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동료들과 나누는 휴가 이야기는 언제 나누어도 즐겁고 흥분된 목소리를 연출한다. 일 년 중 딱 하루,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성스러운 기도를 드리는 크리스마스날 아침을 위해 일 년을 일한다는 농담처럼 누군가는 휴가 하나 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해 왔다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을 한다.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휴가의 설레임은 어제까지 있었던 웬만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성 병도 씻은 듯이 고치는 명약이 된다. 삶의 무력감이나 상실감에는 그보다 더한 특효약은 없다. 하지만 그 휴가 기간의 약발이 떨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입술이 마른 아편중독 환자처럼 아쉬움에 멍하니 한동안 머물게 한다. 마치 치료약을 주었다가 다시 병을 주는 고약스러운 나라의 심술쟁이 의사 같다.
해마다 신년이 시작되면 신청하는 일 년 중 갖게 되는 휴가로 고민에 빠지는 나는 이미 심하게 중독된 환자이다. 나만의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위하여 알토란 같은 휴가를 쓰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죄인으로 어디엔가 갇힌 사람이라는 생각을 휴가 때마다 한다.
일을 시작하던 첫해에 받던 4주간의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낼 때는 평범하게 따라갔다. 차츰 늘어난 6주의 유급 휴가를 받게 되면서부터 더 심해갔다. 매년 갖는 그 6주라는 황송하고 죄송하기도 한 대가는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할 줄 모르는 내가 되어갔다.
다른 동료들처럼 여행을 떠날까. 여행은 특별한 날을 잡아 떠나기보다 일상을 여행 삼고 싶은 나에게는 그 또한 큰 의미가 없다. 동료들의 휴가 이야기 속에는 긴 유럽여행을 위해 쓰거나, 혹은 집을 수리하는 등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 계획하거나, 혹은 덜 마친 학업의 보충 수업을 받는데 쓰기도 하고 다른 임시직을 잡아 부족했던 돈을 버는 일도 있다.
저마다의 휴가를 갖게 되는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고 충만해 보인다. 나는 6주의 휴가를 손에 쥐고 내가 벼르던 나라로 떠나고 싶어 늘 고민을 했다. 세상천지에 널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꿈 중에서 뜻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의 여행을 이번 휴가에 나는 용기를 내어 꼭 이루고 싶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벤치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 여름날이다. 이 세상에 머물기 위해 누구나 생명이라는 비자를 갖고 산다. 그 비자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저세상을 잠시 다녀올 수 있는 단기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비자 신청하러 갈 것이다. 사람이 분명한 목적지로부터 이 세상에 왔던 것처럼 돌아갈 곳이 분명하게 있다는 그곳을 잠시 찾아가는 일이다.
그곳을 찾아가는 꿈은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오직 내게만 허락된 신의 사면이다. 그럼 나는 그 비자로 얼마 전에 떠나신 나의 아버지 세상을 깜짝 방문하는 거다. 그 순간의 시간이 하루, 한 시간, 아니 눈 깜짝 짜리 비자라도 괜찮다. 일찍 아픈 몸으로 떠나신 어머니가 완쾌하셨는지 딱 그것 하나만 알아보고 싶어서다.
6주라는 비자 기간이 너무 짧아 우주국의 체류 기간을 그만 위반한 형벌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아다닌다 해도 나는 그 길을 선택할 거다. 그것이 비자를 받기 위해 신청서를 위한 딱 하나 나의 각오이다. 찾아가는 길에서 우주를 싸고도는 온갖 이름의 무수한 별들이 아무리 아름다워 나를 감탄케 할지라도 나의 어머니 안부만큼 간절하지 않다. 어린시절 따라 부르던 노래 속 은하수를 건너기만 하면 바로 하늘나라로 가신 나의 어머니를 만나 뵐 수 있다.
그 어떤 여행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만나 뵈면 철모르는 세상에 나를 놓고 가신 이유도 묻지 않을 거다. 가슴속에 묻고 산 침묵의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는 말씀도 드릴 수 있을지 사정을 보면서 결정할 거다. 실험실 비이커속 거미도 자기 새끼를 품에 껴안고 죽어갔다는데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가실 수 있으셨냐는 원망도 비자 신청서 난에 쓰지 않을 거다.
초여름 어미새가 알을 품을 때 모습처럼 나도 어머니 품속에서 있었던 기억이 분명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비자를 받는데 충분하다. 어머니의 그 고귀함을 잊고 산 긴 세월도 비자를 원하는 분명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모두의 이유로 받은 비자가 만료되기 전 서둘러 그 기억을 가슴에 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거다.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먼 길을 올 수 있었냐고 깜짝 놀라 물으시면 이 아들의 능력을 그렇게 자랑을 할 거다. 신의 나라 영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인터뷰관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여행의 목적을 말하여 거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씀 드릴 거다. 내가 사는 세상의 일 년은 어머니의 세상에서는 천년이라고 하는데 수천 년 전에 떠나신 어머니의 춥고 긴 외로움을 부탁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는 여행목적이라고 강조했더니 면접관이 나의 이유를 듣고 비자를 주기에 충분하다며 흔쾌히 도장을 찍어 주었다고 아들의 능력을 과시할 거다.
쇠똥 밭에 굴러 살아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말이 나는 몸서리 쳐지도록 듣기 싫다. 두 분이 사시는 세상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보고 왔으니 아무 근거도 없이 이승과 저승에 선을 그어놓는 그런 책임 없는 말에 속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은하수 강물에 쏟아부었던 눈물도 용서가 되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확실한 사증도 가슴에 받았다.
이젠 두 분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사실 거라는 확신의 사증으로 우주만큼 커다란 여행을 하였으니 내 생애에서 꼭 하고 싶은 마지막 꿈의 여행을 이룬 거다. 해마다 휴가를 손에 들고 방황하던 나는 이제 그 꿈속으로 향하는 여행의 비밀을 풀었다.
모두가 신의 배려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6주간 허락된 꿈의 여행에서 생긴 일이다. 신은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