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순간의 기록에 갇힌 시론

디카시론의 현상학적 한계

1. 들어가기: ‘새로운 시’라는 선언의 그늘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확산은 문학의 형식과 감각을 빠르게 변형시켰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은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행위를 생활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장르가 바로 디카시이다.
 

디카시 협회는 디카시를 “디지털카메라+시의 합성어”로 규정한다. ‘순간 포착’과 ‘순간 언술’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사진과 짧은 언술이 결합된 이 장르를 “순간 포착, 순간 언술의 멀티 언어 예술”이라 강조한다. 전통적 시와는 다른 감각적 미학을 주장한다. 이는 디카시 창시자 이상옥의 주장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정의는 디카시의 형식적 특징을 기술하는 데 그칠 뿐, 시의 본질적 속성과 언어 예술로서의 조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 글은 이런 주장을 단순 현상론으로 규정한다. 그 한계를 수평적 시각과 비판적 시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2. 순간 포착의 환상과 시의 언어

디카시 협회에서 강조하는 ‘순간 포착’은 표면적으로는 시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인다. 이는 실제로는 시의 언어가 지닌 생성적 차원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시의 형상은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의 감각과 사유가 언어를 매개로 재구성하는 창조적 행위 속에서만 완성된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책세상, 2016, 5쇄)에서 주장한 내용을 살펴본다.

 

언어를 제스처나 회화 같은 무언의 표현 형식과 비교할 때는, 언어가 만화경 속에서처럼 새로운 움직이는 풍경을 만들어 내는 데 매달리는 동물적인 ‘지능’처럼 방향과 벡터, ‘일관된 변형’, 어떤 침묵의 의미를 그려 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언어란 단지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등가적인 의미를 치환하는 것이다. 새로운 구조는 이미 과거의 구조 속에 현존했던 것이며, 과거를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96-97쪽).

 

이처럼 지각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감각의 대상은 인식 주체의 해석과 언어적 구조화를 통해 의미화한다. 디카시론의 순간 포착이 곧 시라는 전제는 환상일 수 있다. 시를 단순한 기록으로 환원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상옥이 주장하는 ‘침묵의 소리’는 메를로 퐁티가 말한 ‘침묵의 소리’ 혹은 ‘침묵의 목소리’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3. 현상 서술에 머문 이론의 빈곤

디카시론은 ‘순간 언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실험을 강조한다. 이는 결국, 현상 설명에 머문다. 나아가 현상 묘사에 머물기도 한다. 이런 주장에는 디카시는 ‘시가 아니다.’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디카시를 옹호하는 측면에서 시와 산문의 경계를 규명하려는 언어학적, 기호학적, 미학적 논의를 약간만이라도 깊이 있게 접근하고, 다루었다면, 충분히 간파했을 문제이다. 이들 이론적 논의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의 본질로 자리 잡고 말았다. 한마디로 시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상황을 만들었다.

 

야콥슨(Roman Jakobson, 1896~1982)은 시의 언어 전달에 관여하는 6가지 기본 요소를 제시하였다. 이를 달리 말하면, 6가지 기능(감정 표시 기능, 지시 기능, 시적 기능, 친교 기능, 메타언어적 기능, 능동적 기능)이라고 한다. 이 이론 측면에서 보면, 언어가 지시 기능을 넘어 시적 기능을 획득하려면, 언어 내부의 지시 기능을 비롯하여 유기적인 여러 기능의 구성이 필요하다. 야콥슨이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2001)에서 강조한 시적 기능을 아래와 같이 살펴본다.

 

시적 기능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는 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시에 대한 언어학적 탐구가 시적 기능에만 국한되어서도 안 된다. (……) 서사시는 삼인칭을 중심으로 하여 언어의 지시 기능을 주로 활용하고 일인칭을 지향하는 서정시는 감정 표시적 기능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이인칭의 시는 능동적 기능이 작용하는데 일인칭이 이인칭에 대해 종속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애원조나 간구조가 된다(60-61쪽). 

 

실제 디카시론에서 설명하는 ‘순간 언술’은 이러한 언어적 기능을 결여한 채, 즉물적 감각의 서술에 머문다. 결국, 디카시는 ‘찍고, 쓰는 기록’이라는 단순한 감각의 연쇄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는 디카시가 사진 설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그들 스스로 내포시켜 놓았다.

 

4. 시적 형상화 부재와 산문성

디카시 텍스트의 다수는 사진이라는 강한 시각 이미지에 기대어 짧은 문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한다. 이때 문장은 시적 언어의 상징화나 변형을 거치지 않고, 직설적 서술이나 단순 감정의 기록으로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시의 언어가 지닌 다층적 의미 생성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예컨대 어떤 디지털카메라 사진에 “노을 아래 서 있는 고양이 / 오늘 하루가 끝났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본다. 이 언술은 감각을 포착하긴 하지만, 언어가 감각을 넘어 새로운 의미 공간을 창출하지는 못한다. 오규원 시인이 시 창작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한 말을 빌려 디카시를 평가한다면, ‘피상적이고 난삽한 설명조의 글’이다. 이러한 서정의 난삽함과 얄팍함은 디카시론의 주장대로 ‘순간 언술’을 강조하면 할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5. 나가기: 현상론을 넘어선 시론을 위하여

현재의 디카시론은 디지털 시대의 감각적 욕망을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로 일정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관한 기술일 뿐이다. 시의 언어적 본질과 형상화 과정을 탐구하는 이론적 사유에는 이르지 못한다.

 

디카시를 진정한 시로 논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변형과 상징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사진과 언어의 기호학적 관계 분석, 독자의 해석과 의미 생성 과정에 대한 탐구를 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디카시는 여전히 ‘순간의 기록’이라는 피상적 현상에 머물 뿐이다. 나아가 난삽한 설명조로 일관할 것이다. 결국, 디카시의 이론 또한 문학적 사유의 빈곤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디카시론이 순간적 감각 포착을 시의 본질로 환원함으로써 언어의 시간성과 구성성을 삭제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현상학적 직관은 시의 한 조건일 수 있으나, 시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디카시론은 인식의 순간을 절대화함으로써 언어의 사유 과정을 생략한다. 그 결과 시를 사유의 장이 아닌 감각의 기록으로 고정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6.17 11:25 수정 2026.06.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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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