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이택상주(麗澤常住)’, 공존과 상생의 미학

홍영수

해남 대흥사가 위치한 두륜산을 올라가다 보면 중턱쯤에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이곳은 차(茶)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이고 다성(茶聖)으로 일컫는 초의선사(艸衣禪師)가 40여 년 머물렀던 곳이다. 일지암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은둔자인 시승(詩僧) 한산의 시 “언제나 저 뱁새를 생각하노니 한 가지만 있어도 몸이 편안하다네(常念鳥 安身在一枝).”_寒山詩集, 에서 ‘일지(一枝)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호(號)’를 부탁하기에 ‘一枝’로 해줬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인 한산의 시구 ‘일지(一枝)’와 같은 한자이지만, 필자는 장자의 소요유 편에 나온 명구, “초료소어심림 불과일지(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에서 그 의미를 가져온 것이었다. 

 

여기서 필자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일지암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남종화의 묵신(墨神)인 소치 허련이 두륜산 중턱의 초의를 찾아가 일지암의 정경을 상세히 서술해 놓은 내용이다. 암자의 주변에는 소나무 대나무가 울창하고 처마까지 늘어진 버드나무와 온갖 수목과 꽃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로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선을 끄는 대목은 일지암의 뜰 한가운데 상하로 연못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의 다산초당의 연못, 스승 조광조가 유배되자 낙향하여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 원림의 연못과 강진군 성전면 위치한 백운동 원림의 연못 등이다. 

 

이곳의 연못들은 위쪽에 자리한 연못에서 아래쪽 연못으로 물이 흐르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예전과 좀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당시 그려놓은 그림과 글들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위에 열거한 연못들은 모두 같은 원리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초당의 연못 형태는 초의가 그린 ‘다산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지암의 연못 또한 같은 의미로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복원된 일지암의 연못과는 좀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위에 기술했듯이 소치가 일지암을 그려놓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위아래의 연못이 있었다.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인 성호 이익의 공부법 중에는 ‘이택법(麗澤法)’이 있다. 그 방법은 토론과 논쟁을 통한 공부법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서신을 교환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다. 일반적으로 상생을 들먹일 때 흔히 쓰는 말이 ‘이택상주(麗澤常住)’이다. ‘두 개의 맞닿은 연못이 서로 물을 대주며,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돕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최고의 상생법이다. 

 

이 말은 주역의 ‘태괘(兌)\卦)’에 나온다. 그 풀이는 “두 개의 못이 잇닿은 것이태(兌)”다. 군자가 이것을 보고 붕우(朋友)와 더불어 강습한다.“ 이다. 이 뜻은 두 연못이 이어져 있어서 서로 물을 대주면 어느 한쪽만 마르지 않는 것처럼 붕우들도 서로 갈고 닦으며 상대에게 자극을 줘서 각성하게 하면서 상생케 한다. 이렇게 서로 두 연못이 이어진 못이 바로 ‘이택(麗澤)’이다. 위에 예를 든 연못들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둘로 만들어진 연못들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러한 모습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담아야 하는데, 흔히 눈요기하듯 훑고 지나친 모습에 다소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우연히 티브이의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멈춰진 채널을 시청했다.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어서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젊은 부부가 출연했는데 이혼 직전까지 놓인 상태였다. 잠깐 보았는데도 순간 느꼈던 것은 소통의 부재가 아닌가 싶었다. 소통이 없으니 상생할 수도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유대인의 대표적인 교육 방법은 ’하르부타‘다. 이 교육법은 활발한 토론을 통해 질문과 생각을 서로 주고받는 방식이다. 그러함으로써 토론을 통해 탐구하고 소통하면서 상생하고 배려심과 폭넓은 사유, 열린 마음으로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할까? 예전처럼 주입식으로 인한 창의력과 단순 암기로 인한 지적 수준의 저하, 그리고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과로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고 일방통행식의 교육으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다양체들의 집합체인 사회, 지금의 사회 현실을 직시할 때 ’이택상주(麗澤常住)‘의 정신이 흐르고 있을까? 결코,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토론과 논쟁 없이 등지고 각을 세우며 상대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서로 물을 대주듯 우리들 또한 서로 토론과 논쟁을 통한 상생을 해야 한다. 홀로 가둬진 물은 썩을 뿐이고 홀로 가둬진 사고는 독단에 빠질 뿐이다. 고산 윤선도의 은둔지인 보길도‘세연정(洗淵亭)’의 연못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5.06.30 11:01 수정 2025.06.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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