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잊혀진 기록 속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 끓는 목소리를 듣다

문예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독일의 학자 에빙하우스가 제시한 망각곡선을 보면 인간에게 망각은 마치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망각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다.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을, 일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나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류는 기억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기록을 통해서이다.


기록을 통해 인류는 영원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기록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가도, 꼭 정보를 생산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유용한 정보나 감정,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나 후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록의 주된 매체는 당연히 문자였지만 반드시 기록이 꼭 문자로 작성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림, 상징, 기호, 공간 그 어떠한 것도 기록이 될 수 있었고, 다음 세대에게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었다. 기록은 인류를 동물과 구별시켜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었다. 기록이 인류의 일상적인 활동이 되고 나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바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20세기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 광기의 시대였다. 서양 여러 나라들이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였고,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으며 그 나라의 국민들을 착취했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인류는 제1, 2차세계대전이라는 두 번의 비극을 겪었으며, 이념에 의한 냉전체제를 형성했고, 결국 인류 스스로를 파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인류는 자신들의 행동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각종 기록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이 벌였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기록이었다. 1차세계대전 시기에 쓰여진 많은 비밀 전보들,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사진과 증언, 냉전을 주제로 한 신문 기사와 핵무기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들에 대한 사진들. 이 모든 기록들은 인간을 반성하게 했고, 인간에게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이러한 인류의 역사 전개에서 우리나라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조선은 일본과 서구열강에 의해 개항되었고, 결국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되어 36년간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광복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한국전쟁과 독재체제의 성립, 산업화 속에 우리는 기록을 꺼내 보고 과거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비로소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을 얼추 정리하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으며, 우리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이 벌어졌던 아시아의 탄광과 각종 건설현장, 전쟁의 최전선, 그리고 군함도.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그곳에는 지옥이 있었다. 그들은 탄광, 전쟁터와 같은 극악한 환경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안전장치도 없었고, 식사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위험한 강제노동 속에 수많은 동료들이 남의 나라가 벌인 전쟁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 나갔다. 강제징용에 의해 조선인들은 노예보다도 못한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전쟁이 끝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아니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의 무관심 속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강제징용피해자들은 어둠 속에 묻혀가면서도 기록을 남겼다. 강제징용피해자들은 강제징용명부를 통해서, 폐쇄된 탄광에서, 여러 편지들을 통해서 이들은 자신들이 과거 그곳에 있었노라고, 그곳에서 고통받고 죽어갔노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 기록들은 마침내 다음 세대에 전해졌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 2019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본의 강제징용기업들이 강제징용피해자들에 보상할 것을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고 여러 가지 외교적 무리수를 써가며 한국정부에 불만을 표했다. 한 가지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의 일부 사람들조차 다 지난 과거의 일로 왜 굳이 한·일간 갈등을 만들어 내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과거는 덮어두고 미래를 보자고 했다.

기록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같은 기록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아픈 기록으로 남아 있는 군함도를 일본은 자국근대화의 상징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시도한 것만 보아도 같은 기록과 공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차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강제징용이 하나의 뜨거운 이슈가 되면서 각종 신문 매체나 국가기록원 자료를 통해 강제징용 관련 기록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 명부들, 사진들, 증언들을 보면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피 끓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끊임없이 오늘날 우리에게 자신들을 기억할 것을 말하고 있다. 과거를 덮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강제징용피해자명부를 보며 그저 단순히 과거를 살다간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시 탄광을 보면서 일본제국주의의 강성함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들은 강제징용피해자들이 남긴 무수히 많은 기록들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 기록들을 보아야 하며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할까. 이것이 바로 기록의 존재 이유고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들을 보아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는 미래를 그릴 수도, 말할 수조차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바로 오랜 과거의 축적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 또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전개에 의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E.H.(E.H.Carr)는 그의 명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해주는 매개물이 바로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꼼꼼하게 살펴보고 혹시나 아직 어둠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소중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강제징용피해자들과 그 기록들을 기억하는 것은 일본에도 의미 있는 일이다. 아베 총리는 일전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한국을 침략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을 뽑은 적이 있다.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에 대해 아베총리는 깊은 공감을 표하고 있으며 이미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허상이 무너진 오늘날도 요시다 쇼인의 망령은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를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 것은 결코 일본의 미래에도, 또 세계평화의 측면에도 비극이다.

아프더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을 살피고, 역사를 직시할 때 인간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픔을 공감하고 역사를 성찰하는 대상이 꼭 한국이나 한국인 만일 이유는 없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주체는 일본이 될 수도, 더 나아가 인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 그 탄광 속에, 군함도에 고통스럽게 살았던 우리의 가족, 이웃, 선조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기록들을 발굴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 기록들을 통해 과거를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야 하고 과거인이 살았던 사회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이런 기록들은 단순히 과거의 텍스트를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기록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글=문예찬]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04 11:20 수정 2021.06.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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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