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칼럼] 새끼줄 꼬던 어린 시절

이경수

 




예전 내가 자라던 고향 마을에선 집집이 잎담배처럼 부피가 큰 농산물을 포장하여 전매청(요즘 KT&G)으로 납품할 거적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또 그것을 단단히 둘러 묶을 새끼줄뿐만 아니라 벼 보리와 밀을 타작하고 나온 곡식을 담아 둘 가마니도 손수 짜야 했. 그 시절엔 요즘처럼 마당에 곡식을 활짝 펼쳐 놓고 말릴 수 있는 비닐이나 천막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촘촘한 구조의 멍석도 짠다. 이런 것은 바쁘지 않은 농한기에 주로 하는데 상당한 양의 볏짚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미리 마당에서 볏단으로 새끼를 꼴 수 있도록 준비 작업을 하신다.

 

한 손으로 볏단의 이삭 부위를 한 움큼 잡은 체 공중으로 치켜들곤 다른 손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넓게 벌려서 밑동 부위를 살살 훑어 내린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볏짚의 썩은 잎들이 대부분 밑으로 떨어져서 매끈한 속대만 남는다. 볏짚을 모두 추스르고 나면 쓸 만한 재료는 처음 상태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추려낸 볏짚에 물을 입에 물곤 골고루 품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볏짚이 너무 바짝 말라 있으면 손으로 다다를 때 잘 부러진다. 반대로 볏짚에 습기가 있으면 눅눅해져서 새끼를 꼬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 무렵 나는 어른들이 밤마다 건넌방에 모여 새끼 꼬는 걸 자주 지켜봤다. 우리 형제들도 곧 자연스럽게 새끼 꼬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가느다란 새끼를 한 발 정도 꼬아준 것으로 두 형과 함께 어른 흉내를 냈다. 우선 책상다리를 한 체 맨 끝을 허벅지 안으로 넣어 엉덩이 뒤쪽으로 나가게 깔고 앉거나, 한쪽 다리는 굽힌 체 다른 발의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자세를 잡는다. 새끼를 꼬는 요령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쉬운 것도 아니다.

 

그냥 마구 새끼를 꼬다 보면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모양이 들쑥날쑥하게 된다. 그러면 새끼를 사용할 때 여러모로 불편해진다. 새끼는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과 용도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굵기를 유지하며 꼬는 게 중요하다. 그 보다 몇 배 더 굵은 새끼줄이 필요할 땐 단번에 꼬질 않고 가느다란 새끼줄을 몇 개 겹쳐서 다시 꼬아야 좋다. 먼저 오른손잡이인 경우 왼손바닥 중간쯤에 두 갈래의 짚을 몇 cm 간격으로 띄우고 오른손바닥을 맞붙인 뒤 왼손은 가슴 쪽으로, 오른손은 바깥으로 동시에 천천히 밀면서 두 갈래의 짚이 따로 똑같은 방향으로 돌돌 말리도록 한다.

 

이때 무슨 일이 있어도 왼쪽 손가락 끝이 오른손바닥을 완전히 벗어나도록 오른손을 끝까지 밀고 나가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또르르 말린 지푸라기가 도로 풀리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왼쪽 손가락 끝을 벗어난 갈래를 오른쪽 손가락으로 얼른 구부려서 붙잡는다. 그와 동시에 왼쪽 손가락으로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위치에 와 있는 다른 갈래를 얼른 구부려서 붙잡는다. 이번엔 그 위치가 서로 반대 방향이 되도록 오른손을 뒤로 왼손은 밖으로 민다.

 

이어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갈래를 왼손바닥에 살짝 붙여 손가락을 펴면서 밖으로 슬며시 밀다가 왼손가락이 쥐고 있던 갈래를 풀어놓음과 동시에 오른손바닥이 함께 밖으로 밀고 나가다 붙잡고 왼손가락도 앞으로 다가온 갈래를 자연스럽게 붙잡는다. 이렇게 한 번씩 반복할 때마다 새끼의 두 갈래가 손바닥에서 비벼져 돌아간 만큼 저절로 꼬이게 되어 새끼가 점점 길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놓쳐선 안 될 게 있다. 새끼를 계속 꼬다 보면 양쪽 갈래의 굵기가 서서히 가늘어지는데, 그대로 계속 꼬아선 절대로 안 된다.

 

가늘어지기 직전 지푸라기 갈래 속에 볏짚을 추가로 한두 개씩 갖다 대고 종전과 같이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비벼서 꼬는 걸 반복한다. 그러게 되면 가늘고 짧아질 위기에 놓인 지푸라기는 자연스럽게 속으로 말려 들어가 단단한 새끼줄이 된다. 곧고 튼튼한 새끼줄을 만들려면 양쪽 두 갈래에 볏짚 가닥을 동시에 추가하여 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가며 볏짚을 계속 보충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새끼줄은 마치 배가 부른 뱀처럼 모양이 들쑥날쑥하여 실용적일 수 없다.

 

배추와 볏단을 묶는 건 볏짚으로 그냥 묶어도 되지만, 보다 더 굵은 곡물 단이나 볏가마니를 운반하기 쉽게 가로 세로로 촘촘히 엮어 묶으려면 다양한 굵기의 새끼줄이 필요하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칡이 더러 있긴 했으나, 전국 어디든 고루 분포해 있는 건 아니었다. 칡은 한번 끊어다 쓰고 나면 다음 해 새순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칡은 끊어 오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빠진다. 칡의 줄기는 딱딱해질 정도로 마르면 거의 쓸모없게 된다.

 

그러나 국내 어디서든 볏짚만 구할 수 있으면 새끼줄은 사계절 내내 필요한 용도에 맞게 직접 꼬아서 사용할 수가 있다. 지혜로운 우리 민족은 새끼줄을 반드시 농사용 묶음으로만 사용하질 않았다. 해마다 단오가 되면 전국의 농촌에선 커다란 나무 아래에 굵은 새끼로 그네를 달아 남녀노소 누구나 맘껏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일부 지방에선 수백 미터 줄에 수천 명이 달라붙어 줄다리기 경쟁을 벌이며 이웃 마을과 화합을 다졌다. 그 재료의 기본은 볏짚으로 꼬아 만든 가느다란 새끼줄로부터 시작한다.

 

이 새끼줄의 유래는 아마도 소의 힘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가 아닐까 싶다. 우리 조상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동물의 통제와 농사용 묶음 끈으로 사용해온 새끼줄조차 우리 세대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이경수 26ks@naver.com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4 11:29 수정 2020.09.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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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