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라고 성공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관한 명언에서 알 수 있다.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재물을 모은다. 행복해지려고 재물에 집착한 나머지 공공의 이익을 저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잘 못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불행을 스스로가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는 제임스 오펜하임의 말과 칼 붓세의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네./아아, 그들 말대로 행복을 찾아갔다가/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산 너머 저쪽 더 멀리/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라는 시 「산 너머 저쪽」은 행복을 찾는 방법을 몰라 불행을 자초한 사람들에게 인생 설계가 잘못되었음을 깨우치는 교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생 설계는 대부분 어렸을 때의 자라온 환경과 가정교육에서 학습된 결과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부모의 생활 태도를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학습하게 되고, 부모의 가정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부모의 생활습관을 문화재생산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단란한 가족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성인이 되어 행복한 인생 설계를 하고 실천할 수 있지만, 모든 어려움의 원인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설정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불행한 인생 설계를 문화 재생산하게 된다.
미국의 지그 지글러의 『성공의 법칙』에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손을 내밀면 행복은 다가온다. 따뜻해지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안아 줘라. 누군가 잘한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며 자신의 가슴이 따뜻해진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부정적인 생각과 싸워 이겨라. 창의적 사고는 성공의 동반자이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실패는 성공의 수업료이다. 글자 하나(can)가 인생을 바꾼다. 목표 달성을 위해 “I can” 자신감을 강화한다.
그러나 can에 t를 붙이면 실패로 바뀐다. can’t 상황에서도 can으로 바꾸라.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인생에 너무 늦었을 때란 없다. 텔레비전을 통제하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라.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자기 암시로 피곤을 이겨내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 말이 곧 그 사람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행복과 성공이 반드시 일치되거나 비례관계가 성립된다는 가정하에 제시한 자기 계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인품을 수양하여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행복할 수가 있다. 자신을 돋보이려거나 돈벌이를 위해 문학에 뛰어든 문인들이 의외로 많다. 문학은 진실을 추구한다. 그런데 문학의 본질과는 정반대의 허명의식, 허세, 허영심으로 문인처럼 문학하는 사람처럼 거짓된 삶을 살아간다면 이는 불행한 인생 설계이다. 좋은 문학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쓰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문인이다. 문인은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책으로 발간하여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글을 쓸 수는 있다. 이런 독자가 없는 글은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일기를 쓰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반성하고 뒤돌아보기 위해서다. 독자가 없는 엉터리 글을 쓰면서 나는 문인인지 알아 달라고 동호인들끼리 책자를 만들고, 시화전을 개최하고, 낭송회를 열고, 시비를 세우는 등 요란한 문학 활동은 취미 활동이지만, 독자들에게 읽기 실은 글을 감상하라는 일종의 정신적인 폭력이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독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자만의 넋두리 같은 글을 쓰면서 문인이라고 속이는 일은 독서 선택의 혼란을 가져오고 한 번뿐인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다.
불행한 인생 설계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명리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낙서를 오래도록 기억해달라고 엉터리 작품을 시비로 세워 공공장소에 게시하는 일은 사후에도 나는 불행한 인생설계를 실천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남긴 일일 것이다.
거짓된 문인 활동은 국가적인 낭비이고 개인의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다. 행복한 인생 설계가 아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읽고 향수하는 활동은 행복한 인생설계의 실천이다. 문학 향수자와 문인의 한계가 불분명한 시대, 성공을 문학단체 감투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불행을 자초한 일일 것이다. 성공하고 행복해지려면, 주자의 『대학』에서 나오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라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뜻을 정성스럽게 품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라”라는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사물의 본질을 보고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성의정심으로 상대하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상대방에게 접근하여 아첨하다가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관계를 단절하는 파렴치한 사람은 성공은 할 수 있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 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친절을 베풀며 아첨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사람과는 멸시하고 소홀히 대한다. 심지어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스스로가 불행의 씨앗을 퍼뜨리는 일일 것이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다움을 지향한다. 그런데 문학의 본질을 외면하고 자신의 명리적 가치에만 집착하다 보니 문인은 좋은 작품을 써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본분인데,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창작 방법을 익히고, 부단한 습작하는 등 부단히 노력해야 함에도 본분을 망각하고 엉터리 작품을 쓰면서 자신이 문인임을 알리려고 집착하기 때문에 문학단체의 감투싸움을 벌리는 문인답지 못한 시정잡배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은 겉보기에만 화려한 성공신화에 집착하는 그릇된 문인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이런 문인은 행복할 수 없다. 독자들이 엉터리 작품을 비웃고 있음에도 철면피하게 영향력 있는 문예잡지 발행인에게 아첨하거나 상금을 내걸고 있는 문학상이나 문예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등 추악한 짓을 서슴없이 해대는 사람은 스스로 성공을 위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명리적 욕구를 채울 힘이 있는 사람에게 D.K가 지은 『성공으로 가는 리더십』에 나오는 호감을 사는 6가지 비결로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상대방의 관심의 소재를 파악하고, 성실한 자세와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며, 상대방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불러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하는 등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 최선을 다하는 일은 성공을 앞당길 수 있지만, 문인으로서의 자세와 문학의 본질을 외면할 한다면, 명리적 욕구는 달성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등 행복한 인생 설계를 실천하는 길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잘못된 방법으로 성공에 집착한 사람에게는 엔드류 카네기의 “행복의 비결은 포기에 있다.”라는 행복에 관한 명언을 곱씹어보시길 바란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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