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4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천개의 찬란한 태양' 필자 정숙희 논설위원은 "용감하고 지략과 회복력이 뛰어난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미국은 아프간 주민들에게 빚을 졌다. 미국을 믿고 미국의 목표에 발맞추어 목숨을 걸고 일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는 후세이니의 눈물겨운 호소가 가슴을 친다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소설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이 책을 지난 주말 다시 한 번 읽었다. 처음에 받았던 생생한 충격이 이번에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생소한 나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어떤지 다시 한 번 분노하고 비통했기 때문이다.
저자 호세이니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의사가 되었으나 틈틈이 작품을 써서 2003년 첫 장편 ‘연을 쫓는 아이’로 데뷔했고, 4년 후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했다. 두 소설 모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각각 101주와 49주 동안 올랐을 정도로 큰 감동과 반향을 선사했고, 세계 70여개 국어로 번역됐다.
‘연을 쫓는 아이’가 카불에서 성장한 두 소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천개의 태양’은 전쟁과 폭력 속에 생존해야하는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숱한 내전과 소련침공, 탈레반 학정,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 등 아프간의 비극적 현대사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펼쳐진다.
부잣집의 사생아로 태어나 숨겨진 채 자라난 마리암은 열다섯에 중년의 홀아비에게 강제결혼 당하고, 계속되는 유산과 남편의 거친 폭력을 견디며 공포의 나날을 보낸다. 반면 아름답고 명석한 라일라는 진보적인 아버지 덕에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가진 여성. 배경과 나이가 크게 다른 두 여인이 내전의 비극으로 뜻하지 않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 속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희생으로 희망을 키워나간다.
지난 주 내내 이 책의 두 주인공을 떠올리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아프간 여성들 때문이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여성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여성의 교육과 취업, 사회활동이 일체 금지됐고, 남자보호자 없이는 집 밖을 나서지 못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해야했다.
부르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마저 망사로 가리는 복장이다. 니캅(눈을 제외한 전신 가림), 차도르(얼굴을 제외한 전신 가림), 히잡(머리카락과 목을 가림)과 비교하면 가장 엄격한 복장이다. ‘천개의 태양’에서 처음 부르카를 입었을 때를 마리암은 이렇게 묘사한다. “망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낯설었다. 주변을 볼 수 없게 되니 힘이 빠졌다. 주름진 천이 입을 질식시킬 것처럼 압박하는 게 싫었다. 부르카는 한쪽에서만 볼 수 있게 된 창문 같았다.”
지금 아프간의 여러 도시에서 부르카 상점이 뜻밖의 호황이라고 한다.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부르카가 생존을 위한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됐고, 가격도 10배 이상 급등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정도니, 현지의 공포가 어떨지 상상할 수 있겠다.
탈레반이 쫓겨나고 미국이 점령했던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의 여성인권은 크게 개선됐다. BBC 방송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대학생의 3분의 1이 여성이고, 성인여성 5분의 1은 직장을 갖고 있다. 정치, 언론, 교육, 경제, 예술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숫자도 늘었다.
하지만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간 사회는 2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새 탈레반 정부가 여성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의 제목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의 시 ‘카불’에서 따온 것이다.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 천사조차 그 푸른 초원을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본 도시, 지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달들이 반짝이고, 벽 뒤에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있는 도시…”
저자는 이 제목을 통해 카불이 과거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는지를 알리고 있다. 또 소설 속 대화를 통해 마리암의 고향 헤라트가 한 때는 페르시아 문화의 요람이었고 시인과 화가들의 고향이었으며 “헤라트에서 다리를 뻗으면 차이는 것이 시인들의 엉덩이일 정도였다”고 묘사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수준 높았던 문화를 자랑한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면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아프간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짧은 치마를 입고 차를 몰며 변호사와 의사, 공무원으로 일하던 자유로운 곳이었다”며 “용감하고 지략과 회복력이 뛰어난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은 아프간 주민들에게 빚을 졌다. 미국을 믿고 미국의 목표에 발맞추어 목숨을 걸고 일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는 호세이니의 눈물겨운 호소가 가슴을 친다.
<정숙희 논설위원>
아, 이것이 어디 아프간 만의 문제인가. 한국과 일본 및 중국 그리고 미국도 그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지만 아직도 전 세계 부계사회 온 인류가 겪고 있는 뿌리 깊은 만성 고질병이 아닌가.
