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있어서는 아니 될 비극적인 전쟁들, 미국과 이란, 중동 국가들의 간의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꿈꾸어 온 이상사회와는 동떨어진 현실이다. 유교의 대동사회가 전쟁과 같은 잔혹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꿈과는 대조적이다. 우리가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절망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이상사회를 꿈꾸는가를 보여 주는 반증은 아닐까.
예전 대학 축제 때 흔히들 얘기했던 ‘大同祭(대동제)’나 조선 후기 조세 제도인 ‘대동법(大同法)’등의 ‘대동(大)同’은 <장자>의 ‘재유(在宥)’편과, <예기(禮記)>의 ‘예운(禮運)’편에 나온 말이다. ‘예운’ 편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큰 도를 행함은 천하를 공평하게 하고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서 믿음을 강구하고 화목하는 길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어버이만을 친애하지 않고 다른 이의 어버이까지 친애하며,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이의 자식까지도 사랑한다. 늙은이는 안락하게 그 수명을 마칠 수 있게 하고, 젊은이는 충분히 그 힘을 발휘하게 하고, 어린이는 건전하게 자라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대동의 세계이다.”
대동의 세상은 우리가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선악, 미추, 장단, 고저라는 영구불변은 없다. 자연 속에서는 하늘과 땅, 물과 불, 사람과 짐승 등이 모두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대동의 세상은 차별과 차등을 두지 않는 세계이고 분별하지 않고 구별하지 않는 세계이다. 플라톤을 비롯한 서구 사상가들이 그려내는 이상국가, 극락정토와 대동사회를 꿈꾸는 불교와 유교의 이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상세계에 대한 바람은 인류의 사회와 문명을 이끈 강한 동력이었고 인류 공동체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인 열망이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책은 당시 영국 사회의 커다란 빈부 격차와 넘쳐나는 걸인 등의 세상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을 피력하는 책이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모두가 부자인 세상이다. 이는 허생전에 나타난 무인공도도(無人空島)의 이상과 같은 세상이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그 유명한 곡 ‘이매진’의 가사를 보면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읊조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갈망하며, 국경도 없고, 종교도 없는 세상을 노래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야욕이 만들어 낸 잔혹하고 지옥 같은 전쟁과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갈라지고 척지면서 서로 등 돌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깨부수고 전 인류와 지금의 우리가 함께 공존하기 위한 소인의 사회가 아닌, 대동의 사회는 없는 것일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전 인류가 함께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는 대동의 시선 말이다. 인간이 고통받지 않고 평화의 공동체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본다는 생각에 동양의 대동사회와 서양의 유토피아를 떠 올려보는 자체가 헛된 망상일까?
인간은 태초부터 유토피아, 즉 이상향을 꿈꾸어왔다. 현실 속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고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토피아를 갈망하고 이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이러한 노력과 몸부림은 시대를 막론하고 문명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유토피아(utopia)란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가 합쳐진 말로 ‘그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이상향인 어딘가에 숨겨진 곳의‘샹그릴라’ 등은 어쩜, 이 말은 역설적으로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더 나은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의 미래를 지향한다는 말은 아닐까.
헐뜯고 비난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험담할 시간이 없다. 돈키호테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꿈을 꾸고, 붙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고 했듯이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대동세상의 이상향의 꿈을 꿔보자.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