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아모르파티

고석근

그렇다! 나 이제 필연적인 것만을 사랑하리라! 그렇다! 운명애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 되리니!

 

- 니체,즐거운 학문에서

 

나는 철이 들면서 가난하고 한글도 모르셨던 아버지가 참 싫었다. 읍내에서 절뚝이며 걸어가시던 아버지를 모른 체 했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그러다 못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 건, 30대 중반 무렵이었다. 전교조 활동을 하며 나를,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아버지도 함께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교조 모임이 끝나고 선생님들과 빙 둘러 서서 상록수를 함께 부르며 율동을 할 때 아버지나의 운명이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왔다.

 

어릴 적, 주인집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조용조용하게 살아야 했던 서러웠던 순간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교무실의 어둑한 뒤켠에서 쭈그려 앉아 급식을 먹던 쓰라렸던 기억들이, 항상 어깨를 수그리고 다니셨던 아버지가 한꺼번에 눈물이 되어 말없이 흘러내렸다.

 

그래,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 하지만 나만,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어. 수많은 우리 이웃들이, 형제들이 그렇게 살았어. 나는 그들과 함께 할 거야!’

 

, 나는 그때 니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렇다! 나 이제 필연적인 것만을 사랑하리라! 그렇다! 운명애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 되리니!’

 

아모르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여라라는 말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론에서 소위 명사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가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어머니도 힘들 때는 곧잘 혼자 중얼거리셨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러서 이런 업보를 받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여라를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저의 운명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요. 저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쳐다보기보다 가난한 저의 처지를 받아들이면 만족이 되거든요.”

 

정말 그런가? 잠시 약자의 정신 승리법이라는 최면에 걸리겠지만, 결코 만족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것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석가는 인생은 고()’라고 했다. 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고통이다.

 

인도의 힌두교에서 업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그것이 불교에 묻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그래서 불교문화에 젖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업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인간을 절대 긍정한 니체가 인도의 신, 종교와 결합한단 말인가! 이 얼마나 그에게 모욕적인 언사인가!

 

인도는 오랫동안 엄격한 계급사회였다. 사회의 최상층을 차지했던 브라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보다 낮은 계급들을 세뇌시켰다. ‘세상만사 인과응보, 다 업보다.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여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라. 그러면 다음 생에는 더 나은 계급으로 태어날 것이다.’

 

니체가 말한 필연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단지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필연적인 것을 사랑하면 필연적인 것을 사랑스럽게 가꾸어 가게 되어 있다.

 

내가 가난하고 한글도 모르셨던 아버지를 긍정하게 되자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되고 동시에 그런 아버지의 아들인 나를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그리하여 나의 운명을 사랑스럽게 가꾸어 가게 된 것처럼. 그리하여 나는 더 큰 나가 되어 아버지와 나의 시대를 사랑스럽게 안고 가꾸어 가게 된 것처럼.

 

헤엄도 치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이제 꼼짝없이 죽을 운명에 처했다고 하자. 그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면 그는 마구 허우적대다 물에 빠져 죽게 되지만, 그의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가만히 있으면 물의 큰 힘이 그를 물에 띄워 살아나게 된다.

 

 

나는 찰나를 사는 인간이고

밤은 거대하다.

하지만 나는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거기 별들이 글을 쓴다.

......

누군가 나를 풀어 쓴다.


- 옥따비오 빠스,친교부분

 

나는 찰나를 사는 인간을 받아들인 시인은 어떻게 되는가? ‘거대한 밤앞에서 티끌처럼 작아져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가?

 

시인은 찰나를 사는 미미한 존재가 되자 천지의 조화에 동참한다. 별들이 글을 쓰고...... 자신도 글을 쓴다. ‘누군가 나를 풀어 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21 10:51 수정 2021.10.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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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