최근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세 편을 아래와 같이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페미니즘은 코스미아니즘이다 Feminism Is Cosmianism
(2021. 08. 05)
오늘 2021년 8월 4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칼럼 ‘쇼트커트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을 필자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짧은 머리든 긴 머리든 도대체 왜 페미니스트인 게 문제가 되는가. 페미니즘은 젠더 갈등의 원흉이 아니다. 남녀 소수자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타고 난 성 차이를 이유로 성차별하지 말고 서로 강요된 성 역할의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새로운 관계 선언이라고 이해한다. 페미니즘을 오독하지 말라. 요즘은 남자 초등생까지 ‘페미가 싫다’를 입버릇처럼 외우고 다닌다고 한다. 시민 인권 교육자로서 페미니즘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다.”
이 얼마나 황당무계荒唐無稽하도록 한심찬란한 현상인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시대착오인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남자 사내 애새끼들이 즐겨 부르던 노랫가락 ‘미나리밭에 앉아서 좆이나 박 - 박- 긁어라’가 먼 산울림으로 아직도 한반도에 울려 퍼지고 있단 말인가.
지난해 2020년 7월 28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곰할머니께 비나이다’를 아래와 같이 옮겨보리라.
곰할머니께 비나이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제3선거구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 테드 요호(Ted Yoho, 65세)가A.O.C.(Alexandria Ocasio-Cortez, 30세) 뉴욕 제14선거구 민주당 하원의원과 수도 워싱턴 국회의사당 청사 건물 층계에서 범죄와 경찰 행위에 대한 언쟁을 벌인 후 떠나면서 "개00/ 개00(a fucking bitch)"이라고 욕하는 걸 한 기자가 들었다.
미국 의회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 된 그녀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지난 7월 23일 목요일 미 국회의사당에서 요호 씨 같은 몰상식하고 저질스러운 (남성) 족속(族屬)들에게 그녀는 일장 훈시(訓示)를 했다.
"요호 씨는 아내와 두 따님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요호 씨의 작은 따님보다 두 살이 어립니다. 나 또한 어떤 누구의 딸이지요.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나의 부모님께 내가 두 분의 딸이고 내 부모님께서 내가 남자들의 언어폭력을 포함한 성폭력을 용납하도록 키우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Mr. Yoho mentioned that he has a wife and two daughters. I am two years younger than Mr. Yoho's younger daughter. I am someone's daughter, too…I'm here because I have to show my parents that I am their daughter, and that they did not raise me to accept abuse from men."
2015년 출간된 우생의 졸저(拙著) ‘무지코 칸타타’ 첫 장에서 내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고(告)하는 글을 아래와 같이 옮겨 본다.
요즘 한국에서 여성 비하와 여성혐오가 전염병 번지듯 한다는 기사를 보고 팔십 노인이 같은 남성 동포 여러분에게 간곡히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남녀성별 불문하고 우리 모든 생물의 고향은 하늘(아버지)과 그 정기(精氣) 받은 땅(어머니)의 모태인 바다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늘님’과 ‘땅님’이 결합한 ‘하나님’이 설혹 성별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라 하기보다 ‘하나님 어머니’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인류학적으로 고찰해 볼 때 여성을 여신(女神)으로 숭배하고 모계사회로 출발했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돌연변이의 자폐아(自閉兒)가 태어나 ‘여신은 없다’고 선언하자 초심(初心)을 잃게 된 인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퇴행(退行) 퇴화(退化)하면서 평화롭던 세계가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 남성의 씨를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여성의 모유를 먹고 자랐습니다. 물론 부성애도 필요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부성애라도 하찮은 모성애의 억만 분의 일도 못되고, 아빠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엄마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아이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얼마전 지인이 보내준 유튜브 영상을 보니, 수탉은 저 혼자 먹기 바쁜데 암탉은 모이를 쪼아 병아리 먹이느라 정신없더군요. 그런데 어찌 우리 남성이 우리의 영원한 엄마, 누이, 딸, 애인, 연인, 여신을 욕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참으로 천벌(天罰), 지벌(地罰), 인벌(人罰)을 발을 일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고향을 잊지 말고, 연어처럼 회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궁창 오물통에 빠진 채 문전걸식(門前乞食)하다 문전객사(門前客死)하지 말고 사랑이라는 무지개를 올라타고 하늘하늘 코스모스바다로 돌아가십시다. 정, 남성들이 끝끝내 개과천선(改過遷善) 못 하겠다면 최후의 방책(方策)으로 극약처방(劇藥處方)이라도 있어야 하리라.
