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장

나는 기생이 되고 싶었다

다르게살기운동본부 강드림 본부장


나는 기생이 되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 남은 생애를 이 사회에서 기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까탈스럽기가 하늘을 찌르는 나는 아무 일이나 하면서 이 사회에 기생할 수 없는 인간형이었다. 사실 딱히 이 사회에 기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았다. ‘아님 말고’ ‘굳이를 인생 최고의 지침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인생이란 그다지 위대한 것이 되지 못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 만큼 살아가는 건 마땅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의 욕망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할 가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라는 인간의 시작점부터가 아버지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때 아버지가 조금만 이성적으로 행동하였다면 내가 태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몹시 자연스러운 결과다.

 

기생이 되고 싶었다. 기생은 단순히 몸을 파는 직업이 아니다. 술자리 시중을 들고 잠자리를 나누는 것은 기생의 지극히 일부분이다. 기생의 진가는 경청과 위로에서 발휘된다. 기생의 귀는 세상 그 누구의 어떤 이야기라도 편견 없이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도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기생의 입은 그것이 어떤 분야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답할 수 있는 종합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생은 그저 몸이나 파는 사람이 아니라 감성을 파는 사람인 셈이다. 지금 시대로 따지자면 멘토나 심리상담사의 역할이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그다지 사회 친화적이지 못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내가 기생이라는 직업에 흔들렸던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기생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온갖 잡스러운 공부와 경험들을 실용의 형태로 녹여낼 수 있는 직업군이라고 판단했다.

 

내 손을 거쳐 갔던 그 수많은 소설과 영화와 만화는 결국 나라는 인간의 공감능력을 향상시키게 된 중요한 훈련이었다고 둘러댈 수 있기 위한 명분이 바로 기생이다. 기생이 가진 심리상담사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지금 시대에 얼마나 의미가 깊은 직업인가. 유사 이래 지금처럼 인간이 고립되고 허무함을 동반한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가 없었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수 천 년에 걸쳐 인간을 괴롭혀온 전염병은 극복했지만 우울증만은 어쩌지 못했다. 도리어 폭발적인 증가세다. 전염병으로 죽는 인류는 감소하고 있지만 우울증으로 자살을 택하는 인류는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면서 마음의 병이 점점 깊어져가지만 그것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막연히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난 후에야 탄식을 하고 마는 식이다. 우울증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병은 이제 현대판 감기와 같이 흔한 질병이 될 것이다.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범국가 차원의 제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내가 기생이 되려 한 것은 국가의 일을 스스로 도맡고자 한 일이 될는지도 모른다. 나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 일이 국가적인 복지로 이어진다니. 개인의 즐거움이 사회의 이익에 연결되는 매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생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이미 이 나라의 작은 보건소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6년 전 홍대에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을 차렸다.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현재는 제주에 게스트하우스의 형태로 시즌6점을 운영하고 있다. 딱히 친절하지도 않고, 고객만족보다는 주인만족을 우선시했고, 걸핏하면 문 닫고 여행 떠나는 불성실한 사장이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의 지갑을 공략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공략했기 때문이었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 그리고 술을 따라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분위기에 따라 즉흥으로 연주를 하고, 시를 쓰고, 요리를 하면서 기생질을 했다. ‘이런 공간이 없어지는 건 사장의 손해가 아니라 손님인 내 손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이런 가게는 망할 수가 없다. 뜻하지 않게 나는 내게 사업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왜 기생이 되어 인간의 얘기를 듣고자 했을까. 그것은 일종의 채집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부럽지 않게 재미없고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서 조용하게 양육되었던 내게 몇 안 되는 탈출구는 바로 이야기였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도 왜 나가야 하는 지도 잘 모르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이야기를 타고 나가본 세계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나는 이 재미없는 현실에서 드라마를 만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기생이 된 내게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통 비극적인 드라마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매일 밤 살아있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묵묵히 듣다가 추임새도 넣어보고 결말에 작은 의견도 더해보고, 이것은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방식이 아니라 쌍방으로 교환하는 드라마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참맛을 느꼈고, 그것이 확장되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사업을 하는 동안 매출장부는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인물장부에 대해서만큼은 정성을 다해 기록해나갔다. 그것은 내가 바라본 지금 시대 인류에 관한 중요한 실록이었다. 기생은 내가 이 세상과 마주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기생이 된 것을 욕망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그 이전에 그것은 사업이어야 했다. 그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것은 채 1%가 누릴까 말까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모습은 살아간다기 보다 버텨낸다에 가까워 보인다.

 

이 나라에서 먹고 산다는 것은 이토록 고통을 담보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이 지옥을 탈출하여 나만의 낙원에서 살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살아간다. 나는 참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싶었다. 외제차와 아파트를 못 사도 상관없다. 돈은 외제스쿠터를 타고 여자친구와 교외에 드라이브를 다닐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된다. 사회에선 걸핏하면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권하고 있다.

 

그 말을 하려면 최소한 꿈을 실현하기 좋은 사회적 조건들을 갖추고 그런 소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살아도 먹고 살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삶을 살면서 적정한 소득을 얻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나는 개미도 베짱이도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베짱이의 노래가 없다면 개미는 결코 열심히 일할 수 없을 테니까.

 

불황이다. 앞으로 경기는 점점 침체될 것이다. 기업체의 신규채용이 늘어날 리도 만무하다. 문을 닫는 가게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각종 묻지마 범죄가 더 많이 들려올 것이다. 우리에겐 희망보다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사실 전혀 모르겠다. 근데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 세계가 언제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그리고 이 세계가 우리에게 친절해야 할 이유가 있나? 결정적으로 당신이 이 세계에서 반드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런 착각에서만 벗어나도 삶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사회를 주도하는 뭔가가 되기보다 이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가 되길 택했고, 이 사회에서 내 얘기만을 강하게 소리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생 같은 존재가 되길 택했다. 설마하니 이런 삶을 밀려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세상에 주인공이란 게 있을 리가 없다. 각자 자신만의 영화를 찍으면서 때로는 감독이 되고 때로는 주연이 되고 때로는 카메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찍고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착각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서 손쉽게 조종하려는 자들의 음모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억지로 뭉쳐있을 이유도 없다. 대신 각자의 존재에 대해서 존중하는 자세만 잊지 않으면 된다. 내가 기생이 된 것도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갖고 있는 시선에 대해 공감하려던 이유인 것이다.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강드림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8.13 13:21 수정 2020.07.0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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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