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전승선

사진=코스미안뉴스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외딴 길이 끝나는 산 밑에

토담집 하나 늙은 고라니처럼 앉아 있다.

황토벽 시렁 위에 도시의 외투를 벗어 걸어두고

아궁이 속 깊이 독백 같은 불을 지핀다.

한 무더기의 불이 구들을 타고 지나가고

못된 고양이 같은 연기에 취해 막걸리를 마시며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는 북극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지글지글 익는 꽁치 한 점을 떼어 먹다가

검게 타다 만 꽁치의 눈과 마주쳤다.

미안하구나 저마다 삶은 그 곳에 닿아 있어

타오르는 아궁이 속 불처럼 적멸하고 마는구나.

나는 네 미안한 눈동자에 취하고

너는 내 농담 같은 관념에 취해

우리는 떨어진 막걸리를 사러 십리 길을 걸어간다.

달빛아래 사과나무가 손을 흔드는 밤

간판도 없는 낡은 가겟집 문을 열고

연탄난로 옆에 앉아 막걸리 한 병을 딴다.

귀 어둔 할아버지가 엉거주춤 나와

안주하라고 양은쟁반에 소금 종기를 내온다.

물 좋은 막걸리에 소금 안주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세월을 읽다가

소금의 본적지를 생각하다가

막걸리의 사생활을 엿보다가

노래를 부르며 다시 흔들흔들 되돌아오는 길

별빛도 평등하게 내리는구나.

어깨동무한 그림자도 즐거워 웃고

손에 든 봉지 속 막걸리도 키득키득 거린다.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9.21 12:23 수정 2021.09.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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