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칼럼] 칼 세이건, 전설과 한 시대를 살았다는 것

이영준

코스모스 최신 버전이 넷플릭스에 올라온 것을 보았다. 닐 타이슨 진행의 최신 경향을 반영한 코스모스다.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다.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코스모스를 이렇게 클릭 한 번으로 쉽게 볼 수 있다니. 그간 바뀐 과학적 사실들도 많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새롭게 갈음되고 있는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안방에서 편하게 받아보며 살 수 있다. 이럴 땐 자본주의적인 혜택이 주는 편리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혹자는 코스모스 하면 핑크빛 가을의 꽃이 떠오른다고 하지만 나는 코스모스 하면 우주의 검은 바탕에서 반짝거리는 항성들을 상상한다. 그건 어릴 적 집에 있었던 한 질의 코스모스 비디오테이프 덕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내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돌려 본 것이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거의 대사를 외울 지경이었다.

 

코스모스는 그 시절 독보적인 어린이 과학 콘텐츠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재미난 설명으로 인기가 많았다. 차원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을 때 사과 한 조각을 들고 설명한 차원 간의 개념 자료는 어른들도 탄복시켰고, 그 시절 만든 자료가 최근까지도 SNS 쇼츠로 활용되며 떠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코스모스 중 별들의 삶과 죽음 편과, 시간과 공간에 대한 편을 몹시도 편식적으로 많이 보았다. 이 두 편은 비디오테이프가 진짜 물리적으로 늘어나 버렸을 정도였다. 어떤 구간에서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굵고 느리게 늘어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돌려 봤다. 생경했던 코스모스 속 이야기들은 어렸던 내가 과학적,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초석이 되었다. 

 

지금이야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며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들어본 적 있는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 그리고 별들의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80년대에 접했으니 그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시간이 펼쳐져 있고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의 착각이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블록우주이론에 나는 푹 빠졌다. 도서관과 대형서점을 찾아 관련 서적을 모두 뒤지게 되었다. 그에 비해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적 이론은 제자리걸음 같아 보였고, 바뀐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고전역학의 뉴턴 운동법칙이나 열역학법칙에 머물러 있는 선생님들의 수업은 지루하기만 했다.

 

그 후로 나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1977년, 태양계 탐사를 위한 보이저 1호, 2호가 쏘아 올려졌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칼 세이건은 1980년 토성 궤도를 지날 때쯤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토성에서 지구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태양을 마주하게 되는 탓에 렌즈가 망가질 수가 있다는 이유로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나 해왕성을 지나갈 때 마침내 처음으로 지구를 촬영할 수 있었다. 보이저호는 그 결과물인 푸른 작은 점 (Blue dot) 하나를 지구에 전송하였다. 칼 세이건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렀다. 이 보잘것없는 우주의 티끌과 같은 점 하나 안에서 우리 80억 인구가 싸우고 빼앗고 질투하고 때로는 사랑하며 살고 있다.

 

칼 세이건을 통해서 나의 세계관은 우주로 확장되었다. 나는 더 많은 책을 뒤적거리는 아이가 되었다. 호기심은 과학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기원했는가 하는 질문부터 인간이 죽은 후 어디로 가는가에 까지 이어졌고, 그 덕에 역사로, 철학으로, 종교로까지 호기심을 넓혀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동시대 현존했던 최고의 천문학자가 바로 칼 세이건이다. 그는 2020년대에야 나오고 있는 과학 유튜버나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하는 역할을 시대를 30년 정도 선행했다. 아인슈타인처럼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닐스보어처럼 양자물리학을 한 것도 아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망원경을 만들지도 않았지만 80-90년대 과학의 대중화를 일으키고 과학이 많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해 준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나 같은 대한민국에서 1980년대를 보낸 초등학생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코스모스의 2대 진행자인 닐 타이슨 역시 평범한 소년이었는데 칼 세이건의 영향으로 천체물리학자가 되었고 훗날 과학 전공자가 되어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지금껏 아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칼 세이건은 늘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인형극을 하듯 과학 실험과 설명을 했고 강의를 촬영하여 전 세계로 퍼뜨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칼 세이건을 통해 과학도를 꿈꾸었을지 셀 수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코스모스가 인생 최고의 책이라거나 과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 보면 감흥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학책은 소설과 같이 쉽게 상상하며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 양질의 유튜브 과학 채널들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자처하는 인물들도 여럿 나온다. 얼마나 웃기고 재미나게 말하는지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런 좋은 최신 자료들을 손바닥 안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과학의 발전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우주에서 온 조각들, 우리는 별가루의 자식들이다. 점점 과학의 시대를 걷고 있는 요즘이다. SF 공상과학 이야기들은 SF 현실소설로 바뀌고 있다. 과학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향하는 미래를 보고 있는 지금, 당신은 코스모스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이영준]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무에타이, 킥복싱 선수 생활

백수건달CEO 유튜브 운영

이메일 wushu0829@naver.com

 

작성 2024.02.14 10:18 수정 2024.02.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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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