그래서 2016년 출간된 졸저 <가슴은 사랑으로 채워라(Fill Your Heart With Love)>의 28장(Chapter 28): ‘윤동주와 마광수, 사마귀 타령’을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특히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교미 후에 수놈을 잡아먹는 사마귀 (praying mantis)처럼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모든 남성을 성교(性交) 후엔 인정사정(人情事情)없이 잡아먹어 치울 여성들의 출현을 죽도록 고대해 마지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말 진실로 ‘꿈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2019년 9월 2일 코스미안뉴스 [항간세설]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여성인류(Womankind)’가 부활하는 ‘코스미안시대'
2012년 출간된 ‘남성의 종말과 여성의 천지개벽 (The End of Men: And the Rise of Women)’이란 책이 오늘의 시대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지성 월간지 ‘애트랜틱 (The Atlantic)’의 칼럼니스트인 한나 로진(Hanna Rosin, 1970 - )이 쓴 이 책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의 ‘여성의 신비성(Feminine Mystique)’이나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의 ‘제2의 성(The Second Sex)’ 그리고 나오미 울프(Naomi Wolf, 1962 - )의 ‘미의 신화(Beauty Myth)’를 무색케 할 역사적인 저서로 지금까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권력 이동의 맥을 짚어 부계사회가 끝나고 모계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섹스는 세상살이를 흥미롭게 하는데 필요한 전부를 제공한다며 2004년에 나온 서적 ‘여성의 성과 진화론(Sex, Time and Power: How Women’s Sexuality Shaped Human Evolution)’의 저자 레오나드 쉬레인(Leoanrd Shlain 1937-2009) 박사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욕망의 부조화를 탐구해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약 15만 년 전부터 인간 두뇌가 커지고 다른 동물들처럼 기는 대신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 신체구조가 변하게 되는데 이것이 남자에겐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여자에겐 큰 위험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임신 후 몸보다 머리가 큰 아이를 협소한 질을 통해 출산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은 배란 주기에 섹스를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고 남성은 정반대로 더 굶주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쉬레인 박사는 그의 첫 저서 ‘예술과 물리학(Art & Physics: Parallel Visions in Space, Time & Light, 1991)’ 에서 예술이 언제나 과학에 앞선다며 피카소 같은 예술가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실마리를 풀어주었음을 그 한 예로 든다. 그 다음으로 쓴 그의 두 번째 저서 ‘알파벳 대 여신(The Alphabet Versus the Goddess: The Conflict Between Word and Image, 1998)’에서 저자는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둘러보라. 무엇이 제일 큰 문제인지 곧 알게 된다. 그것은 곧 배타적인 종교의 폐쇄성이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한 권의 책 속에 일자일획의 오류도 없이 기록되었다고 사람들이 굳게 믿게 되자 인간은 이 ‘말씀’ 때문에 서로 죽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류는 본래 여성을 여신으로 경배해 왔다. 그러나 한 뿌리에서 생긴 고대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나타나 ‘여신이란 없다’고 선언하자 문화가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공격적이 되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 때문에 ‘사랑’을 빙자한 살육지변(殺戮之變)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문자가 서구문화에 끼친 엄청난 해독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그 해독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절망하고 비탄만 할 일이 아니며 희망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최근에 와서 TV와 예술, 그림, 화상, 영상, 조각상 등 이미지의 폭발적인 파급으로 추방됐던 여신이 돌아오고 시각적으로 구전적으로 인류사회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편다.
지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중국 문필가 임어당(林語堂Lin Yutang 1895-1976)이 지적했듯이 서양문명이 남성적이고 동양문화가 여성적이라면 평화와 사랑의 화합작용으로 생명을 만드는 동양의 음기가 전쟁과 폭력의 파괴행위로 목숨을 앗아가는 서양의 양기를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유치하고 상스러운 남성인류 (mankind)가 어서 사라지고 성숙하고 자비롭고 고상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여성인류(womankind)가 부활하는 코스미안시대(Cosmian Age)를 열어보리라.
1993년 바티칸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 조치를 받은 신학자로 미국의 도미니코 수도회(Dominican Order) 신부 매튜 폭스 (Matthew Fox, 1940 - )는 그동안 68개국어로 번역되어 수백 만 권이 팔린 ‘원복(原福 Original Blessing, 1983)’과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The Coming of the Cosmic Christ, 1988)’를 포함한 35권의 저서를 통해 신(神 God)을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라 부르며 인간의 ‘원죄(原罪 Original Sin)’가 아닌 본래 면목(本來面目), 본래성불(本來成佛)로서의 본래축복(本來祝福)인 ‘원복(原福 Original Blessing)’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공해(公害)로부터 자연환경 보호와 사회정의(社會正義)를 구현(具現)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인류와 자연의 신비로운 기원과 내력을 부정하는 남성지배, 인간중심, 그것도 백인위주의 권위와 특권이란 보수적인 전통을 보존코자 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 했을 것” 이라고 파계승(破戒僧)이 된 데 대해 그가 한 말이다.
