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작은 꽃에게

문국

사진=코스미안뉴스


어린 시절 나는 자연 속에서 자랐습니다. 산과 들과 개울과 온갖 풀과 나무와 곤충과 동물이 곧 자연입니다. 그것은 누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모는 고된 농사일에 쉴 틈이 없었으며 마을에는 자연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었으니까요. 산골에서 살아가며 저절로 자연을 터득하고 느꼈습니다. 자연은 낯설거나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높고 깊은 산에 혼자 있어도 편안해지는 것은 자연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산과 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시멘트에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풀이 보입니다. 풀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블럭이 깔린 도시의 길에 무슨 풀이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거리 곳곳에는 시멘트와 인도블럭 틈을 비집고 솟아나서 자라는 풀이 있습니다.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삐 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거리의 풀은 무서운 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거리의 풀을 보며 내 삶을 돌아봅니다. 살다 보면 좋은 시절이 있고 무슨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내 형편이 어렵지만 거리의 풀에 비하면 풍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블럭과 시멘트 위에 꽃이 피어납니다. 그런 꽃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이 덧없음을 알고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꽃의 영화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 돌아보면 삶은 한낱 꿈처럼 한순간에 지나간 듯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풀과 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를 친구로 사귀고 바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주 비좁은 시멘트 틈으로 어렵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한여름엔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열기로 무덥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이 언제 풀을 뽑아 버릴지 알 수도 없습니다. 긴장의 연속이며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시멘트 틈에서 자란 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고, 따뜻한 눈길을 던지지도 않습니다.

식물에도 감정이 있을까요? 나는 식물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힘들어지면 부모를 원망합니다. 도시의 길에 씨가 떨어져 자란 풀은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부모를 원망했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신을 원망했는지 궁금합니다. 볼수록 아름답고 앙증맞은 꽃을 피운 걸 보면 누굴 원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나마 살아가는 것이 고맙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생활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시골에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매입하고 주말에 시골로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 채소를 가꿔 먹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골 출신이라 시골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럴 형편이 못 되어 번잡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놀랍게도 도시 거리의 풀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듯 힘들 때마다 꽃에게 눈길을 던집니다. 내 삶이 즐거울 때도,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풀에게 마음을 줍니다.

거리를 걷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풀 앞에 쪼그려 앉습니다.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삐 오가는 거리에 홀로 쪼그려 앉아 아무 가치도 없고 돈도 되지 않는 풀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작고 예쁜 꽃을 보는 즐거움에 비하면 타인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마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립니다. 절벽과 평지의 꽃은 다르지 않습니다. 절벽의 꽃이 평지의 꽃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절망과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심술궂은 바람이 가로수 줄기를 마구 흔들며 달려옵니다. 심술궂은 바람이 절벽만큼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자라 꽃을 피운 풀 앞에 멈춰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속삭입니다. [글=문국]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31 11:59 수정 2021.05.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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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