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이 좋은 세상에

곽흥렬

아버지는 환갑 나이가 되었을 즈음부터 걸핏하면 노래를 부르셨다.

 

“짜더라 오래 살아서 뭐할 낀데, 적당히 살고 죽어야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양이면 우리 형제자매는 당신 입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무척 의아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젊은 사람 못잖게 기운이 팔팔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로부터 서른 해가 훌쩍 지나 구순 연세를 넘기고 요양병원에서 인생의 겨울 끝자락을 마무르고 계시는 지금은 가끔 그때와 백팔십도 다른 말씀을 하신다. 

 

“이 좋은 세상에 조금 더 살아야지.” 

 

아버지가 예전에 그러셨던 ‘적당히 살고 죽어야지’ 소리는 결국 빈말이었던 게다. 

 

흔히들 하는 우스개 가운데 ‘3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다. 처녀가 절대 시집 안 간다는 말이 그 하나고, 장사치가 밑지고 판다는 말이 그 둘이며,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이 그 셋이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 말은 어쩌면 맞는 소리일 수도 있겠거니 여겨지지만, 세 번째 말만은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소리인가 보다. 누구 없이 오래오래 살고픈 마음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능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앞산 중턱의 약수탕을 오르내릴 때 면을 익혔던 한 중년 여인의 이야기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시어머니가 노상 “인제 그만 살고 죽어야지. 인제 그만 살고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지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시도 때도 없이 그러니 수하로서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고 했다. 고심 끝에 꾀를 내었다. 어느 날 우황청심환을 구해 와서는 “어머니, 이것 드시면 자는 잠에 가신답니다” 하고 손에 쥐여 드렸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오냐, 고맙다. 이따가 나중에 먹을게” 하면서 받아선 침대 매트리스 아래 살그머니 감추더라는 것이 아닌가.

 

십여 년 전쯤 낙향하여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 동년배의 두 노인이 계셨다. J 어르신과 K 어르신이다. J 어르신은 혈색도 좋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얼굴이었던 데 반해, K 어르신은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걸린 사람처럼 기운이 빠지고 창백한 모습이었다. J 어르신은 늘 기운이 펄펄 넘치다 보니 틀림없이 백 살은 떼어놓은 당상처럼 여겨졌고, K 어르신은 노상 골골거리는 탓에 내일 당장 죽는다 한들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만큼 건강을 자신할 수 없어 보였다. 아마 그래서였으리라, J 어르신은 마르고 닳도록 살고 싶어 몸부림을 쳤지만 K 어르신은 ‘자식들 고생 안 시키게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을 무슨 주문 외듯 되뇌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라 하였던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렇게 건강해 보였던 J 어르신이 대여섯 해 전 달포 가까이 앓다가 여든 중반에 저세상으로 떠난 반면, K 어르신은 아흔이 지난 지금껏 여전히 살고 있다. 앞으로 잘하면 백 살을 너끈히 넘길지 모르겠다. 그렇게 골골거리면서도 사흘돌이 휠체어를 밀며 산보 삼아 동네 나들이를 하는 걸 보면, K 어르신이 입버릇처럼 되풀이해 온 그 말이 마음에 없는 소리임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철학자이면서 수필가인 김형석 명예교수의 고백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가 어렸을 시절 잔병치레가 잦자 어머니는 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천지신명님, 우리 아들 어쨌든지 스무 살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주십시오.” 간절한 기도에 하늘이 감응했던 것일까, 그는 어머니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 나이까지 용케 살아남았다. 아들이 막상 스무 살을 넘기자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바뀐다. “천지신명님, 우리 아들 쉰 살까지 살면 소원이 없겠나이다.” 지금 그의 나이가 백 세를 훌쩍 지났으니 스무 살의 다섯 배, 쉰 살의 두 배가 되고도 남는다. 그야말로 천수를 누리는 셈이다. 

 

몇 해 전, 그가 한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친 적이 있다. 그때 한 방청객이 장수 비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한편으론 평범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말로야 ‘고작 그까짓 것’ 하며 대수롭잖게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실천이 어려운 까닭에서라고나 할까. 끼니때마다 색색의 채소에다 우유 한 컵, 찐 감자 반쪽, 반숙한 달걀 한 개, 호박죽, 무려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이 식단을 이어오고 있다. 

 

거기다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다짐을 철저히 지킨다. 술 담배와는 아예 담을 쌓았고, 매일같이 집 뒤 오솔길로 산책을 즐긴다. 이런 평범 속의 비범이 그만의 장수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간혹 사람들로부터 “120세까지 사실 것 같아요.”라는 덕담이나 “저희를 위해 좀 더 오래 수고해주세요.”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 말들이 고마워서라도 정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생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지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관용어일 터이다. 개똥밭이기는커녕 얼마나 풍요로워진 세상인가.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봄철이 되면 보릿고개 넘기가 태산 넘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생겨났을 만큼 지독한 간난을 겪었던 우리다. 그랬던 민족이 ‘잘살아보세’를 기치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려온 덕분에 오늘의 부를 일구어내었다. 

 

어느 누구라도 먹고 입고 자고 하는 형편들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해졌다. 나라 안은 말할 나위 없고, 나라 밖 나들이도 내 집 드나들듯이 하는 시대가 되었다. 행동반경이 그만큼 넓어지다 보니, 그에 따라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세를 지녔으며 가진 재물이 많다 한들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고 했다. 건강이 가장 값진 재산이다. 돈, 권력, 명예, ……, 다른 것 모두 갖추었다 하여도 건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그것들은 깡그리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격언도 생겨났는가 보다.

 

어떤 삶을 복 받은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르고 닳도록 오래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그 주인공 아닐까. 이것이 지난 수십 년 세월 화두 삼아 생각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구순의 아버지 말씀마따나, 이 좋은 세상에 하루라도 더 사는 삶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나큰 축복이 되리라.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6.06.08 10:47 수정 2026.06.08 10:4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