“습기(濕氣), 그것이 바로 삶이며 생명이다. 늘 축축하게 젖어 있고 변하는 것이. 사람이고 집단이고 간에 건조해지면 굳어져 금이 가고 부스러진다. 그러면 파시즘(fascism)이 기어든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민속신앙의 마법을 쓰는 마녀나 아프리카 토인부락의 북치는 고수(鼓手)나 아메리카 인디언 마법사나 동양의 무당들을 서양의 신부나 목사와 동일시하고 이들 모두 다 인간의 영적 (靈的)인 영성(靈性)을 다루는 사람들로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문화인’과 ‘미개인’이 따로 없다며 어쩌면 ‘미개인’이 되레 인간 심신(心身)의 공해(公害)를 모르도록 축복받아 개명한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런데 그 더욱 신기하게도 그의 첫 저서로 그의 처녀작(총각작 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은 그 제목이 ‘음악적으로 신비한 곰 한 마리가 되는 것: 미국식 영성(靈性) On Be- coming a Musical, Mystical Bear: Spirituality American Style, 1976)’이다.
아, 옳거니, 우리 모두 어서 단군신화로 돌아가야 하리라. 세계 인류 모두가 말이어라. 아, 정녕, 단군 할아버지, 아니 우리 곰 할머니 만세로다.
‘검은 고라니 사슴(Black Elk)’이라 불린 북아메리카 인디언 마법사(Hehaka Sapa, commonly known as Black Elk, 1868-1950)가 병든 사람이나 동식물을 위해 외던 주문(呪文) 가운에 이런 것이 있다.
‘땅 할머니시여,
내 말 좀 들으시오.
당신 품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있지요.
두 다리, 네 다리, 날개 달린 짐승,
그리고 당신 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 다 당신의 자손들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다
서로 친척임을 알지라오.
미대륙의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우리 한민족과 같은 몽고족이라 하지 않나. 그렇다면 단군 할아버지 아니 우리 곰할머니께 빌어 볼거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물아일체
피아일체
홍익인간
홍익만물
인내천
우주인
나그네
코스미안
동식광물
하늘과
별들과
바다와
그 속에
숨 쉬는
모든 것
숨 멈춘 듯 한
무생물까지도
나 자신으로
느낄 수 있게
깨우쳐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주 자연 음양(陰陽)의 이치와 섭리가 여성은 남성을 위해, 남성은 여성을 위해,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존재이유와 존재가치는 상식 이전의 상식이 아닌가 말이어라. 그러니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어서 잠-꼬대 같은 헛소리 그만하고 철 좀 들어보시기를 간곡히 권고해 마지않는다.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
(2020. 12. 16)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인류역사상 세계 최대의 쓰나미(Tsunami)를 맞은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이 밝아오고 있는 이 시점(時點)에 지난 75년 아니 2천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올해 초에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유쾌한 행복론’에 실린 졸문(拙文)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과 올가을에 나온 영문판 ‘코스미안 랩소디Cosmian Rhapsody)’에 수록된 ‘코스미안 비전이 열쇠(Cosmian Vision Is the Key)’ 그리고 ‘코스미안 구도(求道)의 길(The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을 아래에 옮겨보리라.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8·15 광복과 함께 질풍과 노도처럼 한반도에 밀어닥친 미-소 냉전의 광풍(狂風) 속에 휩싸인 가운데 서양풍(西洋風) 사대주의 사조(事大主義思潮)에 맞서 역풍(逆風)을 일으킨 인물 두 사람을 들라면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문선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前者)는 공산주의가 아닌 골찬주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주창했고, 후자(後者)는 분쟁과 파쟁을 일삼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는 ‘통일교(統一敎)’를 창시했으니까. 그 내용이나 결과는 차치물론(且置勿論)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그 이름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 사가(史家)들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제시한 비전만 큼은 우리가 기꺼이 기탄(忌憚)없이 적극 수용(受容/受用/收容 /收用) 할 수 있지 않으랴. 우리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만물(弘益萬物) 그리고 천도교(天道敎)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서 말이다.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그의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1667)에서 ‘악마의 광란, 침울한 우울증, 그리고 달빛을 쏘여 실성(失性)한 광증(狂症)’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30여 년 전 영국의 TV에서 영국의 젊은이들이 통일교에 포섭 세뇌되어 이용 착취당하고 있다는 프로가 방영된 후 영국의 신문마다 ‘Moonie’라는 통일교가 반사회적(反社會的)이니, 가정을 파괴한다느니 야단이었다. 이 와중(渦中)에 통일교 신자가 된 손자를 둔 한 영국 할아버지가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영국의 진보주의적 전국지 신문 가디언 (The Guardian)에 실렸었다.
