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만족(滿足)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가정의 달에 들려주는 시인 한정찬의 시

 

 

만족(滿足)

 

 

오월이다.

 

초록은
빛을 오래 사귄 잎사귀들로
산하를 수채화로 채우고

사람들은
한동안 잊고 살던 이름 하나씩
가슴 깊은 서랍에서 꺼내
조용히 발음해 본다.

 

살아낸다는 일에 밀려
접어두었던 마음들도
초록의 결을 따라 다시 펴지는 달.

 

오월은 안다.

그리움이란
결핍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한때
충분히 사랑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어린이날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미래보다 먼저 세상을 밝히고

 

어버이날에는
부모의 침묵이
평생의 사랑이 무엇인지 등을 보여주고

 

스승의날에는
지나간 말 한 줄이
늦은 밤 마음속 등불로 살아나고

 

성년의날에는
자기 이름 하나로
외로움의 문 앞에 처음 서게 되고

 

부부의날에는
서로 다른 두 계절이 만나
한 생의 기후를 함께 견디게 된다.

 

그래서 오월에는
사람이 더 그립다.

 

() 때문이 아니라
처럼 스쳐 지나간 인연이고

햇살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흔적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월이 다 가기 전에

우주보다 깊은 사람 하나
내 삶 곁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다정한 눈빛으로
조금 더 늦게 놓아주는 마음으로

끝내
만족이라 불러보자.

 

 

* 시작 노트 : 오월은 꽃과 초록이 가장 짙어지는 계절이지만, 내게는 사람의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로 이어지는 오월의 시간 속에는 삶을 지나며 만나온 관계와 사랑의 흔적이 스며 있다. 이 시는 그 관계들을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지탱해 온 마음의 뿌리로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특히 그리움은 결핍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한때 충분히 사랑했고 사랑받았다는 증거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 오월의 초록처럼 오래 접혀 있던 마음이 다시 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시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한 줄기 바람(1988) 29, 한정찬시전집 2, 한정찬시선집 1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5.20 17:03 수정 2026.05.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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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