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최우주 [기자에게 문의하기] /
스무 살 수병水兵보다 어린 할미
튜브에 얹힌 태양이 우윳빛 피부를 붉게 익히는 동안 끝없는 창공에 푸른 초점을 맞춘 눈빛이 선글라스 안에서 실처럼 감기다가
도넛 안의 바람이 소문도 없이 야반도주하자 대기를 마시던 소녀가 바닷물로 숨을 쉬는 동안
수병이 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스무 살 청년은 소녀의 가슴을 거푸 누르며 입술을 벌려 바람 불어 배 속의 바닷물을 밀어내고는 정신을 잃었다는데
누군가에게 업혀서 가버린 소녀는 청년의 숨결을 영혼 안에 가두어 데려갔다네
훗날, 아주 먼 훗날에
지금은 도회지로 변한 바닷가에서 늘어진 가슴으로 소주잔 기울이며 홀로 사는 할미가 있다네
부잣집 외딸이던 소녀는 어머니의 외마디 소망마저 외면한 채 그때 그 바다에서 수병을 기다리며 혼자서 늙어가고 있다는데
바다 빛 같은 어린 수병이 주름 깊은 할미와 마주 앉아 파란색 술잔을 주고받으며 함께 울고 있는 걸 봤다는 소문이 흩어지는 벚꽃잎처럼 나돌았다네

[박현구]
2018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손이 많이 가는 남자』 (시문학사).
제22회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시 부문),
이어도문학상(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