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재의 연당일기] 코로나19의 직격탄

위선재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31 10:06 수정 2020.05.31 10:53


어제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아직은 기온이 좀 낮은 편이다. 화씨 55, 오늘 최고 기온은 65도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오월 하순치고는 낮은 온도이다.


그러나 바깥의 초원은 오월의 초장답다. 에메랄드빛 초원 위에 손톱만 한 크기의 노란 들꽃들이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다.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포플러들이 일제히 사람 나이로 치자면 이제 십칠 세, 십팔 세라고 할 수 있을, 더 할 수 없이 싱싱한 신록들을 펼치고 있었다.

 

텃밭에 심은 어린 채소들도 어제 온종일 장대히 내린 비로 물기를 흠뻑 머금고 백미터 달리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 아이들처럼 팔팔해 보인다. 화단에 심은 화초들은 하루 사이에 두 배는 자란 것 같다.

 

물기를 폭풍 흡입했던 모양이다. 내일은 메모리알데이이다. 미국에선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내일부턴 기온도 쭉 쭉 오른다고 한다.

 

남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도 도착했다. 이번 화요일부터 이곳 웨체스타의 스몰비즈니스들도 가게 문을 열어도 된단 것이었다.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는 한다. 가게 안에 손님을 들이면 안 되고 가게 입구에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을 픽업 할수 있게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드디어 가게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정부에서도 바이러스 확산세의 둔화 정도를 미루어 보아 이제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해도 된다고 판단했단 말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가게로 복귀할 수 있단 소식에 물을 만나 물고기처럼 갑자기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에서 잘 쉴 수 있었고 실업수당에 피피피도 탈 길이 열렸었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내내 어디에 몸을 두어야 할지도 몰라 했고, 하루 이십사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 줄 몰라 헤매다가 시시때때로 솟는 불안감과 초조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사실은 가게 문을 여는 것은 그 시기가 일주일 후가 될지, 이주 후가 될지, 한 달 후가 될지가 문제였을 뿐 다시 재개 된단 것 자체는 기정사실이엇다. 언제 문을 열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은 그것이 그냥 코앞의 문제여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진정한 문제는 이 사태로 인해서 산업의 지형과 상품의 유통 시스템이 영원히 변해 버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일단은 음식점들은 모두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사태가 그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가깝게 모여 앉아 밥을 사 먹는 사회 활동은 뜸해질지도 모른다.

여행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여행업계에서는 개인이 해외로 자유여행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네일서비스업는 일대일의 근접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는 업종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기를 꺼릴 것이고 사회적 거리 띄기가 엄격하게 적용되면 네일살롱에서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수도 제한될 것이기 그 장사도 찌그러지는 것을 지나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장원도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웬만한 자기 머리 손질은 집에서 자기 손으로 하기 시작 했다. 세탁업도 그렇다. 요즘엔 세탁소에 맡겨 세탁을 해야 하는 옷가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웬만하면 집에서 빨아 입을 수 있게 나오고 있고, 그 가격도 싸서 세탁비를 지불 할 바에야 옷을 하나 사 입는 것이 더 쌀 때가 많은 데다, 모두들 실용적이고 단출한 옷차림을 하는 추세이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게 보이는 사회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두들 코스코 같은 데서 옷을 사 입고 있는데 거기서 산 옷을 세탁소에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주변에서 우리와 가까웠던 두 분이 평생 해 오던 사업체를 정리하였다. 한 분의 가게는 네일살롱이었고 또 다른 분이 하던 사업체는 드라이 클리너였다. 두 사업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특징은 맨하탄에서 엄청나게 높은 가게 렌트를 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네일업을 하시던 분은 그러잖아도 올해 시간당 15불로 오른 기본급에 가게의 운영에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던 참이었고 세탁업을 하시던 분은 요즘은 드라이클린을 맡기려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져 가게운영에 고통받고 잇던 차였다.


그리고 이 두 분은 모두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가게의 손님은 더 없어질 것이란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이번 사태를 가게의 렌트를 받기 위해 건물주나 부동산 관리 회사와 맺었던 콘트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로 보았던 것 같다.

 

유통업계에 불고 있던 변혁과 변화의 바람은 전부터도 대형 유통업과 소매업체 모두들 폐업 위기로 몰고 있었다. 먼저는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었고 아예 멤버십 제도로 운영되면서 상품들이 거의 공장가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코스트코 같은 새로운 개념의 유통업체가 성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백화점이나 씨어스, 울워쓰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다 줄도산하였고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페이레스란 대형 신발 체인점도 작년에 파산을 선언하게 되었고 어정쩡한 크기의 슈퍼마켓도 여기저기에서 문을 닫고 있는 중이다.

 

우리 같은 일반 소매업체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많은 손님들을 인터넷 쇼핑에 뺏겼고 사람들이 옛날처럼 쇼핑하러 거리에 나오지 않다 보니 거리 자체가 한산해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가 소매업을 하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고 말해오곤 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와 같은 이미 있었던 악재들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크고 작은 많은 업체들은 존재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소매라는 이 유통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급격한 사회 경제, 기술 유통방식의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기능과 원리가 워낙 단순해서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의 어떤 목 좋은 자리를 점유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상품들로 구색을 갖추어 두고 하루의 일정한 시간 동안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단순성과 실용성보다 더 확실하고 효율적인 유통방식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태가 끝나고 나더라도 우리의 가게를 이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해 가려는 이유이다.

 



[위선재]

뉴욕주 웨체스터 거주

위선재 parkchester2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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