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하이델베르크의 성(城)

 

 

독일사람들은 하이델베르크 하면 맨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알트(그리움)이다. 유명한 빌헬름 마이어 펠타의 희곡, ‘알트 하이델베르크때문이리라. 이 희곡은 시그문드 롬버그에 의해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이란 오페레타로 지어졌다. 중학교 시절, 이를 각색한 영화를 보고 가슴 뜨겁게 느꼈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귀공자 하인리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 왔다가 처음으로 청춘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카페의 소녀 케티를 만나 첫사랑을 불태운다. 하인리히가 동료들과 맥주잔을 높이 들고 부르던 축배의 노래, 유명한 테너 마리오란자의 목소리를 빌어 힘차게 부르던 드링크 송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낭만과 그리움이 가득한 하이델베르크!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하이델베르크의 성을 찾아가며, 나는 줄곧 카프카의 성, 그 우울한 성채를 생각했다. 사방이 막힌 고독한 돌성에 대한 잠재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성채가 주는 비밀스런 이미지와 수수께끼 때문이었을까?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낙오된 이방인이었다. 영적인 고아로 고독과 죄의식에 빠져 젊음을 앓았다. 1926년 그가 죽은 후 발간된 소설, (Das Schloss)도 국외자의 좌절을 그린 자전적 작품이었다. 어느 마을에 수수께끼 같은 낯선 자, K가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며 경원했다. K는 괴로워하며 소외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의 꿈은 마을 끝에 있는 큰 성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신비로운 신적 존재가 사는 그 성에 남들처럼 떳떳하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K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비 개인 저녁 무렵,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시가로 들어갔다. 도시는 소문대로 아담하고 따뜻했다. 카프카 성의 음산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카르 강을 끼고 푸른 숲이 우거진 구릉에 둘러싸인 시가지는 석양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도(古都)의 과묵한 전통미와 함께 대학촌의 낭만이 곳곳에 무지갯빛 네온처럼 걸려있다. 1396년에 세워진 독일 최고(最古)의 대학이자 독일 철학의 요람. 그 주변으로 주홍빛 기와를 올린 옛집들과 아치형 돌다리, 그리고 중세 교회의 탑들이 기하학적이고도 예술적인 구도로 한 폭의 유화 같은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네카르 강변과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는 언덕은 괴테가 가장 좋아하던 산책로였다. 그는 "네카르 강의 다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이 세상 어느 곳의 다리도 따르지 못하리" 하고 읊었다. 괴테가 연인 마리안네와 함께 거닐었던 알테 다리와 맞은 편 언덕의 철학자의 길을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그가 파우스트첫 권의 부활제 산책 장면에 그렸던 네카르 강 상류의 전원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도시의 제일 높은 구릉 위에 서 있었다. 붉은 조명을 켜 놓아 적갈색 쌘드스톤 성곽이 더욱 붉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14세기에 세워진 팔츠 왕가의 성. 프랑스 루이 14세에 의해 허물어진 성벽을 보며 문득 카프카 성의 수수께끼를 되살린다. 왜 사람들은 성()을 동경하는 것일까? 사람을 유폐시키고 세상과 격리된 성곽에 사람들은 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카프카 성의 K같은 국외자도 잠재의식 속엔 신적 존재가 사는 성에 들어가 보호받고 싶어 했던 것일까? 그러면 왜 결국 들어가지 못했을까?

 

우리가 머문 아담한 호텔은 성 바로 아래 있었다. 괴테의 족적이 어린 300년 묵은 이 호텔의 여주인은 처음 보는 국외자인 우리들을 옛 손님인 양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30년 전, 미국 GI 애인을 따라 미국까지 흘러갔던 얘기를 유창한 영어로 들려준다. 결혼 직전, 마음을 바꿔 애인의 손을 뿌리치고 밀워키에서 그레이하운드로 며칠을 울면서 샌프란시스코에 내렸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비행기로 돌아왔다고 했다. 지금도 눈감으면 그 아름답던 항구가 눈에 선하지만, 옛 성 아래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그녀를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이델베르크 성이라 했다.


사람들이 성()을 동경하는 것은 알트(그리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돌성이 주는 폐쇄감으로 성을 떠났다가도 사람들은 결국 고향을 찾듯 성으로 돌아왔다. 그 그리움은 뿌리에 대한 것과 함께, 보호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지도 몰랐다. 성안에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존재가 살고 있었다. 국외자였던 카프카 성의 K의 눈에도 뚜렷이 보였던 신적인 존재가 우리들 마음의 성에 살고 있었다. 그러면 K는 왜 성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신을 받아들이기엔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도 인간적이었기 때문일까?

 

하이델베르크의 성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가득했다. 카프카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느 날 성 밖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1.05 21:50 수정 2018.12.1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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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