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항간세설’을 끝내면서 코스미안뉴스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이태상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9 08:44 수정 2020.06.29 12:55

 

201875일 코스미안뉴스가 창간되면서부터 쓰게 된 우생의 칼럼 '항간세설'이 오늘로써 222회째를 맞는다.

 

내가 어려서부터 수많은 책과 글을 읽으면서 거의 번번이 느꼈던 점은 한 문장이면 될 것을 한 권의 책으로, 한 마디면 될 것을 여러 마디로, 부풀려 뻥튀기해놓은 것만 같아, 말하자면 '사기당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리고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들의 삶과 행동이 그들의 글과 말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큰 실망과 환멸을 많이 느껴왔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거듭 다짐했다. 삶이나 사랑이란 글이나 말로 '때울 수 없는 것'이란 '결론'을 일찍 얻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전혀 의도하거나 꿈꾸지도 않았었는데 어쩌다가 책을 번역서 5권을 포함해 25권을 펴내게 되었고,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 미주판 세계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 등에 수백 편의 칼럼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임금님 벌거벗었다'고 반복해서 신나게 외쳐 온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 어느덧 나이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고 보니 이제 고리타분한 망설(妄說) 넋풀이는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오늘 이 칼럼으로 '항간세설'을 맺으면서, 30년 전, 1990년 을지서적에서 출간된 졸저 '해야야, 코스모스바다로 가자' 서두에 실린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를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독자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 자신에게 쓰는 글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이 생각 좀 해 보면 ''',' ''',' 따로 없이 모두 다 '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서로, 서로의 분신(分身)으로 말입니다.

 

인생이란 바다에서 '태양의 열정과 창공의 희망 그리고 별들의 꿈'에 부풀고,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애' '코스모스의 향수와 바다의 낭만' 넘치는 '해심(海心)을 갖고 출렁이는 우리 모두 '삶의 물방울들' 아니 '사랑의 이슬방울들'끼리 위아래가 어디 있고, 일 이등 꼴찌가 어디 있으며, 잘나고 못남이, ''''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남녀 성별, 인종과 국적, 직업, 학벌, 계층, 연령 또는 인위적으로 조작해낸 '사상''이념'에 상관없이 우리 모든 사람끼리, 그리고 저 하늘과 별들과 바다, 그 속에서 숨 쉬는 모든 생물, 또 숨을 멈춘 듯한 무생물까지도, '' 자신으로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번역도 창작이란 말이 있지만,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것도 번역이고 또한 창작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언제고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읽고 싶은 대로, 추구하는 것만을 찾고 따라서 얻게 될 테니까요.

 

한편 글이란 종이에다 펜으로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생이란 종이에 삶이란 펜으로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을 잉크 삼아 쓰는 것, 아니 그보다도 각자 가슴 속에 뛰노는 노루, 우리 서로 사랑하는 가슴이 준 말, '사슴'의 노래를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숨 쉬듯 부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모두 누구나 다 각자 자기 자신의 글을 쓰고 누구에겐가 읽힌다고, 특히 뒤따라 오는 후배들인 우리 자식들에게, 성공담은 성공담대로 독자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 되어 좋겠고, 실패담은 그 반대로 또 다른 가능성, 더 큰 가능성, 다시 말해, '불사조(不死鳥)의 교훈을 줄 수 있어 그 더욱 좋다고, 그런 까닭에 정말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고, 그뿐더러 그 어느 누구의 글이든 언제나 하나의 습작(習作)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야말로 하나의 '쓰다마는 편지'일 뿐이라고, 그렇게 '쓰다마는 편지 말들'이 모여 만드는 다 의 노래가 또 하나의 '미완성교향곡'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삶과 사랑의 교향악단 단원 한 사람, 한 사람 다 '가 마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마적(魔笛 Magic Flute)'에서처럼 '물의 시련''불의 시련'을 다 끝까지 감내하며 '삶의 노래,' '사랑의 음악,' 연습에 열중하여 혼연일체(渾然一體), 혼연천성(渾然天成)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진정코 '노래''목소리', 손짓, 발짓으로 부르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가슴 뛰는 대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숨 쉬듯' 온몸을 통해 하늘과 별과 바다, 꽃과 무지개, 풀잎과 이슬, 반딧불과 별빛, 낙엽과 눈송이, 바람과 비, 매미와 귀뚜라미, 잠자리와 벌과 나비, 너와 나, '다 나', 한없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적 중의 기적인 '삶과 사랑'을 벌새(hummingbird)처럼 노래하는 우리의 '넋소리, 몸짓, 마음짓'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넋소리, 몸짓, 마음짓으로 쓴 글이 바로 '해야야, 코스모스바다로 가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의 부제(副題)가 있다면 '아지 못게라(알 수 없어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모든 선입견과 편견, 독선과 위선에 찬 각종 고정관념과 도그마로부터 해방되자는 뜻에서이지요.

