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강화도에서 나오는 배 안에서 한 생명이 탄생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강화성을 지키던 선비 김익겸은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강화성의 화약고를 터뜨려 분신 자결한다.
아들이 자결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어머니는 목을 매 자결한다. 1697년 강화에서 나오는 배 안에는 이런 아버지와 할머니를 둔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바로 서포 김만중이다.
유전자가 그래서 그런지 서포는 늘 임금에게 직언을 하다가 미움을 받아 일생에 유배를 세 번 가는데 그 세 번째 유배지가 남해 노도다. 서포 나이 53세에서 56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남해 노도에서 수많은 문학작품을 남긴다.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주자요어...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의 자결로 유복자로 태어난 서포는 어머니에 대한 효가 지극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리나라 최초 문화인물로 지정한 서포가 남해에서 쓴 시중에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글로 쓰려하니 글자도 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 붓을 적셨다가 던진 적이 몇 번이던가 내 문집에서 남해에서 쓴 시는 응당 빼버려야지'와 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런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있는 남해 노도는 호수 같은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는 앵강만에서 바라보는 삿갓 모양의 노도는 서포 김만중을 기리는 보물섬이다. 서포가 떠나고 남해 사람들은 서포의 삶을 애달파 하다가 지금 이 시절 조선 최고의 문인 서포 김만중을 기리기 위해 문학관을 지었다.
그 문학관에 구운몽동산, 사씨남정기동산까지 소설 속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 놓았다. 그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되어 남해 정신문화의 주체가 되었다.
한번 온 이 세상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줏대 있고, 역사가 기억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보셨다면
남해 노도에 오셔서
노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만끽하고
서포 김만중의 문학도 만나보면 좋으리라.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