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도 말했던가. ‘너 자신을 치유하라’라고. 우주 자연 만물 하나하나가 다 소우주라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유기체로 자가치유의 자정능력이 있다. 그동안 인간의 적폐로 오염될 대로 오염되고 병들 대로 병든 지구별도 견디다 못해 코로나바이러스를 동원한 자정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너무도 역력하고 자명하지 않은가. 아래와 같이 이런 낌새를 진작 차린 몇 사람의 말을 인용해보리라.
인간이 성취한 모든 물질문명과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그래도 치유되고 용서받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전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숲속에서 뛰노는 사슴을, 들판을 가로지르는 여우를,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춤추며 날아가는 나비를, 저 아득히 먼 하늘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독수리를 우리가 볼 때 말이다.
-Thomas Berry
나는 동물을 지나치도록 좋아하진 않아도, 너무도 경이롭도록 놀라워할 뿐이다.
-David Attenborough
동물들이 어떻게 모든 걸 아는지 난 모르지만, 그들이 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세상엔 그 어떤 단어로 성립되어 있지 않은 언어가 있어 만물이 이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또 어쩌면 모든 것에 숨겨진 영혼이 있어 그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도 언제나 다른 영혼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Frances Hodgson Burnett, A Little Princess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동물들은 우리 생각을 알아차린다. 그들은 우리 인간에 대해 아주 낮은 평가를 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Barbara Woodhouse
동물원은 슬프게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물원의 공적인 존재 이유와 목적이 방문객들에게 동물들을 관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동물들의 진정한 모습은 없는 까닭에서다. 낯선 방문객이 맞닥뜨리는 건 고작해야 옆으로 아니면 멍하니 먼 데로 돌리는 동물들의 흘깃 지나치는 눈길일 뿐이다.
-John Berger
나는 때때로 궁금증을 갖게 된다. ‘너는 동물이야’란 말이 왜 모욕적인 욕이 되는지. 만일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들 사이에선 "넌 인간이야”란 말이 그들이 즐겨 쓰는 욕설일 것 같다.
-Richard E. Turner
동물이란 단어 앞에 야생이란 말을 붙인 건 인간이다.
-Colette
동물을 사랑하라. 조물주는 동물에게도 생각의 기초, 기본과 근본을 주었고, 거리낌 없이 기쁨을 누리도록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의 행복감을 빼앗지 말 것이며 조물주의 뜻을 거역하지 말 일이다. 뜻을 거역하지 말라.
-Fyodor Dostoevsky, The Brothers Karamazov
침묵과 고독은 공기처럼 엷도록 희박하고 밤하늘에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울음 같은 야생 음악으로 젖어 물든다. 저 달 표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흥분되고 고조된 목소리가 밤하늘을 짜릿짜릿하도록 저리게 해주는 걸 보면서 이 희귀한 순간 별안간 촉발된 통찰력의 직관으로 나는 야성적이고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Martha Reben
자, 이제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코리아 환상곡’을 읊어볼거나.
지난 2011년 영국·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세계 작곡가들이 선정단으로 참여한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로 뽑혔고, 그다음 해 2012년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단군의 홍익인간과 홍익만물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의 우본자연인도주의宇本自然人道主義 곧 코스미안 사상이 오늘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의 정감 넘치는 ‘아리랑’ 가락을 타고 신명나는 K-Pop과 싸이의 말춤에 이어 BTS 한류를 통해 바야흐로 개명천지 ‘코스미안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뚜렷한 표상이 가슴에 벅차게 떠오른다.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 천도교의 성서라고 하는 동경대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붓을 어떻게 잡는지 잘 살펴보라.
정신을 가다듬고 고요한 마음으로 글씨를 쓴다.