“내 손자는 현재 21세로 3년 전 통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규칙대로 술, 담배, 마약, 문란한 섹스 성생활을 기피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규율이 반사회적이란 말입니까. 그 아이 부모 말로는 이웃들도 자식들이 술집이다 디스코다 싸돌아 다니면서 마약 밀매꾼들의 밥이 되는 대신 차라리 통일교도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내 손자는 6주마다 집에 오면 행복하고 화평한 얼굴로 집안 궂은일 다 맡아 하고, 옛날에는 긴 머리 장발에다 막살던 아이인데 지금은 복장과 외모부터가 아주 참하고 생기있는 딴사람이 되었답니다. 대화를 해 봐도 그가 세뇌됐다는 아무런 낌새를 찾아볼 수 없고, 그가 믿게 된 통일교의 교리가 기독교의 기존 정통파 교리와 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일교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18세에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와 교회를 다닌 끝에 세례받고 침례교 신자가 되었을 때 나야말로 세뇌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 매스컴을 통해 인체에 해롭고 반사회적인 술과 담배 선전광고로 우리 모두 잘못 세뇌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공교롭게도 또 그 몇 년 전 영국의 국영방송 BBC ‘리스(The Reith Lectures)’ 공개강좌 연사로 초빙된 미국의 그 당시 미시간 대학 알리 마즈루이(Ali Mazrui 1933-2014) 교수는 최근에 서방국가에서 전도(傳道)하며 개종(改宗)시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은 그동안 오래도록 서양사람들이 처방해 온 약(藥)을 그들 자신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문선명 목사가 이끄는 통일교 운동에 모여드는 서양의 자식들 부모가 느끼는 억하심정(抑何心情)을 자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말한다.
“내게는 아들 셋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으로 나는 태어났고, 내가 아직도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면 내 아들들도 선교사들의 전도 대상이 됐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은 서양의 백인들인 감리교나 가톨릭 계통이었을 것입니다.”
서양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질서에 쉽게 또 빨리 현지 원주민들을 굴종 예속시키기 위해 백인 선교사들은 사랑과 친절, 용서와 인내 등 여성적 미덕(美德)을 주입 세뇌시켜 이들의 반항심과 투쟁 정신을 약화시켜 정신무장을 해제시킨 후 백인들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했다고 정치학 교수인 그는 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및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고유한 정신문화는 백인들의 독선독단적인 종교적 과학적 물질문명의 세속적 침공을 받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이러한 침공에 대응, 처음으로 역침투, 역선교의 역공(逆攻)을 개시한 것 같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관찰한다.
만약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면 아마도 일본의 신도(神道 Shinto) 신사참배(神社參拜)에 앞장섰을 한국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교회에 많이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양의 해적들이 총칼은 물론 원자폭탄으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었다면 저들의 종교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세계 도처에서 판치게 되지 못하였으리라. 이렇게 볼 때 서양 백인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된 모든 유색 기독교인들을 좀 극단직으로 표현해서 정신적으로 거세(去勢)당한 일종의 정신적인 내시(內侍)’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실 때 27년 전 나는 아래와 같은 편지 한 통을 문선명 교주님께 띄웠다.
문선명 선생님께
문 선생님과 일면식은 물론 통일교에 대해 아는바 아무것도 없는 무지한 소생이 극히 외람되나마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뭣 보다 통일교의 통일이란 이름부터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온 인류에게 가장 호소력 있고 매력적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 1백 40개국 8만 명의 지성들이 자리를 같이한 제1회 세계 문화 체육대전이 한국에서 개막됐다는 뉴스(아니 이야말로 복음(福音)이라 해야겠지요)를 접했을 때 정말 가슴 벅찬 감격에 환호성(歡呼聲)의 경탄성(敬歎聲)이 절로 나왔습니다.
