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존경하되 숭배하지 말라

모은우


평생 스승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배움을 청하고 자기 자신을 계발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 나간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첫 번째 스승은 부모이며 두 번째 스승은 의무교육에 속해있는 선생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스승은 각자 개인이 인생에서 스스로 찾아 나가는 과정 속에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이러한 세 번째 스승은 멘토의 역할을 하며 인생의 방향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 역시 여러 명의 멘토를 만났으며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각자 성향이나 생각의 성숙도는 천차만별이었으나 멘토라 불릴 수 있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남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결과물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통찰로서 이끄는 카리스마 보유하고 있었기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들은 뭇 사람들의 존경을 이끌어낸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매일매일 헛소리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활동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그 말에 공감하는 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인물의 주변에 제자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뉴턴의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의 곁에 멘토가 존재한다면 사상적 성숙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멘토의 지식 위에 자신의 지식을 얹어 남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멘토의 존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여 준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더 고차원적인 세계관에 눈을 뜨는 지적인 쾌감은 다른 유희들과 비교하여도 전혀 뒤지지 않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멘토를 존경하는 것과 숭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멘토를 존경하는 것은 제자이지만 멘토를 숭배하는 것은 추종자이다. 필자는 몇 명의 멘토를 둔 적이 있지만 멘토들을 만날 때마다 깨달은 것은 멘토는 존경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멘토들을 숭배에 대상으로 둔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행위는 필자에게 두 가지의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통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두 번째는 멘토 역시 많은 실수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멘토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어느 순간 잊어버리는 것은 멘토들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멘토라고 해서 세상의 법칙을 초월한 인물은 아니다. 멘토들은 일반적인 법칙 안에서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며 그것을 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서 표현하는 것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확률 안에서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즉 대부분의 멘토들은 제대로 된 판단 능력을 가졌다기 보다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설득력 있는 화법과 카리스마를 지닌 것에 가깝다. 그렇지만 멘토의 추종자들은 곧잘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실 잊어버린다기보다는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추종자들은 멘토의 판단이 옳았을 때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만 멘토의 판단이 틀렸을 때는 그 사실을 고의적으로 기억에서 누락시킨다.


그렇다면 그러한 멘토들의 카리스마의 원천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을 숭배하기 마련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정말로 확실하지 않다면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멘토들 중 많은 부류는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내뱉는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계산을 거쳐서 그러한 결과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그러한 자신감은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근거로 하여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 많거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률이 높은 예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신을 가질만한 근거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판단을 전체적으로 통계를 내어 효율성을 재보았을 때 그들을 추종하는 추종자들보다 더 월등하게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상황이 달라지면 자신의 믿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버린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멘토가 좋은 판단을 한 것은 기억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멘토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버린다. 또한 멘토는 특별해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공략한다. 인간은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욕구는 멘토를 구하거나 멘토에게 매달리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남들과 다른 통찰을 보이는 혹은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요즘에는 무조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제대로 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만연해졌다. 남들과 다른 생각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이 어째서 일반적인지를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한다. 그러한 상식들은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시간 동안 다른 비판에 수도 없이 검증받았음에도 살아남은 정보들이다. 단순히 새로운 시각이란 타이틀을 얻기 위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를 던지는 거짓 멘토들은 추종자들에게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거짓 멘토뿐만 아니라 훌륭한 멘토일지라도 멘토를 숭배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기꾼이 아닌 훌륭한 멘토를 두었다고 가정하였을 때 지적, 인격적, 영적인 발전에 있어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멘토를 존경하는 것을 넘어 숭배의 경지로 나아갈 경우 멘토의 생각과 방식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의견이나 공격하는 증거나 나왔을 시 무의식적으로 그런 정보들에 반발한다. 그렇지만 멘토 역시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리고 충분히 성숙하고 정직한 멘토를 따른다고 할지라도 멘토를 숭배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그 멘토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절대적인 가치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프레임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멘토를 숭배하면 갈 수 있는 최대한의 발전상은 바로 그 멘토의 또 다른 복제품일 뿐이다.


멘토를 존경하되 그 멘토와 스스로는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멘토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분석을 할 수 있고 분석을 할 수 있어야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있는 가장 훌륭한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처절할 정도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만이 지적인 성숙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상 멘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제자가 스스로 발전하고 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멘토를 숭배하고 멘토 역시 그러한 숭배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순간 멘토와 제자 간의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가 되며 추종자는 자신의 멘토 이상의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가 없게 된다. 멘토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한들 그를 숭배하고 멘토의 정신적 성숙의 수준에 맞추어 자신을 재단함으로써 스스로 성장 가능성을 한계 짓는 행위는 현명하지 못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모은우]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22 11:27 수정 2021.05.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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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