찍는 점 하나로 글 전체가 달라진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영화로도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와 그 원조 격인 ‘반지의 제왕’을 보면 세상이 우리의 현실처럼 온통 마술의 산물이다. 근대 서양 오페라의 창시자로 불리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가 중세 독일의 대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소재로 작곡· 작사한 ‘니벨룽겐의 고리’가 있다. 라인강을 무대로 한 이 우화적인 서사시는 마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특히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의 파멸을 막자는 교훈을 담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극작가며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세계를 크게 변화시킨 산업혁명의 와중에서도 이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계급 없는 평등사회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연환경 보호론자들인 ‘녹색당원들’에게는 현대 공업화로 빚어지는 온갖 자연공해는 ‘괴테 다메룽’, 즉 북유럽 신화의 신들과 거인족 간의 최종적인 싸움의 결과로 오는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것 같다. 바그너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대지를 농락하거나 우롱할 수 없음을. ‘니벨룽겐의 고리’에서 그는 예언하듯 말한다. 짧은 세월 동안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자연은 되살아나고 신처럼 군림하던 인간은 멸망할 것이라고. 우리가 자연환경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그 대가로 우리 자신의 비참한 불행과 혼란, 카오스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어두운 비유로서 악한 난쟁이인 알베르히가 라인강에서 불가사의한 마력이 있는 황금을 훔치는데 이 행위 자체가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깨뜨리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황금으로 고리 가락지를 만들어 끼는 사람은 누구나 절대적인 힘을 쓸 수 있는 반면 반드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고, 이 황금이 라인강 밖으로 나와 오래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지구는 황폐해진다. 보다 못해 여주인공 브륀힐드는 더 이상 세상이 더럽혀지는 것을 볼 수 없어 신들과 알베르히의 노예로 땅속에서 사는 인간 이하의 종족 니벨룽스를 차라리 없애버리려고 세상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러자 라인강이 범람하여 불길을 끄고 도둑맞았던 황금을 되찾아 지구생태계의 질서를 회복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땅과 물과 불 그리고 공기를 대표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산드라들로서 세상에서 상대해주지 않는 나쁜 일 흉사(凶事)의 예언자들이다. 이들은 거듭해서 신들에게 물욕과 권세욕 때문에 생길 재앙에 대해 경고한다.
‘우주의 주인’인 우두머리 신 보탄의 비서실장격인 에르다는 땅의 어머니로서 지신地神인데 황금을 라인강에 되돌려주지 않으면 자연의 질서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라인강 자체와 그 속의 황금을 지키고 끝내 되찾아 내는 ‘라인의 처녀들’이 물의 신 수신 水神이고, 보탄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황금을 라인강에 돌려주자고 간언하나 번번이 묵살 당하는 로게는 불의 신 화신火神이다.
공기를 대표하는 것은 세 마리의 조신鳥神인데 그 중 ‘사상’과 ‘기억’이란 이름의 두 마리 보탄의 갈까마귀는 위로 날면서 그들의 주인을 경호하고 또 한 마리 ‘숲새’는 보탄의 손자인 지그프리트에게 어떻게 하면 악한 수중에서 황금을 되찾아 그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 일러준다. 이 독일 전설의 영웅 지그프리트는 성실한 인성의 인물로 자연을 사랑하고 지식을 갈망하며 불의와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운다.
자연에 대적하는 것은 알베르히와 보탄 둘 다인데 알베르히는 사회의 무법자들을 상징하고 보탄은 사회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재난을 불러일으키는 자들과 이들로부터 힘의 고리를 얻어 세도를 부리는 자들이다. 이 고리의 끝 장면은 ‘신들의 황혼’으로 결국 자연은 스스로를 되찾아 권력에 굶주린 신들을 제거하고 세상을 인간들에게 맡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바그너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아닌 단지 관리인임을 강조한다.
작가 세계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즉흥자pantsters와 작성자plotters가 있다. 이는 비단 문학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살이에서도 해당하는 것이리라. 전자의 경우를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이렇게 표현했다.
“난 아무런 계획이나 정책도 없었다. 다만 매일 같이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를 피카소는 이렇게 표현했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다 (이미)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이든 인생 업적이든 그리고 쓰는 것일까 아니면 그려지고 쓰여지는 것일까. 2006년 출간된 이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은 호주 TV방송 작가 론다 번 Rhonda Byrne이 50대 갱년기에 앓게 된 심한 우울증을 약물이 아닌 독서로 극복하면서 고금동서를 통해 보람되고 충만한 삶을 산 사람들의 공통점을 밝혀낸 책이다. 이 책 내용을 내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말로는 ‘끼리끼리’ 영어로는 ‘LIKE ATTRACTS LIKE’라 할 수 있으리라.
다시 말해 세상은 네가 보기에 달렸다는 뜻으로다.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 우주로부터 끌어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2005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의학 용어가 있다. 무환상증aphantasia과 초환상증hyperphantasia으로 모든 것이 심안心眼에 달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아니 마음속에 여러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 단서는 비전과 감지感知 그리고 기억에 연관된다는 거다. 이 환상력 차이에 따라 삶의 진로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 한민족은 원래 자연을 파괴하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았던 민족이다. 그렇다면 이 대자연의 ‘고리’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피어나는 코리아에서부터 단군의 홍익인간으로 발현된 코스미안 사상이 그 참된 제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우리 한민족이 이 같은 일을 주도할 천명을 타고난 것이다. 천지가 새롭게 개벽할 날이 오고 있다. 아리랑 만세! 한류 만세! 코스미안 만세!!!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