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 칼럼] 큰비

The Sound of Rain

김주연

 

The Sound of Rain 19.6x27.5 Inches Acrylic on canvas 2019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점점 많아진다. 창문을 열었더니 빗방울이 얼굴로 톡톡 튀었다. 차가운 청량감이 느껴졌다. 햇살의 따스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청량감은 나의 정신을 맑게 해준다.

 

5월의 비는 상쾌하다. 쇼팽(Chopin)의 야상곡(Nocturne)을 들으며 느끼는 짜릿함이 얼굴까지 번지는 것 같다. 한 방울의 빗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내 얼굴을 창문에 가까이 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기다려 온 빗방울이 지금은 얼굴을 적신다. 나를 온전히 빗속에 맡기면 비의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마음으로 나의 손을 놀리듯 빗방울로 나의 감정을 울렁이게 하고 싶다.

 

나는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두었다. 이제는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유리창에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천둥소리와 번개가 반복되고 있다. 참았던 것을 한 번에 뿜어내듯 기세 넘쳤다. 빗물로 창밖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어느덧 빗줄기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비 이외의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라는 것 같다.

 

나는 빗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세계는 세상의 소란함을 잠재워주는 곳이다. 요란한 비바람 속에는 마음의 고요가 내재되어 있다. 마음의 눈은 고요함 가운데 열리는 것이다. 나는 마음의 눈을 열기 원한다.

 

이 작품은 거대한 비구름이 몰려오는 찰나의 감정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비구름은 거침없이 꿈틀대며 세상을 뒤덮으려고 한다. 나는 구름 속에 감춰진 빗방울의 포효를 들었다. 그들은 이미 엄청난 응집력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원하는 곳을 흠뻑 적시고도 남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들의 힘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나의 집 지붕에 쏟아지고 있고 나의 눈으로 목도하는 비는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빗소리는 이제 막 나를 향해 다가오는 비의 함성이다. 특히 오늘처럼 거칠게 내리는 날의 첫소리인 것이다. 요란한 빗소리는 천둥소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간직한 것이다.

 

한참 만에 내리는 비는 이 땅의 생명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나뭇잎은 더욱 푸르를 것이고 이제 갓 자라기 시작하는 풀은 힘을 얻을 것이다. 5월의 큰 비속에는 여름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었다.

 

캔버스 위의 붓질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리듬감이다. 무작위로 하는 붓질이 아니다. 자연에서 막무가내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자연은 일정한 때가 되어야 변화하며 그 안에서 새로움이 움트게 된다. 폭풍우를 동반하는 비구름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형성된다.

 

이것이 자연의 리듬이고 나의 붓이 움직이는 방법이다. 작품의 세세한 표현에 있어서 불규칙적인 것조차 전체적인 리듬감에 귀속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획일적이거나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붓의 흐름이 자유롭고 조화로워야 한다.

 

나의 정서는 비 내리는 날의 감정을 품고 스스로 비의 일원이 된 상태에서 붓이 움직인다. 이로써 캔버스에는 유연하고 거대한 선율이 형성되게 된다.



 

[김주연]

서양화가

2020년 개인전 <The Crowd> KCC갤러리, 뉴저지

2020년 전시회 Artrium Gally, 독일

2021년 전시회 KCC Gala Show, 뉴저지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5.29 12:07 수정 2021.05.29 15:1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명희기자 뉴스보기
댓글 1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천광필님 (2021.05.31 11:42) 
5월의 끝자락 비가 여름비 처럼 내렸지요
입니다.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