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말문을 닫게 하는 곳
그래픽 처리된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곳
신이 펼쳐 놓은 캔버스 위에 추상화가가 그려놓은 그림 같은 곳
지구에는 그런 곳이 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가 그런 곳이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300km 남쪽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기암괴석들 사이로 지하도시와 암굴교회 등이 빼곡히 들어찬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문화유산 지역이다.
수백만 년 전 에르시예스 산(3,916m)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자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굳어갔는데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어 갔다. 그렇게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지자, 이곳으로 도피해 온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교회와 집과 성채를 만들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한 것이다.
카파도키아에 있는 황량한 평원 아래에는 이 지역의 부드러운 화산암을 파서 세운, 지하도시들이 숨겨져 있다.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의 데린쿠유는 지하 8층으로, 근처 200개 지하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크다. 6개의 도시가 지하로 서로 연결되어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살아온 곳이다.
최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교회, 학교, 곡물창고, 공동부엌, 회의 장소, 심지어 마구간과 포도주 제조 구역까지 갖추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급자족 공동체였다. 로마시대와 이슬람 점령기에 이교도들의 박해를 피해서 이곳으로 온 기독교인들이 만든 지하도시로 알려져있다. 도시 안에는 비밀 터널, 탈출로, 중앙의 구멍에 막대기를 밀어 넣으면 터널 입구 앞에서 굴릴 수 있게 된 크고 둥근 문 등 다양한 방어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카파도키아 관광 지역의 중심 마을 괴레메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박해자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다. 괴레메는 카파도키아의 걷기의 베이스캠프다. 파샤바는 송이버섯과 매우 비슷한 버섯바위가 펼쳐져 있는 골짜기이다. 속세를 떠나 신앙생활에 몰두했던 고대 수도사들이 살았던 바위가 있어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한다.
괴레메 주변에는 백색 계곡, 장미 계곡, 비둘기 계곡, 붉은 계곡, 사랑의 계곡 등 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것들을 너무 많이 가슴에 담게 되면 곧 절실한 그리움으로 고통받게 된다는 것을 이곳을 떠나는 순간 깨닫게 된다.
바위를 깎아 만든 비잔틴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 중 약 30여 개의 교회가 야외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깎고 다듬은 공간 안에 프레스코 벽화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굴교회라는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한 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로즈밸리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카파도키아만의 풍경이다. 로즈밸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트레킹도 나쁘지 않다. 배꽃과 살구꽃, 아몬드꽃이 다투듯 내뿜는 향기 속에 조붓한 흙길을 걸으며 동굴교회나 가옥을 둘러보기도 하고, 전망 좋은 바위의 작은 찻집에서 뜨거운 애플티 한 잔을 마시며 쉬기도 하면서 느리게 걷는 길이다. 장미의 계곡을 붉게 피워내며 스러지는 저녁노을은 카파도키아가 선물하는 최고의 비경이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멀리 우뚝 솟은 바위 산이 눈에 띈다. 카파도키아의 중심 ‘우츠히사르’ 산이다. 산 전체가 터널과 동굴 벌집인데 목재 구하기가 어렵고 쉽게 파지는 특성을 이용해서 동굴 거주지로 만들었다. 고대에는 요새로 사용되었는데, 동굴집이라는 특성과 최고 전망 때문에 마을 전체가 관광객 숙소로 사용된다. 우츠히사르 성채 꼭대기에 서면 360도 파노라마의 장관을 즐길 수 있다. 성채에 딸린 카페에서 차이 한 잔을 시켜놓고 로즈밸리로 넘어가는 황금빛 찬란한 석양을 바라보면 이곳이 바로 별유천지임을 알게 된다.
카파도키아 여행의 백미는 단연 열기구 투어다. 해가 뜨기도 전에 버스가 호텔로 데리러 와서 탑승 장소에 내려 준다.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장식한 형형색색 100대 열기구가 괴레메 새벽하늘에 동시에 뜨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 자연의 신비와 억겁의 시간이 만나 만들어낸 비경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드넓은 벌판에 펼쳐진 기묘한 기암괴석들은 외계의 한 행성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열기구가 고도를 낮추어 살구밭을 지나가니 상큼한 살구꽃 향내가 바람을 타고 기구 위까지 날라온 것 같다. 새벽부터 노새를 끌고 올리브밭으로 가는 농부들 모습도 보인다. 열기구가 고도를 다시 높이니 끝도 없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지평선마저 아득히 보이는 아나톨리아 고원 너머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