세계 규모에 걸치는 획기적인 대전(大展)에서는 국제과학통일 회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 세계평화종교연합, 세계평화연합, 세계평화여성연합, 대학원리연구회 세계대회, 체육대전, 등의 행사와 실로 장관(壯觀)일 수밖에 없는 3만여 쌍 6만여 명의 국제합동결혼식이 베풀어졌다는 보도에 이 대전(大展)의 창시자인 문 선생님께 큰 박수와 진심으로 깊은 경의(敬意)를 표해 마지않으면서 이 모든 행사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름뿐인 아닌 문자 그대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결실(結實)맺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나라 없는 사람’이란 표제로 구(舊)소련연방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의 실각을 다룬 커버스토리 기사를 읽고 어떤 한 독자가 보낸 다음과 같은 글이 타임지에 또한 실렸습니다. (타임지 1992년 1월 13일자) ‘고르바초프에게 편지를 띄울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쓰겠다’는 요지였지요.
“당신은 결코 나라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가 당신의 나라이고 우리 모두 충심으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큰일을 했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일할 사람입니다. 온 인류를 청중으로 세계란 강당에서 당신의 비전과 지혜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고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어쩌면 이 말을 문 선생님께도 그대로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꽁꽁 얼어붙었던 동서냉전의 빙산을 고르비가 녹여 버렸다면 2천여 년에 걸쳐 동서양 간에 쌓이고 내려 깔려온 어둠의 장막을 문 선생님께서 걷어 올려주시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의 빙산을 하루빨리 녹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물질과 탐욕에 어둔 눈을 뜨고 참빛을 보아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단히 무엄(無嚴)한 표현이 되겠으나 남성 상위를 영어로는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라 하지요. 우리말 ‘감투거리’와는 정 반대되는 뜻으로요. 그리고 영어에는 스스로를 낮추어 아랫사람에게 짐짓 겸손하게 은혜나 베푸는 듯이 겸허한 덕색(德色)질을 하고 생색(生色)낸다는 뜻으로, 함께(con)와 내려간다(descend)란 두 단어를 합성한 condescend란 복합어가 있지요. 본래 선교사란 종교를 널리 전도 전파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었겠지만 주로 기독교의 외국 전도에 나선 사람을 지칭해 그렇게 불러온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선교사들은 어디까지나 condescend하는 입장에서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미개(未開)한 야만인(野蠻人)들을 계몽(啓蒙)하고 교화(敎化)시킨다는 소명감(召命感)과 사명감(使命感)에 불타는 광신적(狂信的), 정신적(精神的) 십자군(十字軍)이 아니었습니까.
예수가 사람의 탈을 쓰고 지상에 나타난 하느님으로 고자세(高姿勢)를 취했었다면 문 선생님께서는 저자세(低姿勢)를 취해 주십시오. 사람에서 출발해서 우리 모든 사람 아니 우주 자연 만물이 하나의 ‘하나님’ 됨을 밝혀 보여 주십시오.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통일운동은 재래식(在來式) 기독교의 condescend하는 선교 사업으로는 절대로 안 될 일이고, 그 정 반대로 함께 오르는 conascend 하는 것이라야 할 것 같다는 우견(愚見) 아닌 현견(賢見)을 감(敢)히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
나와 너, 남과 여, 백과 흑, 선과 악, 하늘과 땅, 선민과 이방인, 따로따로 상(上)과 하(下)로 분리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마치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하는 인류애나 이웃사랑이 아닌 참사랑으로 인종과 국적, 사상과 종교, 남녀성벌, 직업의 귀천, 사회계층 불평등과 빈부격차(貧富隔差)의 양극화(兩極化)를 죄다 타파(打破)하고 초월(超越)해 온 인류를 그야말로 한 인간가족으로 통일하는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함께 향불처럼 승화되어 하느님으로 피어오르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비틀즈의 일원이었던 존 레넌(John Lennon 1940-1980)이 그의 ‘상상해보게(Imagine)’란 노래로 꾼 꿈이 하나의 예언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소아(小我)를 벗어난 대아(大我), 곧 천인합입(天人合一)의 무궁(無窮我) 코스미안으로 무궁화(無窮花) 아니 코스모스 동산에서 만세동락(萬歲同樂) 할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합니다.
해심(海心) 이태상(李泰相) 배상(拜上)
Cosmian Vision Is the Key
Are Koreans geniuses in concocting trendy catchphrases? They are like “TWIWOL” (“트인낭” in Korean), initials for “Twitting Is Waste Of Life,” and “KAFAIN depression” (“카페인 우울증” in Korean), for Kakao (the operator of Korea’s dominant mobile messaging app Kakao Talk), Facebook and Instagram depression. Many SNS users are reportedly becoming addicts and ending up depressed.
This must be a reflection of the reality we are experiencing these days. The number of Twitter followers of Trump, the embodiment (to some, if not most, people) of abnormality, absurdity, untruth is said to be in the 57,300,000s and his supporters are to be 40% to 50% of U.S. voters.
