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5월에 걷는 홍천 수타사 산소길은 화양연화 꽃길

여계봉 선임기자



꽃잎 나부끼는 찬란한 봄이다. 매년 5월의 산사의 숲속에 들어가면 꽃비 내리는 황홀한 순간을 맞이한다. 이즈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춘화(春花) 전성시대다. 고요한 침묵 속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산사 가는 길에서는 얻어올 것이 많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단절된 속세의 은둔 생활에서 쌓인 이런 저런 번뇌를 산사의 맑은 계곡물에 헹구는 마음으로 수타사 계곡을 찾는다.

 



강원도 홍천 수타사 계곡은 공작산 자락으로 뛰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계곡 주변에는 강원 영서지역 최고 고찰인 수타사와 멋진 숲길인 산소길이 있다. 홍천강(洪川江)은 강폭이 넓고 완만한데다 수심은 비교적 얕은 널찍한 내다. 그래서 우리말 이름이 너브내다. 홍천강 하류는 이름처럼 넓고 완만하지만 상류는 깊은 바위골짜기 사이로 흘러 물길이 좁다. 수타사 계곡물은 홍천강에서 몸을 합하고 북한강 청평호로 흘러든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타사 계곡 속으로 들어간다. 홍천읍내에서 수타사로 들어가는 길 양 옆의 산은 봄의 흥으로 넘쳐난다. 산의 수목들은 봄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요즘 봄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드라마 제목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때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서 5월의 산소길을 걸어보자. 7.5km3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수타사 초입 오른편에 자리 잡은 수타사 부도군에는 조선 숙종시대 홍우당 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검버섯 핀 할아버지 피부처럼 이끼를 안고 있는 부도에서 세월이 무게감이 묻어나온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담백한 신록과 화사하게 핀 철쭉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수타사 산소길은 수타사 계곡을 따라 난 작은 숲길로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받아낸 대견스런 숲길이다. 맑고 깊은 용담과 넓게 펼쳐진 귕소 주변의 잘 닦인 산길을 따라 솔향기 머금은 계곡물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다. 걸으면서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건강에 유익한 산림욕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천년고찰 수타사까지 눈과 마음에 담아올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수타사 산소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절 입구에서 수타교까지 가서 계곡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출렁다리까지 갔다가 다리를 건너 반대편 숲길을 따라 생태공원으로 내려와 수타사를 관람한 후 저수지 둘레길을 따라 절 입구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본격적으로 계곡 좌측의 숲길로 접어들면 잣나무와 참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어둑한 숲이 나오고,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안온한 흙길을 따라 그 속으로 들어가면 낭랑한 새소리와 짙은 물소리를 거느린 수타사 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계곡에 들어서니 맑은 물소리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용담(龍潭)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계곡이고, 귕소는 계곡이 소여물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끼 낀 돌 사이를 흘러내려가고 있는 계곡의 옥류는 겨우내 마음에 묻어 있던 세진들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깊은 골짜기에는 가슴이 후련하도록 넓은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고 이곳에서는 봄도 잠시 쉬어 간다.


 

 

봄의 기운이 닿는 계곡 구석구석에는 어김없이 봄이 피어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곱고 아름다운지 가슴이 설렌다. 계곡 주변을 가득 메운 신록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시냇물 소리는 봄의 찬가다. 이 길을 걷노라면 봄의 색을 뽐내는 철쭉과 철 지난 진달래들을 만날 수 있다. 따스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을 맞으며 잠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본다. 몇 년 전에 새로 놓인 출렁다리 덕분으로 숲길은 더 풍요로워졌다. 봄이 담겨있는 계곡가로 내려선다.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오니 이곳은 봄 천지다. 애써 힘들게 손을 뻗지 않아도 덩굴나무 줄기들이 휘영청 꺾어진 채로 인사한다. 시냇물에 꽃잎이 떠내려가는 물가에 앉아 막걸리 잔에 꽃잎 동동 띄우고 봄을 마신다. 가슴에도 절절이 꽃비가 내린다.

 



 

산들바람에 여린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 물소리인 듯 절집 목탁소리인 듯 가물가물 들려오는 이런 저런 소리들이 기분 좋게 귓전에 머물다 간다. 이런 길을 걸으며 마음이 열리지 않을 이, 행복을 느끼지 않을 이가 있을까. 주변에 서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오늘따라 더욱 진하다.


산소길은 생태숲 공원과 이어진다. 옛날 수타사에서 경작하던 논이 있던 봉황문 앞에 잔디와 꽃을 옮겨 심고 연못을 파고 나무로 데크길을 만들어 산책할 수 있도록 생태숲 공원을 꾸몄다. 생태숲 공원에는 화려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혼이 달아날 것만 같다. 생태숲 덕분에 바로 옆 수타사는 더욱 자태가 아름다워졌다.

 

산중에 든다고 저절로 꽃 피듯 물 흐르듯 모든 일에 걸림이 없는 삶이 이루어질까. 그러나 절집 문 안에 드니 맑은 생각이 피어난다. 공작산 수타사의 정문격인 봉황문 안에는 점토로 조성된 사천왕이 악귀의 출입을 막고, 불국토를 수호하기 위하여 눈을 부릅뜨고 지켜서 있다. 수타사(壽陁寺)는 신라 성덕왕시절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일월사로 불리다가 조선 인조 때 현재 자리에 다포식 팔작지붕을 갖춘 대적광전을 조성하면서 수타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 늦춰진 초파일을 준비하느라 절집은 지금 분주하다. 수타사 봉황문과 대적광전 사이에 자리잡은 흥회루는 마루와 강당을 합친 형식으로 건축된 특이한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절집 뒤로 수타사의 주산인 공작산(887m)이 공작이 날개를 펼친 산세 형상을 하고 있는데,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모습이어 인상적이다.


 

무채색 겨울옷을 벌써 벗은 산사는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한창인 봄날을 즐기고 있다. 흥회루를 지나면 나오는 대적광전은 수타사의 본전으로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한발 한발 대적광전 계단을 오르다 보면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던 잡념들이 한 올 한 올 풀리는 듯하다. 대적광전 후불벽에 봉안된 영산회상도는 조선 후기의 불화다. 대적광전 오른쪽에 있는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데, 원통보전 오른쪽에 만개한 꽃사과나무의 향기가 진동하는 바람에 암자 안에 계신 부처님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계신다.

 

 

 

절집은 지금 만화방창(萬和方暢)한 꽃 세상이다. 산사의 나무들이 피워 낸 신록은 초록 비단을 휘두른 듯하고 꽃들은 만개하여 그 고운 빛으로 유혹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신록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행복한 봄을 누리리라.




수타사 입구에 있는 저수지 둘레 길은 선계에서 속계로 내려서는 길이다. 절집 문을 나서면서 계곡물을 잠시 바라본다. 노자(老子)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최고의 선()은 물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삼라만상 자연의 이치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인간만이 사소한 것에 마음의 덧을 걸어 그 이치에 반하고자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절집을 나와 홍천 읍내로 돌아가는 시골길은 산꽃잎 나부끼는 봄이 절정이었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09 14:50 수정 2020.05.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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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