 

세상에 무엇이 절대로 선인지 악인지, 그 무엇이 궁극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참으로 나와 남이 따로 있는지, 정말 신()이 있고, 내세(來世)란 것이 있는지, 있다면 기성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신과 그런 내세일지, 그리고 신 따로 나 따로 일지, 세상의 그 누구도 우주의 한없이 신비로운 비밀을 다는커녕 그 티끌의 억만분의 일도 알 수 없는데, 아니 알 가망조차 없는데, 꼭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 누구도 결코 단정, 단언할 수 없는데, 그 누구도 그 어떤 아무것에 대해서도 전부 다 확실히 알 수 없는데, 우리 억지 좀 그만 부리자고, 더 이상 '눈가리고 아웅' 엄목포작(掩目捕雀) 하지 말자고, 그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것인 저 달나라, 이 별세계에다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개인의 깃발 갖다 꽃는 '도토리 키재기'식의 유치무쌍한 짓거리 이제 좀 졸업하자는 뜻에서 말이지요. 우리 어서 갖가지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아니면 감은 눈을 크게 뜨고 우리의 고향 대우주 하늘을 바라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눈을 떠야 별을 보지

별을 봐야 꿈을 꾸지

꿈을 꿔야 님을 보지

님을 봐야 별을 따지

 

카오스의 80년대가 저물고

코스모스 90년대가 동트는

 

199012

이태상 드림

 

 

(이 장문의 글 '해아야, 코스모스바다로 가자'는 내 큰 딸 해아(海兒)18세 되던 19861127일 쓰기 시작해서 필자가 만 50세 되던 19861230일 끝맺은 것임)

 

체코 태생의 영국 극작가 탐 스토파드 경(Sir Tom Stoppard, 1937 - )이 그의 2002년 작품으로 2007년도 토니 최고 희곡상(Tony Award for Best Play)을 탄 3부작 '유토피아 해안 - 항해, 파선 그리고 구조(trilogy of plays: The Coast of Utopia - Voyage, Shipwreck and Salvage'에서 삶의 정수를 요약해 밝힌 한마디를 우리 모두 명심하기 위해 인용해 보리라.

 

"아이들은 성장하기 때문에 아이의 목적은 크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의 목적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하루살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하루살이는 자신의 전부를 매 순간에 쏟아 몰입한다."

 

"Because children grow up, we think a child's purpose is to grow up. But a child's purpose is to be a child. Nature doesn't disdain what lives only for a day. It pours the whole of itself into each moment."

 

우리 모두의 처음 시원과 기원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미국 정신과 전문의 브루스 페리(Bruce D. Perry, 1955 - )의 말도 인용해보리라.

 

"우리 뇌에 있는 뉴론(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 대부분은 자궁에서 생겼다. 그리고 평생토록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오늘 2백 개가 생길 수도 있으나 우리가 자궁 속에 있는 동안엔 1초 당 2만 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뇌의 기초공사는 아이의 첫 2, 3년 동안에 이루어진다. 모든 인간발육의 핵심은 너를 제일 먼저 보살펴 주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난 정신과 육체가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마음가짐이 네 몸가짐 생리현상에 반영돼 나타난다."

 

"The majority of neurons in your brain were created in the womb. You continue to make neurons throughout life - today you might make two hundred - but there are periods in utero when you make twenty thousand neurons per second. The foundation of the brain's architecture is mostly formed in the first couple of years of life. The heart of all human development is the relationship you have with your primary caregiver. I think of mind and body as one and the same. Your mindset is reflected in your physiology."

 

이 말은 생명의 신비란 다름 아닌 사랑이란 뜻 이리라.

 

끝으로 금년 말이면 만으로 여든네 살 되는 내 삶을 대변해주는 한마디를 인용해보리라.