One may recite this cry along with ‘THE MADMAN: His Parables and Poems’ (1918) by Kahlil Gibran (1883-1931):
'THE PERFECT WORLD'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hear me:
Gentle Destiny that watchest over us, mad, wandering spirits,
hear me:
I dwell in the midst of a perfect race,
I the most imperfect.
I, a human chaos, a nebula of confused elements,
I move amongst finished worlds ㅡ
peoples of complete laws and pure order,
whose thoughts are assorted,
whose dreams are arranged,
and whose visions are enrolled and registered.
Their virtues, O God, are measured,
their sins are weighed,
and even the countless things that
pass in the dim twilight of neither sin nor virtue
are recorded and catalogued.
Here days and nights are divided into
seasons of conduct and governed by
rules of blameless accuracy.
To eat, to drink, to sleep, to cover one’s nudity,
and then to be weary in due time.
To work, to play, to sing, to dance, and then
to lie still when the clock strikes the hour.
To think thus, to feel thus much,
and then to cease thinking and feeling
when a certain star rises above yonder horizon.
To rob a neighbor with a smile,
to bestow gifts with a graceful wave of the hand,
to praise prudently, to blame cautiously,
to destroy a soul with a word,
to burn a body with a breath,
and then to wash the hands
when the day’s work is done.
To love according to an established order,
to entertain one’s best self in a preconceived manner,
to worship the gods becomingly,
to intrigue the devils artfully ㅡ
and then to forget all as though memory were dead.
To fancy with a motive,
to contemplate with consideration,
to be happy sweetly,
to suffer nobly-
and then to empty the cup
so that tomorrow may fill it again.
All these things, O God, are conceived with forethought,
born with determination, nursed with exactness,
governed by rules, directed by reason,
and then slain and buried after a prescribed method.
And even their silent graves that lie within
the human soul are marked and numbered.
It is a perfect world,
a world of consummate excellence,
a world of supreme wonders,
the ripest fruit in God’s garden,
the master-thought of the universe.
But why should I be here, O God,
I a green seed of unfulfilled passion,
a mad tempest that seeketh neither east nor west,
a bewildered fragment from a burnt planet?
Why am I here, O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Nevertheless, crying and wailing over the reality we are facing will be so futile.
Since there’s no answer to our questions, we’ve got to answer them ourselves.
Even though ours is not 'the perfect world,' we are born with perfect key to turn our chaotic world into Cosmos. The key is none other than one’s Cosmian Vision of Love Arainbow.
'The Cosmian Way'
“I’m bored.” It’s a puny little phrase, yet it has the power to fill parents with a cascade of dread, annoyance, and guilt.
Thus begins The New York Times Sunday Review (February 3, 2019) Opinion Column article 'Let Children Get Bored Again' by Pamela Paul, the editor of The Book Review and a co-author of the forthcoming book ‘How to Raise a Reader’ by Maria Russo and Pamela Paul (published in September 2019). “Boredom spawns creativity and self-sufficiency,” she argues.
‘The Artist’s Way’ by Julia Cameron (1948 - ) has sold more than four million copies, as the author puts it, “that has been a lodestar for blocked writers and other artistic hopefuls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The first printing was about 9,000 copies, said Joel Fotinos, formerly the publisher at Tacher/Penguin, which published the book. According to Mr. Fotinos, there was concern that it wouldn’t sell. “Part of the reason,” Mr. Fotinos said, “was that this was a book that wasn’t like anything else. We didn’t know where to put it on the shelves-did it go in religion or self-help? Eventually, there was a category called 'creativity,' and 'The Artist’s Way' launched it.”
Now an editorial director at St. Martin’s Press, Mr. Fotinos said he is deluged with pitches from authors claiming they’ve written 'the new Artist’s Way.' “But for Julia, creativity was a tool for survival,” he said. “It was literally her medicine and that’s why the book is authentic, and resonates with many people.”
Needless to say, this must be the case for everybody, young and old, not just for writers and so-called 'artists.' Each and every one of us was born with 'creativity' in order to swim, not to sink.
Just as Kahlil Gibran (1883-1931) comments in this book of aphorisms, poems, and parables, ‘Sand and Foam (1926):
"I am forever walking upon these shores,
Betwixt the sand and the foam.
The high tide will erase my foot-prints,
And the wind will blow away the foam.
But the sea and the shore will remain
Forever.
Once I filled my hand with mist.
Then I opened it and lo, the mist was a worm.
And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gain,
and behold there was a bird.
And again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nd in its hollow stood a man with a sad face,
turned upward,
And again I closed my hand,
and when I opened it there was naught but mist.
