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몸과 머리

영원한 인간 수수께끼

토마스 만


6

 

, 이제 신전 동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돌아가 보자.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기다리다가 시간이 감에 따라 웬 일일까 하고 의아해하기 시작한다. 잠깐 신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오겠다는 슈리다만이 무슨 일로 이렇게 오래 지체하는 것일까? 시타는 난다 뒷좌석에 앉아 난다의 뒤와 제 무릎을 번갈아 보는가 하면 난다는 난다대로 거북스럽게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못해 난다가 뒤를 돌아보며 시타보고 묻는다.

시타 형수님, 슈리다만 형이 왜 이리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지 짐작이 가는대라도 있나요?”

전혀 없네요. 난다.”

너무도 달콤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시타가 대답한다. 이 사랑스런 목소리를 듣게 될까봐 난다는 늘 두려워해오지 않았던가!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말끝에 다정하게 그리고 불필요하게도 그의 이름까지 부르지 않는가!

 

저도 오랫동안 궁금해 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몸을 돌려 절 보고 물어주시지 않았었더라면 제가 참다못해 물어보았을 걸요. 하도 답답해서…….”

 

그녀가 말을 계속한다. 그는 머리를 젓는다. 일단은 친구의 오랜 지체 때문이나 그보다는 그녀가 쓴 불필요한 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그냥 물어주시지 않았더라면해도 될 것을 굳이 몸을 돌려 저를 보고 라고 한 것은 필요 이상이고 심지어 위험천만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그토록 달콤하게 떨리는 음성으로 약간 사랑스런 교태까지 부린다는 것이. 그는 아무 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 자신도 또한 부자연스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될까봐서. 한편으로 그녀가 한대로 자기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면서. 좀 더 있다가 그녀가 다시 말을 한다.

 

난다, 제 말 좀 들어줘요. 어서 가서 그를 찾아봐요. 어디 있는지. 기도하느라 정신을 잃고 있거든 당신의 힘센 팔로 그를 흔들어 정신 차리도록 해주셔요. 우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그는 참 이상하네요. 우리 이렇게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게 해놓고. 시간만 낭비하고 해는 점점 중천에 떠올라 더워지는데 말이에요. 길을 잃는 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많이 늦어져 저의 부모님께서 걱정이 크실 텐데. 그러니 난다, 어서 가서 그를 좀 데려와요. 그가 오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그를 억지로라도 데리고 와줘요. 당신은 그보다 힘도 세지 않아요.”

 

좋아요. 그러지요. 길 잃은 것은 내 잘못이었어요. 아까부터 그를 찾아 나설 생각은 했지만 아가씨가 혼자 남아있는 걸 무서워할까봐 그대로 있었지요. 잠시면 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마부석에서 내려와 신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끔찍한 장면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우린 알고 있다. 사시나무 떨듯 하는 난다가 두 손으로 양 볼을 잡고서 목이 메게 통곡하며 친구의 이름만 부른다. 몸으로부터 잘려나간 머리와 머리 없는 몸을 번갈아 보면서 그는 울부짖는다.

 

슈리다만, 내 다정한 친구야, 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형의 그 여린 손과 팔로 어찌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더란 말이야! 이건 결단코 형이 할 짓이 아닌데! 아무도 형보고 이런 일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형이 하고야 말았구나. 언제나 난 늘 형의 높은 정신을 우러러 봤었는데 이제는 눈물에 젖어 형의 몸까지 존경해야 되겠네. 이 세상에서 제일로 하기 힘든 일을 형이 해냈으니까! 형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갔기에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이야!

 

형 가슴속에 그 어떤 허망과 절망이 아니 그 어떤 아량과 헙헙함이 들어찼었기에 이 같은 희생의 칼춤을 추며 형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 있었단 말이야! , 슬프도다. , 슬프도다. 이것이 다 내 탓 아니랴. 내 행동 때문이 아니라면 내 존재 때문 아니랴. 친구여, 좀 보거라. 내 머리는 아직 생각할 수 있으니 형이 생각하듯 해보리라. 형의 지혜로운 판단으로는 행위보다 존재의 잘못이라 할런지 모르지. 그렇지만 행동하지 않는 기피행위 외에 더 이상 뭣을 할 수 있으랴.

 

나는 형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내 형수님께 정다운 목소리로 말하지 않기 위해 짐짓 입 다물고 있었고 불필요한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말할 때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 내가 나 자신의 증인이야. 나 말고 다른 증인 없고말고. 형수님이 형 잘못을 들어 불평할 때에도 그 기회를 이용해 그녀를 유혹하지 않았어. 그러나 이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죄를 지은 셈인데. 내가 진작 사막 황무지로 가서 은둔생활을 했었어야 하는데. 형이 내게 아무 말 하지 않았어도 그랬어야 하는데.

 

만일 형이 그러라고 했다면 난 서슴지 않고 그렇게 했을 거야. 그 뛰어나게 명석한 머리로 그 머리가 형의 몸에서 떨어지기 전에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는가 말이야. 우린 언제나 우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지 않았어. 형의 현명한 머리와 내 단순한 머리로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가장 심각하고 중차대한 일처리에서 형이 침묵을 지키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야! , 이제는 다 틀렸어. 형은 말하는 대신 행동으로 위대하고도 잔인하게 보여준 거야. 이제 나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내가 형을 저버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았겠지. 형의 약한 팔로도 해낸 일을 내 튼튼한 팔로 못하리라고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내가 말했었지. 난 형과 헤어져 살 수 없다고.

 

형이 상사병을 앓느라고 화장불 장작더미를 날더러 쌓아 달라 했을 때 내가 형에게 분명히 말했었지. 꼭 그래야만 한다면 나도 형과 같이 타죽을 수 있도록 장작더미를 두 사람용으로 크게 쌓겠노라고. 이제 일어나야 할 일을 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다만 이 신전 동굴 안에 들어와서 형 몸 따로, 형 머리 따로, 놓여있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그 일이 분명해졌을 뿐이야. 이 비참한 형의 모습을 보는 순간 형의 가장 친한 벗 난다의 결심이 섰어.

 

형과 더불어 같이 불에 타죽으려 했듯이 난 형과 함께 피를 흘리겠어. 다른 아무 일도 남지 않았어. 그 외에 무슨 일이 있겠어? 내가 이 동굴 밖으로 나가 그녀에게 형이 저지른 일을 알려주고 그녀가 지르는 공포의 비명 속에서 그녀의 숨은 기쁨의 환성이라도 들으랴? 더럽혀진 이름을 갖고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아가며 살라고? 저 나쁜 놈 난다는 친구를 배신해 친구의 아내를 탐내다가 그 친구를 죽인 살인범이라 라고 말할까. 그건 안 돼. 절대로 안 되지! 난 형을 따를 거야. 그러면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모성의 여신 자궁이 형의 피와 함께 내 피도 받아 마시리.…….”

 

이렇게 말하면서 이미 굳어져가는 슈리다만의 손에서 칼을 뽑아 난다 자신이 내린 사형을 스스로 집행한다. 그러자 그의 몸은 슈리다만 몸 위로 쓰러지고 그의 머리는 슈리다만 머리 옆에 떨어진다. 그의 피가 솟구쳐 여신상 밑으로 흥건히 고이면서.






 



서문강 기자
작성 2018.11.13 05:12 수정 2018.11.13 05:1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서문강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2일
2025년 4월 12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