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모내기 철이다. 앵두가 익을 무렵 보리타작을 하고 나서 모내기를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맘때 논에 피는 꽃이 메꽃이다. 연분홍 꽃이 무리 지어 보리가 익은 논고랑 밭고랑에 피었었다. 비슷한 시기에 논에서 피는 꽃이 자운영이다. 둘 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농민들을 위로하던 애달픈 꽃이다.
메꽃의 뿌리를 '몰메싹'이라고 했다. 몰메싹은 가늘고 긴 하얀 뿌리가 길게 뻗어 나간다. 지역에 따라 '모메삭' 또는 '모메싹'이라고도 했다. 보리를 베고 나서 모내기를 위해 논을 갈아엎으면 하얀 몰메싹이 논바닥에 드러났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몰메싹을 소쿠리에 주워 담았다. 그것을 삶아 먹으면 보릿고개 허기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논에 물을 잡고 써레질을 할 때도 몰메싹이 둥둥 떠다녔다. 얼굴에 뻘 칠갑을 한 아이들은 소를 따라다니며 몰메싹을 주워 담았다. 어른들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고구마 맛이 나는 몰메싹을 아이들이 삶아 먹으면 배고픔을 달래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 것을 어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보릿고개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약 반세기 전만 해도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한두 달이 가장 배고픈 춘궁기였다. 초근목피로 연명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소나무 새 순을 잘라 낫으로 겉껍질을 벗겨내고 안에 있는 하얀 속껍질인 송구를 하모니카 불듯 이빨로 벗겨 먹었을 정도였다. 송구가 목피라면 몰메싹은 초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내기 철 먼 산에 풀꾹새가 울고 밤에 소쩍새가 울면 배가 고파서 우는 줄 알았다. 풀꾹 풀꾹! 멀겋게 하늘이 비치는 풀국이라도 한 그릇 먹고 싶어 운다는 풀꾹새의 표준말은 뻐꾹새다. 소쩍새도 솥이 적어서 소쩍 소쩍! 모두 배고픈 민중들의 한이 서린 새들의 노래였다. 산비둘기가 구꿍 구꿍 울어대면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난다던 어릴 적 내 친구가 그립다.
오늘 두멧골 논두렁 길을 걷다가 메꽃을 다시 본다. 저 메꽃의 뿌리가 배고픈 아이들을 살렸던 시절이 있었다. 못 먹어 짜구가 나서 배가 뽈록한 아이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지만 60여 년 전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메꽃을 보면서 애달픈 몰메싹 생각이 나는 것을 어찌하랴.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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