복합적 이슈로 부상했다.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 롬바르드 오디에(Lombard Odier)가 2026년 3월 6일 발표한 칼럼 'US–China technological rivalry: the tech space race of the century'는 이를 20세기 미소 우주 경쟁에 비유하며 '기술 우주 경쟁(tech space race)'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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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미국과 중국이 희토류, 에너지, 컴퓨팅 파워, 첨단 칩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전략적 취약성을 느끼고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인 기술 리더십 경쟁을 촉발하고 관련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국가 안보와 기술 자립을 확보하기 위해 핵심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500억 달러 이상을 반도체 제조 시설에 투자하고 있으며, 중국의 첨단 칩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수출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자국의 기술 주권을 주장한다. 2026년 3월 13일 인클(Inkl)이 보도한 'Business Brief: China Rejects U.S.
Trade Probes Over Excess Capacity'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 제기한 '초과 생산 능력(excess capacity)' 문제에 대한 무역 조사를 '정치적 조작'으로 규정하며 일방적인 관세 조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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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이를 자국 산업을 억압하려는 시도로 간주하며, 글로벌 기술 공급망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대립은 단순히 미중 간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파트너 국가들, 특히 한국처럼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나라들에게는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2025년 기준 전체 수출의 약 20%를 반도체가 차지하며, 중국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최대 시장(약 40%)이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의 핵심 안보 동맹국이자 첨단 기술 협력 파트너다. 이러한 구조적 딜레마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양측의 규제를 동시에 준수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역시 반도체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합산 점유율이 약 7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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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위치가 점차 위태로워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확장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며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려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을 국가 전략 목표로 설정하면서,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의존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한국 산업의 대응
배터리 산업 역시 이 같은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핵심 소재의 수급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중국은 이들 소재의 가공 및 정제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리튬 정제의 약 60%, 코발트 정제의 약 70%를 담당한다.
중국이 이러한 전략적 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원자재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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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정부 차원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과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한 적극적 투자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호주, 캐나다, 칠레 등과의 광물 자원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에서 직접 광산 지분을 확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이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수 있다.
롬바르드 오디에 칼럼은 기술 패권 경쟁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제 성장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칼럼은 "미중 간 기술 경쟁은 전 세계적인 성장 동력의 투자 주기를 지원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양국 모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과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첨단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투자 경쟁은 글로벌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고, 관련 산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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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 틈새에서 전략적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에게 필수적인 파트너다. 미국은 한국을 '칩4 동맹'의 핵심 멤버로 포섭하려 하고 있으며, 중국은 여전히 한국산 고급 반도체와 배터리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위치를 활용하여 한국은 양측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인공지능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선제적 투자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indispensable partner)'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낙관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미중 갈등이 지속될수록, 특히 한국이 한쪽에 과도하게 치우친 정책을 채택할 경우 경제적 리스크가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요구에 전적으로 부응하여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경우 단기적으로 막대한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며, 반대로 중국과의 협력을 지속하다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경우 첨단 기술 접근이 차단될 위험이 있다.
또한 인클 기사가 지적하듯,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인한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 차질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경제 불안정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조업 원가를 높이고, 이는 한국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향후 전망: 균형과 기회에서 답을 찾다
다른 반론은 한국이 자립에만 집중하면서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 경쟁의 최종 목표는 단독 주체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각국 간 협력과 상호 보완 관계를 통한 공동 번영일 가능성이 높다. 롬바르드 오디에 칼럼도 장기적으로는 기술 표준화와 국제 협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한국은 자체 기술 역량 강화와 더불어 유럽, 일본, 대만 등 제3국들과의 다자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EU의 '유럽 칩법(European Chips Act)'이나 일본의 반도체 재건 전략과 연계하여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한국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의 균형 잡힌 대응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미중 양측의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사업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내 생산 시설의 기술 수준을 조정하거나, 미국·유럽 등 제3시장에서의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전략에 대해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국산화율을 높여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해외 기술 협력을 통해 최신 기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미중 기술 경쟁 속에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강력한 산업 기반, 우수한 인재, 높은 기술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세계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기술 리더십 쟁탈전이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롬바르드 오디에가 말하는 '기술 우주 경쟁' 시대에 한국의 선택은 신중하되 대담해야 한다. 미국, 중국과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면서도,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제3국들과의 다자 협력을 강화하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할 때, 우리는 이 격변의 시대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기술 경쟁 속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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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