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항해와 표류

류가빈

사진=코스미안뉴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하나의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표를 세우고 철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다음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저 하루하루 뒤집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목적성이 없는 배와도 같습니다. 방향도 갈피도 잡을 수 없지만, 그저 어디론가 떠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상하지 못한 섬과 섬으로 도달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배를 탈 때는 해류를 잘 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해류를 잘 타는 배는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불고 있는지 잘 봐 두어야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수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요. 그 조짐을 미리 느끼고 방향을 전환하는 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채 엉뚱한 데로 떠밀려 가는 배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배는 혼자 가는 배가 아닙니다. 배를 영어로 하면 ship이 되지요? 우리가 우정을 이야기할 때에는 그것을 friendship이라 부르고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는 그것을 relationship이라 부르는 것처럼, 배를 탔다는 것은 곧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를 타야만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고,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하던 많은 새로운 것들을 항해에서 찾아가고 알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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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항구에 안전히 정박해 있지만, 그것은 배의 목적이 아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배들은 목적을 가지고 출항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탄 배가 그 항해를 마치기까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항해를 하며 때로는 바람에 떠밀리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며, 때로는 휘청거리다가도 때로는 자리를 잡으며, 때로는 기대에 잔뜩 차 있다가도 낚싯대에 건져 올린 비닐봉지에 실망하고, 때로는 가만히 있다가 고래를 낚아 올리며 우리가 순간, 순간 발견하는 수많은 것들이 모여 배가 어디로 떠나갈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있었듯이 모든 항로는 때로는 겹치고 때로는 엇갈리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듯 떠나가야 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떠나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서로를 잊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서로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사진도 찍고, 꼭 껴안아 주면서 말이죠. 그 사람들을 오랫동안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언젠간, 진짜로 다시 만나기도 하지만, 서서히, 서서히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서서히, 서서히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던지...서서히, 서서히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느 순간 보면, 놀랍게도 까맣게 잊어버릴 때도 많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잊어버리는 것의 연속이고 살아간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우리가 그들을 까먹은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를 잊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모든 배는 다른 항로를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 우리가 서로를 보지 못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를 기억 속의 서로로만 기억하고, 차츰차츰 우리에게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까먹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잊혀진다는 일은 참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보지 못할 날이 온다면, 저는 비록 항로를 같이하는 배는 못될지언정, 지금은 멀리 있지만, 한때 저와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밤하늘의 별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배에 탄 사람은 나침반도 지도도 없습니다. 우리가 타는 배가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았고,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안내해주는 표지판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야 할 곳도,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기에 거친 바람을 맞서야 하는 모든 배는 항상 떠돌아다닙니다. 어떨 때는 안개에 가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어떨 때는 배 어느 구석에 물이 새기 시작해, 저 깊은 바다로 가라앉을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배가 지나가는 밤하늘에는, 밝은 해가 수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춘 뒤, 어둠뿐인 밤하늘에는, 수많은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마치 수많은 작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가까이 있지 않은 날이 오더라도, 제 이름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표류하는 수많은 배들을 위해 기억으로 남고, 희망으로 남고 싶습니다. 천문학자인 허블에 의하면, 모든 멀어지는 은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고 합니다. 한번 멀어지기 시작한 배라면 그만큼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 역시 우리에게서 매 순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가 배가 되고,

제가 별이 된다면,

거리는 멀어지더라도

마음은 멀어지지 않고,

시간은 지나가더라도

모든 소중했던 기억들은 지나가지 않도록,

저에게 소중했던 수많은 별을 헤아리며

더더욱 밝게 빛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지나간 것들과 지나가는 것들, 지나갈 것들을 또 다시 헤아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표류를 계속할 것입니다. [글=류가빈]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11 04:02 수정 2021.05.1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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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