But I heard a song of exceeding sweetness.
You may have heard of the Blessed Mountain.
It is the highest mountain in our world.
Should you reach the summit
you would have only one desire,
and that to descend and
be with those who dwell in the deepest valley.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Blessed Mountain.
Every thought I have imprisoned in expression
I must free by my deeds."
This is rather 'The Cosmian Way,' methinks.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
“Nobody knows everything about anything.”
This is one of the principles of General Semantics launched in 1933 by Polish American originator Alfred Korzybski (1879-1950) with the publication of ‘Science and Sanity: An Introduction to Non-Aristotelian Systems and General Semantics’.
In other words: “We cannot imagine, think, say, understand, know all about anything or anyone ㅡ including ourselves.”
'길 없는 길' (The Way Without a Way) is a four-volume narrative written by South Korean writer Choi In-ho (1945-2013) about the life journey of the famous Korean Buddhist Seeker 경허(Gyunghuh 1849-1912).
The core message of this book ‘Cosmian Rhapsody’ (2020) may be put this way: Cosmian Way is the way for us all to seek.
[항간세설] 코스미안 시대를 열자 (2019. 10. 27)
지난 2016년 노벨문학상 이상의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영국의 맨부커 국제상을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과 영문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에게 수여하면서 심사위원회는 또 한 사람의 수상자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거명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반론을 제기했었다. 세종대왕은 노벨상이나 그 이상의 어떤 상을 타기보다는 '우리가 세종대왕상을 줘야 할 입장이 아니겠는가'라고.
요즘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라 각종 미디어가 너도 나도 노벨상 수상자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비보(?)에 수많은 작가와 출판사들이 비명(?)을 질렀다는데 도대체 '상'이란 게 뭐 길래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생각 좀 해보자.
어떤 '선물'이나 '상'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즐겁고 흐뭇하며 행복하지 않던가. 그래서 선물이고 상이고 언제나 남에게 준다기보다 자신에게 주는 게 되지 않던가. 애인이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손자손녀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사람이면 다 늘 느끼는 일이리라.
궂은일은 차라리 내가 겪고 좋은 일만 네가 누리기를 빌면서 아무리 주고 또 줘도 부족해 더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가 그 어느 누구의 '추천'이나 '상'을 받아 남의 '인정'과 '평가'를 받아야만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가 비로서 생기는 게 결코 아닌데 말이다. 비근한 예로 소위 일컬어 '예술 작품'이란 것도 굳이 말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자연과 삶의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실물'보다 그 '그림자'를 더 애지중지 할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뿐 만아니라 있는지도 없는지도, 설혹 있다 해도, 어떤 분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중성인지 무성인지, '신(神)'이란 존재에 대해 아무도 절대적으로 확실히 알 수가 없는데 그 누가 감히 너무도 주제넘게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으랴. 자신을 포함해 우주만물을 제대로 순간순간 사랑하고 섬기지도 못하면서 '허깨비' 같은 독선 독단적인 존재를 모시고 경배한다는 게 말이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서 온갖 '허깨비 굿 타령'을 졸업하고 홍익인간의 인내천 '인생학업, 인간수업'에 열중할 일이어라.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가 동트기 직전 독선과 위선의 종교적인 암흑기(Dark Age)가 있었듯이 현재 지구촌은 정치, 경제. 사회, 자연생태계 환경의 제2의 암흑기를 맞고 있다. 흑백이다, 빈부다, 남녀다, 좌파다, 우파다, 너다, 나다, 갈등과 분열이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주석, 소련의 푸틴의 막가파식 행태로 조장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깜깜절벽이 아니던가. 작은 그림은 우리 사람이 그린다지만 우주적인 큰 그림은 그려지는 법, 그러니 이 큰 그림이 그려지는데 필요한 '악역'을 맡은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리라.
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인종과 국적,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세계적 아니 우주적 시각 비전을 갖고 우리 모두 이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우주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계몽, 지구촌의 개명천지 '코스미안시대'를 열기 위해 2018년 7월 글로벌 온라인 신문 '코스미안뉴스'가 서울에서 창간되었고, 창간 1주년을 기해 제1회 코스미안상 공모에 응모한 수많은 에세이 작품 중 대상과 금상 시상식과 입선자 64명의 작품 2편씩을 모은 작품집 '69 프로젝트' 출판기념회가 지난 10월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되었다.
제2회 코스미안상 공모는 2020년 3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있을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빠르면 2021년 가을) 강원도 평창에 글로벌 온라인 '코스미안대학' 설립이 추진 중이다. 뜻있는 분들의 동참을 요망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