 

2017년 출간된 '예순: 내 예순한 번째 해에 쓴 일기장 - 끝의 시작, 아니면 시작의 끝인가?(Sixty: A Diary of My Sixty-First Year - The Beginning of the End, Or the End of the Beginning?)'에서 캐나다 언론인 이안 브라운(Ian Brown, 1954 - )은 그의 예순 번째 생일에 시작해서 예순한 번째 생일에 마감하는 그의 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

 

"한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노력했든 간에 그의 생애란 스스로 형성된다. 하지만 내 삶의 형태가 앞날의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그 모습이 경이로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바로 그 말이지) 일 이리라."

 

"One's life shapes itself, regardless of one's efforts to curve it one way or another. It would still be gratifying (that's the word) to think the shape of my life might emerge out of the future mist, and that it might still be a surprise."

 

얼핏 20세기 스페인 작가 라몬 고메즈 데 라 세르나(Ramo'n Go'mez de la Serna 1888-1963)의 말이 생각난다.

 

 

"알의 날개는 숨겨져 있다."

"The egg has its wings hidden."

 

'항간세설'을 끝내면서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니체가 말했듯이 나도 "사람들이 책 한 권에서 하는, 아니, 하지 않는, 말을 열 문장에서 하는 게 내 야망이다."

 

"It is my ambition to say in ten sentences what everyone else says in a whole book - what everyone else does not say in a whole book."

 

 

다만 니체와 달리 나는 단 열 줄의 문장이 아니고 한 편, 한 편의 칼럼 에세이에서 사람들이 두꺼운 책 한 권을 통해서 하는, 아니면 하지 않거나 못하는 소리를 내 가슴 뛰는 대로 거침없이 했을 뿐이다. 이렇게 정제되지 않고 세련되지 않게 조잡한 우생의 졸문을 너무도 과분하도록 훌륭하게 편집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코스미안뉴스에 올려주신 전승선 대표님, 이봉수 논설주간 선생님, 기자단 일동 그리고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그동안 '항간세설'에서 거듭 강조하고 싶었던 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의 이슬방울로 이 지구별에 태어난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우리 모두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방울로 하늘하늘 하늘로 피어올라 코스모스무지개가 되어보리란 것이다.

 

199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2019)이 그녀의 장편소설 '재즈(Jazz, 1992)에서 증언하듯 말이어라.

 

"난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으로 올랐노라."

"I didn't fall in love, I rose in it."

 

침침한 내 눈앞에 오세영 시인의 시 '우화羽化'가 선명히 떠오른다.

 

 

 

서가書架를 청소하다가

우연히 뽑아든, 빛바랜 시집 한 권.

먼지를 털고 지면을 열자

팔랑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저녁 늦가을

책갈피에 꽂아 끼워둔

코스모스 꽃잎.

인디고 블루

그 적막한 하늘.

 

 

, 우화羽化,

코스모스 꽃잎 하나가 팔랑

한 마리 나비로 날아오르듯,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한 숨 한 숨이 아지랑이처럼

아롱 아롱 숨차게 피어올라

하늘 무지개 되리. 아니,

코스모스무지개 되리

 

있을 이 이슬 맺혀

이슬이던가

삶과 사랑의 이슬이리

아니

기쁨과 슬픔의 저슬이리

이승의 이슬이

저승의 저슬로

숨넘어가는

 

Was the grass wet with early morning dew

to pay your dues of life and love?

Were they dewdrops of life-giving

and love-making,

or rather teardrops of joy and sorrow?

Was that for breathing in

this magic world to the full,

and breathing it out to the last,

before transforming back

into the mystical essence of the Cosmos?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람이 삶을 살았다는 게 무슨 뜻이 있는지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What does it mean to live your life?

What does it mean to have lived your life?

For what and for whom one should live and die?

Where can one find the answer?

 

 

"우주는 네 밖에 있지 않다.

네 안을 보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미 바로 너이니."

 

- 루미(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

 

 

"The universe is not outside of you.

Look inside yourself;

everything that you want,

you already are."

 

- Rumi(1207-1273)

 

 

난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지만 혹시라도 내 묘비명이 하나 세워진다면 이런 말이 새겨지길 희망한다.

 

 

코스모스를 사랑했다

잃어버리고 평생토록

세상천지를 헤매다가

어디에서나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발견하고

미소지으며 잠드노라

영원무궁한 코스모스

하늘엄마의 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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