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시를 걷다] 다도해

눈부신 햇살을 타고 오는 다도해의 봄 




남쪽 바다 사량도에는

푸른 갯내 묻은 바람이 따뜻하게 불어온다.

갓난아이 머리칼같이 부드럽게 자라나는

새싹의 꿈이 봄 물결처럼 아득아득 흐르고

봄 바다는 청록 빛에 온 몸이 감전돼 어질하다.

! 봄이여 어서 오라.

눈부신 바다를 밟고 걸어오라.

세상의 길 위로 사람들은 걸어가고

봄이여 그대는 바다를 넘어 찬연하게 오라



저렇게

푸른 제 몸뚱이를 풀고 있는 너는

겨우내 불러온 배를 이제 막 해산한

섬 마을 새댁의 맑은 미소를 닮았구나.

푸릇푸릇 잘도 웃는 너는

천생 봄의 화신인 게로구나

손등마다 굵은 주름을 달고 있는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 안에서

너는 봄내음을 풍기며

누군가의 밥상위에 푸른 봄을 풀어놓겠지.



찬 우물물 한 바가지 길어

솔솔솔 봄채소 씻고

찬 우물물 한 바가지 또 길어

벌컥 벌컥 들이키면

겨우내 때 낀 마음 술술술 씻어 내려간다.

소박한 밥상 마주하고 앉으면 신선이 부럽지 않은데

그대 벗이여 봄 오는 섬에서 바람소리 들으며

껄껄한 세상 잊고 한바탕 봄에 취해 보자.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꽃잎은

섬 처녀의 붉은 월경처럼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

봄 오는 길목에서 앓아누운 바닥으로

스러지는 봄바람을 껴안고 뒹굴다가

너는 섬의 고독에 빠지고 말았다.

너는 시간의 틈새에 빠지고 말았다.

네 열정의 이름 동백만을 남겨둔 채…….





도란도란 속살거리는 햇살 속에

아기 염소 두 마리 산다.

맑은 눈망울 착하게 반짝이는

아기 염소 두 마리 산다.

봄 마중 나온 아기 염소 두 마리

햇살과 온 종일 놀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섬에 해가 진다.

아기 염소 두 마리 사는 섬에

바람이 봄의 기별을 전하고 간다.

 



가쁜 숨결을 내 뿜는

나뭇가지의 어린 생명은

혼자서 대견하게 하늘을 오르고 있다.

상처로 얼룩진 풍경이

오랫동안 허공에 매달려 삭아 갈 때

저 여린 생명의 아름다움은

홍역처럼 봄의 문을 열고 있다.

수백 개의 통증이 슬어 있는

몸 밖의 세상은 아직도 춥고 두렵지만

봄은 저 바다를 건너

여린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생명에게로 천천히 오른다. 

'오 눈부심이여 너는 봄의 화신이로구나'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솜병아리의 부드러운 깃털 같은

바다와 사랑을 이루는

연인의 나란한 뒷모습이

다도해 풍경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멀리 욕지도가 아련한 햇살 속에 숨어

푸른 바다와 한 몸으로 뒹굴고

앞 섬 딱섬은 봄을 맞느라 분주한데

미륵도 연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경이 되어 점점이 멀어져 간다.



바다와 섬 사이 몽매한 그리움이

주술처럼 풀어지는 달아항엔

봄을 잡으러 떠난 배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바람에 취해 잠들은 미륵도 달아항은 무릉이다.

봄 햇살 쏟아져 내리는 항구에서

무릉은 엄숙하고 문명은 지루한 농담으로 전락한다.

혼재한 시간 속에 오늘은 봄이 오고

바다와 섬은 여전히 무릉으로 빛난다.


햇살이 바글거리는 갯가에서

빛 알갱이들을 캐는 아낙네 손길이 분주하다.

갯내향은 몸 속 오지까지 스며들고

바다의 여인들이 저녁 찬거리를 캐며

늘어놓는 수다가 운명처럼 정겹다.

행복도 불행도 반짝이는 조약돌보다

더 반짝이지는 않았을 터인데

한 생 살다보면 봄은 해마다 찾아오고

해마다 운명 같은 수다가 정겹게 흐른다.

   

 

잔잔한 남서풍이 어부의 등을 밀면

부지런한 어부들은 뱃머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깃발 드높이며 돌아오는 만선의 꿈에 젖는다.

시간을 기르는 바다의 밭에선 고기들이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며 저 어부들의 삶 안으로 들어오는데

착한 항구의 풍경은 사실성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 세상과 인간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바다는 닥쳐 올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매혹적인 미문과 허약한 언어 사이에서

바다는 관념으로 흐르다가 신념으로 빛나는데

나는 여전히 흥분으로 바다를 편애한다.

부질없이 낭비하는 감정 안으로

시간은 단독자처럼 당당하게 걸어온다.

그래서 나는 존재하고

그래서 봄은 존재한다.

저 아련한 섬 소지도처럼

저 찬연한 봄 바다처럼 말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8.20 09:50 수정 2018.09.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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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